아도~겐!

Posted 2010/02/03 03:09,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아도~겐!"
"어~류겐!"
"아따따뚜~겐!"

초등학교 5학년 때 오락실에서 저 소리를 들었을 때의 그 흥분은 내 또래의 남자들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의 대부분의 오락은 버튼이 2개면 충분했고, 많아봐야 3개였는데 이건 버튼만 6개. 게다가 남자의 로망, "장풍"!

스트리트파이터 II 가 처음 나왔을 때, 게임 한 번 하려면 나 같은 초딩은 거의 종일 기다려서 한 판을 할 수 있을까 없을까 정도. 요즘도 오락실을 자주 가는 편이지만 새로운 게임이 나와도 그 때처럼 수많은 동전이 게임기 위에 올려지는 광경은 아직 보지 못했다.

나는 류나 켄으로 하곤 했는데 저 '아도겐'과 '어류겐'은 어린 내 가슴을 후비고도 남았다. 그런데 당시 나에겐 '어류겐'을 사용하는게 너무 힘들어서 형들이 하는 걸 열심히 구경하다가 겨우 연습해보는 정도였다. 친한 친구나 형에게 물어봐도 다들 자기 나름대로의 방법을 가르쳐줘서 저걸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될 때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돈도 많이 썼고.

아도겐이 파동권, 어류겐이 승룡권, 아따따뚜겐이 용권선풍각을 일본어로 읽은 것이라는건 한참 지나고 나서였다. 지금도 아따따뚜겐은 용권선풍각이 맞는지 의심스럽긴 하다. 일본어로 찾아본건 아니라서. 가일의 "라덱~꾸~"가 영어로 Sonic Boom이었다는 것도 그저 놀랍기만 할 뿐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젠 오락실마저 점점 사라져가고 있지만 스트리트파이터는 4탄까지 나왔다. 그 동안 숱하게 많은 격투게임을 했지만 스트리트파이터만큼 재미있게 했고, 지금도 하고 있는 게임은 없다. 내 생애 첫 게임이라서, 그거 하다가 처음으로 집에서 오락실 가지말라고 혼나본 게임이라서 그런 것도 있겠고, 지나치게 복잡해진 요즘 격투게임보다 기본에 충실하고, 간단한 게임이라는 이유도 있겠다. 무엇보다 격투게임의 '원조'라는 매력도 빼놓을 순 없고.

하지만 무엇보다도 스트리트파이터의 매력은 '눈치'에 있다. 모든 게임이 그렇듯, 기계하고 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과 맞붙는 게 훨씬 재미있는데 이 게임도 마찬가지다. 철권이나 다른 격투게임처럼 많은 기술과 현란한 손동작없이도 적절한 타이밍만 노릴 수 있다면 발차기 몇 번, 정권 몇 번으로 승리의 찬스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은 기술들, 어릴 때 꿈꾸던 그 모습 그대로의 기술들을 적당히 조합해서 상대방의 빈틈을 파고들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다.

나는 늘 눈치가 없어서 손해를 보고, 눈치가 부족해서 일을 그르친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끼어들지 못한 적도 많고, 사태 파악도 가장 느리고, 상황 판단도 가장 느리다. 재빠른 사람들은 이미 어떤 사건의 기승전결을 다 알고 있을 때쯤, "아니, 그런 일도 있었어요?"라며 순진한 눈동자를 똥그랗게 깜박이는 게 나다. 그래서일까. 그 짧은 시간에 상대방의 움직임을 눈치로 때려잡는 순간, 나는 생각보다 꽤 흐뭇한 것이다. 그래, 나도 영 눈치가 없는 건 아니구나. 킹오파도, 철권도, 내 또래의 사람들은 자주 하는 것 같지 않은데 유독 스트리트파이터 앞에는 30대 아저씨들이 많이 앉아 있는 건 그런 이유일까.

류는 아직도 뭔가를 찾아 수련을 하고, 켄은 벌써 애아빠가 되었겠지. 가일의 뾰족 머리는 여전할테고, 허벅지 굵었던 춘리도, 엄마찾아 삼만리가던 블랑카도, 사람좋게 웃던 장기에프도, 목욕탕 때밀이가 별명이었던 혼다도, 불을 뿜던 달심도 이젠 다들 아저씨, 아줌마가 되었겠지. 하지만 그들은 우리처럼 늙지 않고, 우리가 가장 빛나던 눈동자로 바라보던 그 때 그 모습 그대로 여전히 활약하고 있다.

GGPO로 홍콩에 사는 사람과 스파3를 한 시간 넘게 했더니 그냥 잡스런 생각이 많이 났다.

덤으로, 소싯적에 라덱꾸에 맞서 아도겐을 외치고, 한쪽 다리 들어올린 채 아따따뚜겐을 외쳐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슴떨릴 동영상 하나.


2010/02/03 03:09 2010/02/03 03:09

너는 내 운명?!

Posted 2010/01/19 02:14,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며칠 전, 친구와 가볍게 술 한 잔 마시다가 무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숱하게 오고 간 말들 속에서 가장 강렬했던 건 종교 문제였다. 그 친구는 무신론자, 나는 유신론자. 애초에 평행선을 달리게 될 것을 전제하고 시작한 이야기인지라 그저 얘기나누며 술잔 기울이는 것만으로 즐거웠다. 가톨릭 신자인 내가 했던 말들이 스스로 좀 많이 아쉽게 느껴진 것만 빼면.

천주교는 운명론이 아니라고 했더니 친구는 결국 너도 나랑 비슷한 거 아니냐고, 확실히 알아오라고 했다. 녀석은 기독교는 운명론이 핵심이라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생각엔 운명론을 따르진 않을 거 같은데 굉장한 확신을 가지고 얘기해서 뭐라 딱히 답을 못해줬다. 이건 아무래도 신부님께 직접 여쭤보는 게 제일 확실할테다.

술기운을 빌어, 우리집 식구들이 들으면 펄쩍 뛸만한 소리도 몇 개 하고, 이단스러운 생각들도 조금 풀어내봤지만 결국 중요한 건 나는 신을 믿는다는 것이고, 신이 내게 준 큰 선물은 자유의지라고 생각한다는 정도의 말을 꽤 장황하게 늘어놓았던 것 같다.

죽음 이후, 신 앞에 섰을 때 현실에서 매 순간 최선을 다했노라고 말하는 것만큼 값진 생이 있을까. 살아있을 때 조금 더 열심히 살았더라면 좋았을거라고 고백하는 것만큼 가슴 아픈 후회가 있을까. 신을 믿고, 성당에 다니며, 내 삶을 꾸려가는 게 단지 죽음 이후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허망하고 재미없지 않은가.

내 삶의 앞길이 이미 정해져있다는 운명이 아니라, 내 선택의 결과로 만들어지는 미래. 피할 도리가 없어서 견뎌내야만 하는 삶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선택과 흔적들이 만들어나가는 미지의 삶. 1초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내게 모든 선택의 순간들은 짜릿하다. 내가 알아채지도 못하고 결정해버렸을 그 숱한 순간들도 보듬어 가야겠지.

아무리 밤에 술마시고 한 얘기들이라지만,
우리도 참....
2010/01/19 02:14 2010/01/19 02:14

일만 시간의 법칙

Posted 2010/01/14 09:56,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말콤 글래드웰,아웃라이어 - 창조적 지성의 탄생과 성공의 비밀, 김영사.

일만 시간의 법칙이 있다지. 하루 3시간씩 10년을 투자하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고. 꾸준한 노력과 끈기는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다닐 때부터 들어왔던 말인데 결혼을 염두에 둘 나이가 된 지금까지 제대로 실천해본 적은 거의 없다.

올해를 맞이하면서 이것 저것 욕심도 부려보고있고 하고 싶은 일도 생겼다. 그러다 저 일만 시간의 법칙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내게 또 다른 고민을 만들어줬다. 일만 시간을 투자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일만 시간 동안 공들여 이루고 싶은 것 하나를 찾아내는 일이 더 중요하고 더 어려운 일 같다. 이것도 일만 시간, 저것도 일만 시간을 연습하기에는 내 수명이 너무 짧다.

지금 내 다짐들이 지금까지 늘 반복되어왔던 '새해의 각오'를 넘어, 찰진 생을 준비하는 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다.
2010/01/14 09:56 2010/01/14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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