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교육의 폐해는 이런 것이다.‘다양한 독서와 깊고 풍부한 사고를 요구하는’논술이라는 시험제도는 공교육이 담지할 수 있는 수준의 교육역량을 넘어서 버렸다.
공교육에서는 교사가 10년 전 수업 노트를 들고 강의를 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하더라도 어떤 선생은 버젓이 아이들도 서점에만 가면 구입할 수 있는 참고서를 들고서 그것을 줄줄 읽어주었다. 몇몇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푹 자는 대신 그 참고서를 구입해서 시험점수를 보충하는 ‘대안’을 선택했다. 특별 활동이랍시고 한 달에 한 번 하는 독서회나 영화감상회 등은 사실상의 자습시간이나 다름 없어서 ‘다양한 독서’란 이미 ‘자율적인 문학소년’ 몇몇을 제외하면 찾을 수 없었고, 대충 주워 읽은 것으로 폼이나 잡는 나같은 아이들은 ‘깊고 풍부한 사고’를 하는 아이로 취급될 수 있었다. 차라리 본고사 시절에는 학교에서 “수학의 정석”과 “성문 종합영어”를 가르침으로써 아이들의 계급이동에 대한 희망을 온존시킬 수 있었다.
롤즈의 정의론이나 토크빌의 민주주의에 관한 글은 상당한 수준의 문해력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고, 이런 것은 고등학교 교육 과정에서 결코 가르칠 수 없는 것이다. 논술교육은 애초에 ‘공교육’에서는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면서 한 편으로는 (부당하게도) 공교육의 무능함을 비난한다. 이 와중에 그나마 남아있던 공교육에 대한 신뢰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제 이 논리가 순환하기 시작한다. 애초에 가능하지 않은 것을 요구받고, 그것을 수행하지 못한다고 비난받던 공교육은 그 때문에 공공성을 잃어버린다.- from a long-term optimism
학교에서 보충수업(정확한 명칭은 "수준별 보충학습") 때 논술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2학년 아이들만 10여명 정도로 구성된 반인데 수업분위기는 참 오붓하고 좋다.
문제는 학생들이 논술은 커녕 기초적인 독해와 작문부터 힘들어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다양한 독서 체험'과는 거리가 멀고, 글쓰기는 지루하고 재미없는 일로 인식하고 있다. 첫 번째 첨삭 때 답안지를 보며 막막하기만 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첫 번째 좌절 이후 강의가 끝나가는 지금까지 계속된 좌절의 연속이다. 하지만 나는 학생들에게서 작은 희망을 발견했다. 쉬운 글부터 읽히기 시작하니 학생들은 생각보다 흥미있게 받아들였다. 글쓰기 연습은 짤막한 자기 소개글을 쓰는 것으로 시작했다. 학생들은 자신들에게 익숙하고 흥미로운 주제에 대해서 "자유롭게 쓰는 것"을 좋아했다.1 처음에는 펜을 들고 멍하게 앉아있기만 하던 아이들, 읽기 자료를 받아들기가 무섭게 꾸벅꾸벅 졸던 아이들이 이제는 무엇인가를 끄적이기 시작한다. 글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을 조금이라도 줄여줄 수 있다면 이 짧은 강의가 헛된 시간만은 아니었으리라.
책을 읽어보지도, 글을 써보지도 않은 것은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12년동안 읽고 쓰는 법을 배우는 "학교"는 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주었던가. 지금 전국을 뒤덮고 있는 논술 열풍은 "자신의 생각을 조리있게 글로 쓸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단지 대학 입학의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논술을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대학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고등학교 교육과정은 언제나 대학의 입시요강에 흔들리게 될 것이다. 고등학교가 대학의 입김에 휘둘리지 않는 날은 언제쯤일까. 그 날이 오지 않는 한 공교육은 신뢰받지 못하리라. 올해에도 각 대학의 수석합격생들이 "국영수 위주로 학교 수업 열심히 들었습니다"라고 외치겠지. 그들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그들의 이야기가 더 이상 사람들의 관심거리조차 되지 못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진지하게 공교육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이다.
- 1분 동안 주어진 주제에 대해 최대한 많은 글자를 써보는 1분쓰기는 아이들이 굉장히 열광적으로 참여한다. 물론 1등에게 주어지는 간식거리가 욕심나서 그랬겠지만... OTL..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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