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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02 딜레마 (1)
  2. 2007/01/23 아버지의 손 (8)
  3. 2005/09/21 여왕님 탁구 (4)

딜레마

Posted 2008/06/02 14:58,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오늘 동생이 입대를 했다. 논산 훈련소로 들어갔는데 주특기를 무엇으로 배정받게 될지 무척 궁금하다. 나도 논산으로 입대했었는데 4.2인치 박격포를 훈련받고 전방 GOP부대로 배치됐었다. 내 전철을 밟는 것도 걱정이지만 시절이 하 수상하야, 혹여라도 전경으로 차출되진 않을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동생은 수도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수도회 교육과정 중 청원기를 보내고 있던 동생은 제대 후 약간의 시간 동안 수도사로서의 삶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고민해볼 기회가 있다고 한다. 그 후 수련기를 거쳐 유기서원기를 마치면 종신서원 이후 온전한 수도사로서 생활하게 된단다.

수도원에 있을 때에는 전화나 이메일은 물론 편지도 주고 받지 못했다. 그러다 이제 군대를 가니 편지도 되고, 전화통화도 할 수 있고, 휴가 때 얼굴도 볼 수 있으니 가족들로선 차라리 조금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그런데 참 묘한 것은 군인이 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너무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저 반길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점심 때 훈련소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동생과 전화통화를 할 수 있었다. 내가 입대할 때는 가족들이 함께 갔었는데 동생은 수도원에서 바로 들어간 것이라서 원장수사님과 함께 단둘이 갔다. 마음이 짠하지만 애써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려고 했다. 혹시나 싶어 집에 전화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는 목소리가 심히 잠기셔서 얼른 전화를 끊으셨다.

동생은 군생활도 잘 해낼 것이다. 온 식구들이 사랑하고, 심지어 하느님도 그를 보살펴 주지 않는가. 동생이 수도원에 간 이후, 오히려 기도를 더 자주 하지 못했었다. 이제 다시 온마음으로 기도해야겠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동생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그것밖에 없을 것 같다.

못난 형이었음에 가슴 아프지만 녀석의 웃는 낯을 볼 날을 기다리며 오늘 하루는 조용히 녀석과의 추억을 되새겨 봐야겠다. 하필이면 오늘은 날씨도 참 을씨년스럽구나...
2008/06/02 14:58 2008/06/02 14:58

아버지의 손

Posted 2007/01/23 22:23,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오늘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오신 아버지는 "너한테 할 말이 많다. 너도 이제 알건 알아야지..."라며 말문을 열었다. 거나하게 취하신 티가 역력했지만 아무리 많이 취하셔도 당신이 하신 말들을 또렷하게 기억하시는 분이란걸 알기에 나란히 쇼파에 앉아 귀를 기울였다. (우리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는 여기를 클릭해서 지난 글들을 한 번 보시라.)

친분이 있는 어른들과 내기당구를 해서 이겼다는 이야기를 약간의 흥분을 보태어 자랑하시던 아버지는 당신의 인생을 촘촘히 풀어놓으셨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숱한 사연들과 그를 둘러싼 다른 가족들과의 얽히고 설킨 이야기들, 아버지와 어머니의 신혼 시절, 외가 식구들과 아버지의 관계들, 나에 대한 출생의 비밀(!)까지..

대부분 이미 알고 있던 일들이지만 오늘 새롭게 알게 된 것들도 꽤 있었는데 들으면서 내내 '이건 진짜 영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는 어느새 가슴 졸이는 영화의 주연이 되어 내 옆에 앉아 계셨다.

50년대 생이신 아버지는 내가 알고 있는 우리 나라의 모든 현대사의 질곡들을 직접 겪으며 살아오신 분이다. 그 분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는데 어찌나 우여곡절이 많은지 웃으면서 울다가 가슴이 먹먹해져왔다.

요즘 우리집 상황이 이래저래 안좋다. 동생은 재수를 했지만 올해에도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게 되었고 남은 대학들의 합격자 발표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어머니는 원래 몸이 약하셨는데 폐경기를 겪고 계신데다 신장은 수술을 했고 심장도 많이 안좋으셔서 신경쓸 일이 생기면 온 식구들이 긴장해야 한다. 아버지는 다니시던 직장을 그만두시고 계획중인 사업 준비를 위해 몇 년째 쇳덩이들과 씨름하고 계신데 영문과 출신인 아버지가 용접을 해야하는 것부터 힘이 드신다. 게다가 몇 년 전에는 녹내장 판정을 받으셔서 내색은 않으셔도 실명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계신다.

결정적으로 내가 군대에 있는 동안 조금 무리를 해서 지금 살고 있는 건물을 지었는데 이게 팔리지 않아서 은행빚이 점점 무섭게 다가온다. 냉정하게 따지고보면 지금 우리집에서 고정적인 수입을 내는 사람은 나 하나. 그나마 건물에서 나오는 월세를 생활비로 쓰고 있지만 은행빚 갚기도 벅찬 상황이다. 어서 이 건물을 팔아야 하는데, 아버지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그놈의 노무현 때문에' 팔지도 못하고 이래저래 복잡해졌단다.

강남에 건물 한 채 갖고 있으면 부자인데 뭘 그러느냐고 하는 사람들도 많단다. 나도 제대하고 이 집을 처음 봤을 땐 이제 우리집도 꽤 먹고 살만해 졌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나중에 이야기를 듣고, 요즘 돌아가는 상황으로 봐선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조금 더 복잡하게 살고 있는 듯 싶다.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는 그 사연많은 인생을 용케도 잘 살아내신 것 같다. 욕심부리지도 않으셨고 남에게 해코지한 적도 없고 도박은 커녕 투기와도 거리가 멀다. 우리 아버지는 늘 식구들을 먹여살려야한다는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웠고 우리 어머니는 값비싼 외식보다 근사한 음식을 직접 만들어주셨다. 그렇게 몇 십년을 살아오시다가 자식들 다 크면 당신들끼리 자식 눈치 안보고 살 방도는 마련해야하지 않겠냐며 큰 맘 먹고 준비하신 게 이 집이었다.

어제 아침 두 분이 크게 다투신 모양이다. 법 없이도 사실 분들이라는 그 흔한 수식어조차 화려할 지경인 두 분이 부부싸움을 하는건 거의 대부분 돈 문제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돈 버는 일에 큰 관심이 없는 이유 중의 하나는 어려서부터 본 두 분의 부부싸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늘 즐겁고 행복한 우리 집안의 분위기가 싸늘해지는건 거의 대부분 돈 때문이었으니까 말이다. 다들 열심히 사는 것 같고, 행복하게 잘 지내는 것 같은데 돈 이야기만 나오면 늘 그렇게 마음이 아파왔으니까. 그래서 돈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걸 우리 가족들이 몸소 겪으며 서로를 지탱해내며 살아왔으니까. (오히려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생각하는게 일반적(?)이겠지만 아버지는 나를 그렇게 가르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때론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때론 격앙된 고함을 지르며 한참을 이야기하셨다. 어느 대목에선가 나는 문득 아버지의 손을 잡고 싶었다. 아버지의 손은 어느새 주름이 많이 져있었고, 손끝은 군데군데 기름때가 묻은 채 갈라져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손은 여전히 따뜻했고 묵직했다.

"이제 자라. 시간이 많이 늦었다."라며 말을 마치시곤 곧 잠이 드신 아버지. 나는 꽤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동틀 무렵 겨우 잠이 들었다. 조만간 어머니, 아버지께 나도 함께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책을 세워보자고 말씀드려야겠다. 동생과 내가 쓰는 생활비나 용돈만이라도 내 월급으로 해결하면 일단은 조금 도움이 될 터이다. 동생의 등록금이 문제인데 녀석도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고 있으니 거기에 내가 학자금 대출 같은 것들을 알아보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더 큰 문제들은 부모님과 상의해보고 내 이름으로 대출을 좀 받아도 되고... 그나저나 운전면허는 또 한 번 미루게 될 것 같다. 대학생 때는 놀고 먹느라 못땄는데. 후후. 사실 뭐 면허증이야 마음먹으면 금방 따니까 차가 필요할 때가 오면 그 전에 따두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부부 중 한 사람만 면허가 있어도 좋고. ^^;

다행이다. 이제야 비로소 나는 부모님께 "어른이 된 자식"으로서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고마운 일이다. 아버지의 긴 이야기와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 가족은 참 멋지다는 생각부터 든다.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다. 게다가 나는 또 한 명의 사람에게 분에 넘칠만큼 사랑을 받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나와 함께 웃고 울어줄 숱한 친구들도 있고.

훗날 내 아들(혹은 딸)도 내 손을 잡고서
묵직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07/01/23 22:23 2007/01/23 22:23

여왕님 탁구

Posted 2005/09/21 00:43,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연휴 마지막 날, 아침먹고 밍기적거리던 우리 식구들은 오랜만에 탁구를 하기로 했다. 마땅히 놓을 장소가 사라져버린 탁구대는 한동안 우리 식구들에게 외면받아 왔었다. 탁구대에 쌓인 먼지를 닦고 네트를 설치하려는데 아뿔사, 전에 다른 집에 빌려주곤 아직 돌려받지 않았다. 아쉬운대로 아버지가 구해온 철판을 네트 대신 올려두었다.

아부지와 어무이가 한 팀, 나와 내 동생이 한 팀을 이루고 복식 경기를 펼쳤다. 당연히 우리 팀이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내 동생이 아버지의 말빨에 한순간 불타올라버리더니 계속 실수를 하고 말았다. 게다가 '동사무소 탁구 교실'에서 기본기를 제대로 배우신 어머니의 선전으로 우리 팀은 아쉽게 지고 말았다.

이후로 복식은 물론 '온 식구 리그전'도 펼쳤는데 내 동생은 0.1톤의 몸무게 압박에 후반에 지치기 시작했고, 역시나 가장 팔팔한 내가 우승했다. 곧 산파를 불러야할 것 같은 체구의 아부지는 땀을 비오듯 흘리시면서도 연신 "시네루"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으셨고, 어무이 역시 탄탄한 기본기에 충실하셨지만 기본기에서 그치고 말았다.

어쨌거나 어제 탁구 대회의 MVP는 단연 우리 어무이다. 그야말로 히로인!
이름하야, "여.왕.님.탁.구."

동생과 나는 지하 주차장을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흘린 공을 주워오기에 바빴고, 틈틈이 집에서 물을 공수해오기도 했다. 아부지 역시 차 밑에 들어간 공을 입으로 불어 꺼내시기도 했고, 창고로 넘어간 공을 꺼내기 위해서 온갖 잡동사니를 걷어 내기도 하셨다.

우리 어무이, 탁구대 앞에서 기본 자세를 잡으시면 절대 흐트러짐이 없었다. 공이 떨어지면 어무이는 자세 잡고, 아부지가 주우셨다. 공이 옆으로 비껴 떨어지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시던 그 눈빛, 말 한마디 하지 않고도 주위 사람들로 하여금 왠지 그 공을 내가 주워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을 지워주시던 그 강렬한 포.쓰. 그 흔들림없는 자태, 우아한 고집과 신념이 깃든 도도함은 가히 다른 식구들을 압도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한바탕 웃으며 땀을 흘리고 나니 우리 가족이 조금 더 끈적해진 느낌이었다. 송편보다 달콤하고, 쇠고기국보다 구수했던 그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2005/09/21 00:43 2005/09/21 0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