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학기 마지막 문학 수업날이었다. 작년 이맘때, 선생님이 되겠다고 마음먹고 노량진 학원가를 어슬렁거리던게 엊그제 같은데 어쨌든 1학기 동안의 수업을 무사히(!) 마쳤다. 비록 기간제일지라도...
전부터 벼르고 있던 기타를 학교에 들고 갔다. 다른 선생님들이 다들 한 마디씩 하셨다. "수업시간에 기타도 쳐요?", "올빼미샘, 축제 때 기타치면서 노래나 한 곡 하지?" 등등. 생각보다 쪽팔리긴 했지만 어쨌든 묵묵히 악보와 기타와 설문지를 들고 교실로 향했다.
교실에 들어선 후, 먼저 아이들에게 수업 평가 설문지를 쓰게 했다. 생각보다 훨씬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다가가자 다급하게 설문지를 감추는 녀석들;; 아이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서 무기명으로 조사를 했다. 아이들의 눈은 날카로웠다. 내가 평소에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점을 제대로 짚어낸 녀석도 있었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또는 아이들과 전혀 다르게 생각하고 있던 것들에 대해서 써낸 녀석도 있었다.
설문지를 받은 후 반장은 매점으로 아이스크림을 사러 보내고, 나는 기타를 둘러맸다. 수련회에서 볼 수 있는 레크레이션 강사 아저씨 같았지만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집중해주었다. 덕분에 창피했다. 첫 곡은 [꽃들에게 희망을].
동명 단편 소설의 줄거리를 먼저 소개해주고 노래를 들려주었다. 조용히 내 노래에 귀기울이는 녀석들을 보며 참 많이 쑥쓰러웠다.
내 첫 사랑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김광석의 [그녀가 처음 울던 날]을 불렀다. 수업 시간에 종종 옛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적이 있었는데 녀석들은 꽤 기억력이 좋더라; 이 노래가 끝난 후, "이제 우리가 아는 노래로 좀 하자!"라는 협박에 가까운 요청이 들어와서 SG워너비의 [내사람]을 불렀다. 이 노래는 내가 부르기엔 힘이 들어서 그 반에서 가장 노래 잘하는 남학생을 불러냈다. 처음엔 쑥쓰러워 하던 녀석들도 친구들이 박수까지 쳐주면서 이름을 불러주니 슬며시 나와 한 곡을 다 불렀다.
Seeya의 [여인의 향기]는 여학생을 불러내서 함께 노래했고, 윤도현의 노래도 몇 곡 같이 불렀다. 중간중간 김광석의 노래로 분위기를 다운시켜주기도 했다. 다행히 자는 녀석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보물찾기]를 불렀다. 가사가 예쁜 노래라는 내 말에 녀석들은 떠드는 아이들을 조용히 시켜가며 노래를 들어주었다.
"어? 샘, 왠 기타에요? O.o" 라며 똥그란 눈으로 쳐다보던 아이들은 노래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손뼉도 쳐주고,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으며, 아는 노래는 따라부르기도 했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거나, MP3로 녹음을 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연주하다가 실수를 하거나 노래를 부르다가 삑사리가 나더라도 녀석들은 웃으며 들어주었고, 즐거워했다.
오늘은 참 즐거운 하루였다. 그 작고 네모난 교실에 기타 하나 가져간 것 만으로 녀석들도 나도 즐겁게 웃을 수 있었다. 그래, 내가 잊지 말아야할 것은 바로 이 학생들이다. 누가 뭐래도,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학교에 존재하는 이유는 나를 바라보는 학생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디로 튈지 몰라서 힘들지만 그래서 더 소중한 녀석들...
오늘 나는 참 행복하다.
+하지~만. X반에서는 노래를 부르다가 말았다는거~ "설마 유치하게 기타치고 노래? 그냥 영화나 보죠?"라는 말에 상처받고 기타치다 말았다는거~ 아무도 안들었다는거~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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