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감이 교차했던 생일

Posted 2008/09/24 01:36, Filed under: 학교종이 땡땡땡

월요일 아침, 어머니의 생일 축하 문자로 하루를 시작했다. 주말에 끝난 축제 덕분에 이번주 역시 환타스틱한 반 분위기가 될 것을 예상하고 월요일 아침부터 단단히 주의를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교실에 들어서니, 아이들이 케익에 촛불까지 켜놓고 내 주위에 빙 둘러선 채 생일축하노래를 불러주었다. 폭죽도 터트렸고, 교탁 위에는 미리 접시에 담아둔 소담스런 간식거리들도 있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고마웠고, 평소에 잘하지 이런 걸로 환심사려 하는지 의구심도 들었고, 그런 생각을 한 것 자체가 부끄럽고 미안했다. 그 와중에 여전히 몇 몇은 내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었고, 몇 몇은 진심어린 편지를 써주었으며, 몇 몇은 해맑은 웃음을 띄우며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어리둥절했고, 혼란스러웠다. 괜히 뻘쭘해지고 영 어색해지기 시작해서 대강 교탁을 정리하는 척 했다. 뭔가 따뜻한 분위기에서 정다운 이야기라도 나누어야할 것 같았지만 "고맙다, 정말."로 많은 말들을 대신했다. 귓가에 스쳐 들어온 또 다른 날카로운 이야기는 케익 속에 묻기로 했다. 어쨌든 내 생일을 기억해주고, 케익까지 마련해주고, 노래도 불러준 녀석들... 웃음과 울음이 동시에 터져나온다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었다. 다행히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복잡해진 마음으로 교무실로 돌아왔다. 수업 들어가는 반마다 아이들이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간단한 말 한마디였지만 고마웠다. 그래도 쉬는 시간은 없었다. 그 졸리운 중세문법을 끝.까.지. 설명했다.

쉬는 시간, 내가 담당하고 있는 학교신문반 아이들이 찾아왔다. 교무실 밖으로 불러내길래 처음엔 축제 비용 정산 때문에 그러는 줄 알았다. 교무실 문을 여는 순간, 아이들이 생일축하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복도에서 울려퍼지는 노랫소리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생각지도 못했던 축하였다. 나는 소리 높여 고맙다고 말하며 한 사람씩 악수를 했다. "정말 고맙다"는 말 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퇴근 후 여자친구를 만났다. 함께 저녁을 먹고 카페에서 후식을 즐겼다. 그녀가 손수 만든 케익을 꺼내 불을 붙이고 내 귓가에 나즈막히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윽한 포옹으로 고마움을 표시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예쁜 쿠키가 덧붙여진 생크림 무스케익의 살살 녹는 맛은 내 마음을 알알이 녹여주었다.

한 보따리 싸들고 집으로 왔다. 자정이 다 되어가는 그 시각에, 아버지께서 손수 케익을 꺼내 불을 붙이고 어머니와 함께 축하 노래를 불러주셨다. 케익은 아버지와 어울리지 않게, 작고 귀여운 분홍빛 케익이었다.

케익을 네 번 먹었다. 잠이 드는 그 순간까지 배가 꺼지지 않았다. 나는 생애 가장 정겨운 생일을 보냈다. 그 케익들 앞에서 나는 내 나이를 속으로 찬찬히 헤아려 보았다. 스물 아홉해를 사는 동안, 나는 어떻게 살아왔을까. 이제 큰 초 3개면 족할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또 어떤 모습일까.

아이들 덕분에 웃고, 아이들 때문에 울고, 아이들로 인해 내가 변화한다.
짐작조차 되지 않는 그 변화의 소용돌이 안에서 나는 또 하루를 보냈다.

2008/09/24 01:36 2008/09/24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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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OldBoy 2008/10/15 00:56 Delete Reply

    wow~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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