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봐도 떨리는 녀석들
Posted 2007/02/06 00:27, Filed under: 학교종이 땡땡땡오래 쉬었던 탓인지 출석부를 챙겨서 교실로 들어가는데 조금 떨렸다. 방학은 잘 보냈는지, 다들 잘 지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또 무슨 이상한 소리(?)를 나에게 던질까 싶어서 살짝 걱정도 되더라. 드르륵 힘차게 문을 열고 들어서니 녀석들은 마치 어제 헤어진 사람들처럼 그 교실, 그 자리에 익숙한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조금 길어진 머리털만이 방학이 있었음을 알려줄 뿐.
3학년 학생들은 졸업식날까지 학교를 오지 않아서 준비해둔 프린트물은 나눠주지 못했다. 2학년 녀석들에게는 김용택, 이성복 두 시인의 작품 한 편씩을 읽어줄 생각으로 시집 두 권을 챙겨서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들을 진정(!)시키는 데에만 10분이 넘게 걸렸고 이 녀석들을 조용히 시켜야겠다는 생각은 조용히 사라져버렸다.
묵묵히 칠판에 시 한 편을 적어 나갔다. 왁자지껄한 와중에 나는 기어이 끝까지 써내려갔고 시끌벅적한 소음 속에서 한 글자씩 읽어나갔다. 앞에 앉아있던 두 세 명의 학생들 말고는 거의 들은 사람이 없으리라. 좀 더 준비해가지 않은 것도 잘못이었고, 그 동안 "선생님"이라기보다 "형"이나 "오빠"처럼 여겨졌던 것도 문제였고, 교과서도 시험도 없는 무한 자유의 시간에 나 혼자 재미있는 일을 하는 기분이 든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녀석들은 들은 척 만 척 다들 딴 짓을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으이구!" 소리를 내며 칠판을 지우는데 앞에 있던 남학생 한 명이 물었다. "샘, 근데 그 시 작가가 누구에요?" 평소 수업도 열심히 안듣던 녀석이고, 오늘은 며칠 전에 한 포경수술 이야기를 하느라 한껏 수줍어하던 녀석이었던지라 더 반가웠다. 그래도 아무도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는 생각에 그 정도면 됐다, 싶었다.
올해 3학년을 가르치지 말라는 녀석들과 꼭 3학년으로 오라는 녀석들이 있었다. 이러든지 저러든지 문학 선생님 따위 관심없다는 녀석들이 태반이었지만 어쨌든 나와 함께 다시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녀석들이 생각보다 꽤 있어서 내심 놀랬다. 내가 만만해서 그런건 아니기를 진심으로, 간절히, 기도해본다. 3학년 첫 수업시간에 교실로 들어서는 나를 보며 몇 몇 아이들은 책상을 치며 울분을 토하겠지만 어쩌겠나. 나는 그런 녀석들에게 더 한층 느끼한 미소로 응답해주고 싶어지는 것을...
내일은 다른 반에서 같은 시를 읽어주게 되는데 걱정이다. 영상이라도 조금 준비할 걸 그랬나보다. 애초에 녀석들을 조용히 시킨다는 것 자체가 무리이지만 아이들이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만들 수 있다는건 아직은 내게 무리인가보다. 짜식들, 썰렁한 얘기하면 자다가도 다 들으면서... 수요일은 마지막 시간이 될 것 같아서 기타를 가져가볼까 한다. 레파토리를 몇 개 준비해야한다. 작년 말부터 대학로 아저씨의 노래를 연습하긴 했는데 아이들 앞에서 하긴 무리일 것 같다. 웃찾사의 Voice four men 이랑 강산에의 넌 할 수 있어 정도는 무난하게 할 것 같은데 또 모르지... 뭘 하든 나만 재미있는 시간이겠지만 그래도 좋다. 지난 번에도 최소한 한 두 명은 따라불렀으니까. ^^;
시간 참 잘 갔다. 이래저래 정신없는 하루였지만 기분좋은 출발이다. 여자친구는 두 말할 나위 없고, 집안 일도 생각보다 잘 풀리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즐거우면 세상도 한 뼘쯤 즐거워지는 것 같다. 행복한 일이다.
+ 참, 걱정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기쁜 소식 전합니다.
임용확정됐습니다. "정교사 올돌이"라 불러주세요. ^_______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