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초년생의 고민

Posted 2006/03/11 01:47,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내가 직장에 다닌지도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시간 참 빠르게 지나간다. 첫 출근날의 설레임과 긴장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 같은데 그 곳에서의 낯선 생활에 적응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노라면 때로 신기할 때가 있다.

"사회"라는 곳, "세상"이라는 곳에 첫발을 내딛은 내게 있어 "관계"라는건 거의 화두에 가깝다. 이제까지는 내가 남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지, 어떤 사람으로 보일지 짐작해보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설혹 오해가 생기거나 무언가 문제가 생기더라도 충분히 내 능력의 범위 안에서 조정해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저녁, 진지한 고민을 해봐야할 일이 생겼다. "이제 갓 들어온 막내"가 숱한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이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저 수업연구 열심히 하고, 맡은 업무를 잘 처리하면 큰 문제는 없지 않을까, 나아가서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었다. 그 동안의 내 삶에서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인관계에 있어서 대부분 긍정적인 평가를 내려주었기 때문에 그 고민이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야자 감독 후, 모 선생님과 함께 이야기를 했는데 굉장히 낯선 말을 들었다. 말씀하시는 분도 굉장히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셨는데 그 핵심내용은 "인사를 잘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어른들을 대하는 것에 있어서는 늘 칭찬을 들어왔던터라 그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차라리 "일을 좀 더 열심히 해라"라든가 "좀 더 일찍 출근해라"라든가, "수업연구를 좀 더 철저히 해야한다" 등등의 이야기였다면 훨씬 마음이 편했을 것 같다. "인사를 잘해야 한다"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런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으니 참으로 난감한 기분이었다.

어쨌든 "중간서열"의 그 선생님도 어렵게 얘기를 꺼내신 것이라 나 역시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지만 집으로 오는 길 내내 머리가 복잡해진 건 사실이다. 첫 번째는 "나의 기준"과 "타인의 기준" 사이의 괴리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저 말을 나에게 한 이유" 때문이다.

나는 아직 기간제 교사이다. 1년 계약 후 재계약을 하거나 정식 교사로 임용되지 않으면 이 학교를 떠난다. "저 사람은 인사성이 없다"고 평가하는 선생님들이 많다면 다시 이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한다. 그럼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데 내게 저런 말을 한 건 "나를 생각해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야할까?

학교 또한 사회의 일부분임을 나는 잠시 잊고 지냈나보다.


+ (다음날에 덧붙임) 오늘 블루문님의 글이 눈에 들어온건 행운이라고 봐야하나. 어쨌든 조낸 인사하는거닷!!! (나름대로 열나게 한 것 같은데 뭐가 문제인지원.. OTL..)
2006/03/11 01:47 2006/03/11 01:47

예전엔 미쳐 몰랐던 것들

Posted 2005/09/10 23:55,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굳이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되새기지 않더라도 어느새 몸에 밴 습관들을 다시 돌아볼 기회가 생기면 섬뜩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1. 마우스 제스쳐 기능에 중독될 줄 몰랐다.
불여우를 기르기 시작한 것은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는다. 그나마 불여우 확장기능 모음 사이트에서 "별표 5개"에 매혹되어 설치했던 마우스 제스쳐는 내 손에 익숙해진지 불과 몇 달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손이란 녀석이 어찌나 앙탈스러운지 요즘은 마우스 제스쳐 때문에 불여우를 더 자주 쓰다듬어주게 된다. 웹마나 오페라 등 기타 브라우져에서도 마우스 제스쳐 기능을 제공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미 불여우용 마우스 제스쳐의 초기 세팅값에 익숙해져 버렸다. (창닫기는 'ㄴ자'라는 식으로..)

불여우 1.5베타가 나왔다길래 설치해봤다가 마우스 제스쳐가 안되길래 다시 예전 버전으로 돌아왔다. 이 놈의 손꾸락, 이제 학교 컴실에서 익스플로러 위에다 가로 세로 직각으로 선을 긋고 있다;;

2. 핸드폰이 시계 대용으로 사용될 줄 몰랐다.
지난 여름 방학 때, 공부한답시고 핸드폰을 집에다 두고 다녔다. 저녁이나 밤에 들어오면 핸폰 한 번 쓰윽 보고 '음~ 그래, 요놈이 전화했고, 저놈이 문자보냈구나'라고 하고 그냥; 잤다. 처음에는 친구들이 난리를 치더니 요즘은 오히려 내가 먼저 전화하면 고마워하면서(!) 받아주신다.

후천성 애인 결핍증의 합병증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루에 문자 한 두개 정도 주고받는 날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고 문자나 전화연락을 기다리느냐면 그건 또 아니다. 더군다나 연락이 와도 빠안히 액정을 보면서 '얘가 전화를 하네. 왜 했을까?'라고 생각만 한다. 그러다 한참 뒤에 생각나면 연락해보고 잊어버리면 또 그냥 넘어가버린다.

생일이라든가 기타 축하해줄 일, 위로해 주어야할 일이 있으면 꼬박꼬박 연락을 하긴 하는데 어쨌든 내 휴대폰의 주요 기능은 "시계"가 되고 말았다.

3. '누군가를 만난다'라는 것의 의미가 이토록 소중한 것인지 몰랐다.
오늘은 군대 후임병 녀석들을 만났다. 제대한 지 일년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불러서 죄송하다는 녀석들에게 "군대에서도 충성 안 했던 녀석들이 무슨... 됐다, 짜샤." 라고 농을 건넸지만 별 시덥지 않았던 고참을 잊지 않고 불러주는 녀석들이 고맙다.

일병 휴가 때 - 담배를 꺼내물면 "자살방지제"라는 문구가 담배 위로 선연히 보이는 것 같았던 그 때 - 는 미칠듯이 군대가 싫었다. 말년 휴가를 앞두고 하루하루가 지겨움의 연속이었던 그 때는 내가 어디가서 이런 대접 한 번 받아볼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오늘 뿐만 아니라 종종 후임병 녀석들이 "형! 우리 술 한 잔 해야죠?"라고 전화를 걸어오면 조금 미안해진다. 더 잘해줄 수 있었는데, 더 좋은 고참이 되었어야 하는데... 하는 약간의 후회와 아쉬움이 뿌옇게 피어오르기 때문이다.

구리디 구린 복학생 선배를 "형!" "오빠!"라고 불러주면서 고맙다고 말해주는 후배들을 볼 때도 나는 늘 면목이 없어진다. 입대 전, 나는 참 못난 짓을 하고 도망치듯 빠져나온 학회였는데 그네들은 온전히 나를 받아주었고, 나의 복학 첫 학기는 성공적이었다.

무엇 하나 뚜렷하게 내세울 것 없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기억해주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나는 지금, 이 곳에서 살아갈 수 있다.

약간의 알코올 기운은 언제나 횡설수설을 하게 만드는 것 같다.
하지만 예전에 미쳐 몰랐던 것들을 하나씩 알게 되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하나의 큰 축복이다.
2005/09/10 23:55 2005/09/10 23:55

그러고보니 나는 언제나 내 생각만 했던 것 같다. 아니 내 생각만 한다. 그러다 오늘 문득 그 사진을 보고서야 네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걸 알았다.

이제껏 살면서 별 다른 어려움없이 순탄한 인생이었다. 그래서 내가 마음먹은대로 이루어왔고, 그렇게 살아왔다. 사람도, 사랑도 그렇게 해왔던 것 같다. 처음으로 내 마음처럼 되지 않았을 때 나는 미쳤었지. 여전히 그 버릇을 못버렸나보다. 난 여전히 내 생각만 했다.

요즘들어 부쩍 '그 애가 아닌 너를 선택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망상에 빠져들곤 한다. 하마터면 엊그제 만났을 때 큰 일 낼 뻔 했다. 안하길 백 번 잘했다는 생각이다.

사람 마음 참 기묘하구나.

어쨌든 난 좋은 사람으로 남아있고, 너 역시 좋은 사람으로 남아있다. 내 욕심이 자꾸 그걸 망가뜨리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러고보면 나도 참 줏대없는 놈이다. 외롭다는 핑계로 여기 저기 쑤시고 다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바람기 테스트'를 했을 때 나왔던 결과가 요즘의 나에겐 꽤나 들어맞고 있어서 걱정이다. 건실한 가장의 전형이 될 수 있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말이지.

결혼은 하지 않겠다는 네 말이 오래도록 귓가에 맴돈다. '부모 같고 자식 같다'던 그 사람은?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 내가 애인이 된다면?

더운 여름, 뇌세포가 조금 녹은 것 같은 하루다.
2005/08/05 23:59 2005/08/05 23:59

우리말은 '아'해 다르고, '어'해 다르다. 굳이 '하나의 음운 때문에 의미 차이가 생겨나는 최소 대립쌍에 대한 이해'가 없더라도 우리는 살면서 말 한 마디 잘못해서 생겨나는 무수한 사건/사고들을 접하게 된다.

사람이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연애"라는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두 사람이 만나는 소개팅의 경우에는 불과 몇 시간 안에 상대방을 파악하려고 한다. 수십년을 같이 부대껴온 식구들도 서로를 온전히 이해한다고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는데 그 짧은 순간에 서로를 얼마나 알 수 있을까.

가끔씩 걸려오는 친구 녀석들의 전화는 그런 불완전한 이해의 무서움을 실감하게 해준다. 녀석들이 털어놓는 불만의 대부분은 여친에 대한 오해로부터 시작된다.

내가 무슨 "연애의 도사"도 아니고, 1급 연애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며, 무엇보다 지금 연애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녀석들은 여친과 싸우고 나면 다짜고짜 나에게 전화를 건다. "내가 잘 아는 건 아니지만..."으로 시작하는 나의 조언(?)은 언제나 "너희들 문제는 너희들이 제일 잘 알테니까..."로 끝난다. 왜 연애도 못하고 있는 나에게 이런 전화를 하느냐고 물어보면 녀석들은 늘 이런 식이다.

"야, 그래도 니가 말해준대로 하면 여친이 화가 풀리거든."

씨바, 가뭄난 논에 불지르는 심보인지, 화톳불 꺼질까 걱정하는 며느리마냥 신나게 염장을 지르는 이유는 뭐냐고요.. -_- 어쨌든 나의 몇 마디 말이 그들의 관계에 도움이 되었다니 나로선 고마워해야할 것 같긴 하지만... (서러운건 어쩔 수가 없다.)

친구 녀석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보면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자신들만의 "오해"를 부풀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연인끼리 생겨나는 문제들의 대부분은 상대방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남자는 여자를 모르고, 여자는 남자를 모른다. 문제는 거기서부터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할까, 내 마음은 몰라주고.. 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저 사람은 어떻게 받아들일까..하는 점을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한게 아닐까. 내가 녀석들에게 늘 구박하는 건 단 한 가지 뿐이다.

"으이구, 이 미련 곰팅아. 여자들이 얘기할 땐 좀 들어줘라! 쫌!"

사실 방금 전에도 한 녀석이 투덜투덜대기 시작했다. 자기가 군대에서 얼마나 고생하다가 나왔는데 여친이 영 시원찮은 반응이란다. 나는 단호히 말해주었다.

"그러게, 누가 군대가래?"

그 녀석은 자신의 여친이 얼마나 걱정하고 있었는지는 안중에도 없다. 그 여친이 나에게 얼마나 자주 연락을 하고, 얼마나 자주 그 녀석 이야기를 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 여친과 내가 친하다는 사실에 은연중에 못마땅한 기색을 내비칠 때도 있을 정도다.

바보 자식. 스스로 여친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여친한테 이해해주기를 바란다는건 너무 이기적이지 않은가. 그것도 군인이란 자식이.

이해와 오해는 글자 하나 차이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글자 하나를 바꾸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되돌아봐야할 필요가 있다. 이해를 오해로 바꾸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지만 오해를 이해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우린 많은 인내와 깊은 배려가 필요할테니 말이다.

또 전화가 왔다. 한결 나아진 목소리다. 저녁 먹자고 하네. 짜식..
그래도 이 친구, 군대에서 개고생하다가 왔을텐데 맛난거나 좀 먹이고 와야겠다.
2005/08/02 19:38 2005/08/02 19:38

친하게 지낼 뻔한 동갑내기 남학생이다. 보통 왠만한 사이라면 동갑이고, 같은 단체에서 활동했다면 "친구"라고 부르는데 지금은 친구라고 부르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문제는 이 사람을 성당 활동을 하다가 알게 되었다는 데에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사람이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라는 사실이다.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 이 둘은 언제부터인가 얼굴을 마주치고 눈빛을 교환하면서도 끝까지 쌩이다. 전혀 낯모르는 사이라도 인사를 나눌만한 상황이라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그들도 나도.

왜 이렇게 된 것인지 아직도 난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언제나처럼 인사를 했다가 상대방이 무시한 뒤로는 나 역시 쌩~하고 있다는 점 뿐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언제까지 계속될 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불편한 것만은 사실이다. 신경도 안써지면 좋겠지만 사람인지라 그렇게는 안되고...

더 불편한 건 그래도 명색이 "사랑하기 위해서" 성당에 나가는데 거기서 만난 사람들을 이렇게 대해야 하나 라는 골 깊은 회의감 때문이다. 고백성사를 보긴 했지만 신앙 상담도 한 번 해봐야 할 것만 같은 느낌. 어렵다. 아무것도 아닌데 어렵다.

그 시절, 가장 혁명적인 삶을 살았던 예수님은 모든 이들을 사랑했다. 나는 가장 고질적인 병을 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인류 탄생 이래, 예수님이 죽은 지 이천여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고치지 못한 병, 욕심.

그 사람들이 내게 먼저 인사하기를 바라는 욕심. 내 마음을 다치고 싶지 않은 욕심. 내가 먼저 다가서는 불편함을 견디기 싫은 욕심 등등.

일부러 찾아가서 인사까지 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우연히 마주치게 되면 먼저 인사를 해봐야겠다. 자뭇 궁금하지만 어서 이 불편함을 털어버리고 싶다. 답례가 있건 없건 그것은 내 마음과 상관없는 일 아닌가.

휴우. 날은 덥고 밤은 깊은데 잠은 안오고 잡생각만 늘어 난다.

괜히 더 우울해지는 밤이다...
2005/07/21 02:19 2005/07/21 02:19

+ 옛 사이트들의 모습을 링크해놓은 것들은 로딩의 압박이 있습니다. 14400bps모뎀으로 인터넷하던 그 때를 기억하며 조금 여유를 부려보세요. 히힛.

내 홈페이지에 마지막으로 올렸던 그림


노스트라다무스가 "지구 종말의 그 날"이 닥쳐올 것이라던 1999년.
"수능날 두고 보자던" 노스트라다무스가 더 이상 무섭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파릇파릇한 꽃미남(!) 새내기가 되어 있었다.

입학식 이후 선배들이나 동기들을 만나면 수첩을 꺼내들고 삐삐번호를 서로 나누던 그 시절(물론 "걸릴 때까지 걸어야하는" 걸리버라든가 "한국 지형에 강한" 본부폰 등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긴 했지만 나는 꽤 오랫동안 삐삐를 고수했고, 나 이외에도 몇 명의 사람들은 삐삐를 사용했다), 한메일이 다음으로 탈바꿈한지 얼마안되었을 무렵 전국에 인터넷 열풍이 불어닥치기 시작했다.

수업 때 조 모임을 한다든가 기타 모임이 있을 때 삐삐번호 대신 휴대폰 번호를 적어주고, hanmail.net으로 끝나는 이메일 주소 하나쯤은 당연스레 적어주게 되었을 무렵, 홈페이지 만들기 태풍이 불어왔다.

99년 2학기 때 였는지 00년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인터넷의 기초와 실습"이라는 과목을 수강했고, 기말과제는 홈페이지 만들기였다. 그전에 컴퓨터로 하는 일이라곤 이메일을 주고받거나, 야후를 돌아본다거나, 나우누리나 하이텔에서 채팅을 조금 하거나, 게시판을 둘러본다거나 하는게 전부였다. 아! 물론 게임과 므훗~한 것들의 감상도 함께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각종 포털 사이트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그 와중에 무료 홈페이지를 제공한다는 곳들도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기말고사 과제도 할 겸, 나도 홈페이지라는걸 한 번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 오만가지 사이트들을 다 뒤져서 꽤 여러 곳에다 공간을 만둘어 두었었다.

몇 군데를 꼽아보면 Lycos가 잡아먹은Tripod, Dreamwiz네티앙 정도가 기억난다. 여기말고도 꽤 여러 곳에도 상당히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한 곳도 있었는데 (몇 십 메가의 용량, 광고없음, 게다가 FTP와 CGI도 가능하다는 식)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외국 사이트에 좋은데가 많았는데... 아무튼 엄청 많았던 것은 확실하다;

어쨌든 나의 첫 홈페이지는 드림위즈에 만들었고 wo.to로 주소도 간략히 만들어 놓았다. 당시 숱한 개인 홈페이지가 그랬듯이 자기소개, 취미소개, 게시판, 방명록 수준이었고, 뭔가 특별한 공간을 만든다기보다 [나도] 홈페이지를 만들어 본다는 생각이 더 컸던 것 같다. 게다가 학점도 A+을 받았으니 더 바랄게 무엇인가. ^^v

수업은 끝났지만 홈페이지마저 끝내기엔 그간 들인 공이 너무 아까웠다. HTML코드며 게시판 소스(이지보드, 제로보드)며, 방명록 소스(Pury 방명록. 요게 당시에 참 유행했던 방명록이었다. 신의 키스님 스킨이 꽤 인기있었는데 요즘도 쌩쌩 돌아가는 홈피를 보니 왠지 반갑다. ^^; 알고보니 Pury BBS는 태터툴즈 제작하신 분이 만든 것이라더라. 이런건 인연으로 안쳐주나? 흐흐) 등등을 썩히기가 아까웠다.

나름대로 몇 차례의 리뉴얼-리뉴얼이 뭔지도 몰랐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걸 보고 무작정 나도 리뉴얼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리뉴얼이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별다른 내용없이 알음알음으로 입소문을 내서 지인들과의 안부를 묻는 - 요즘의 싸이월드 미니홈피 기능 ^^; - 정도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다 00년 가을에서 01년 초봄에 이르러 내 인생 최대의 격변기를 맞았다. 첫사랑과 헤어진 것이다! ㅜ_ㅜ
휴학하고, 삭발하고, 귀뚫고, 물 한 모금 안마시고 침대 위에서 3일 내내 퍼질러자는 등의 만행을 서슴치 않아서 온 식구들이 쓰린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들었던 그 때, 내 홈페이지를 새로 구성했다.

그것이 바로 "관.계.생.각"

우연히 80포트 이벤트에 참여했다가 운 좋게 당첨되는 바람에 매우 훌륭한 홈페이지 공간도 생겼다. 용량 무제한이고 광고도 없고, FTP지원되고 PHP, CGI도 지원하는 그 곳. 나에겐 꿈의 공간이었다.

페인트샵프로나 페인터 등등을 이용해서 나름대로 정성껏 메뉴그림도 그리고, 여기저기서 예쁜 그림파일 좀 가져오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쓸만한 홈페이지 모양은 한번씩 따라해보면서 [나름대로 야심찬] 나만의 [관계생각]을 꾸려나갔다.


                




(발로 그렸음;;;;;; gif는 어디선가 업어온 그림;;)


내가 입대할 때까지 약 1년도 채 못되는 기간 동안에 운영했던 곳이었지만 간간히 낯모르는 이들도 찾아와주었고, 친구 녀석들이 덕담도 남겨주었기 때문에 꽤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입대로 인해서 오랫동안 관리가 소홀해 진데다 첫사랑 혹은 군대에서 헤어진 여친으로 추정되는 몇 개의 글도 게시판에 올라오곤 했기 때문에 휴가 때 잠깐 들여다보는 것 말고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었다. 그러다 제대하고 보니, [싸이월드]가 내 앞에 나타나있었다! 이걸 모르면 "복학생 아저씨"라는 소리에 낼름 가입했고, "관계생각"은 그저 내 머리 속의 생각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그 와중에 휴가 나와서 껄쩍대다가 게시판 한 번 날려먹고, 방명록 소스 바꾸다가 두어번 갈아엎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정이 들었기 때문에 폐쇄는 하지 않고, "언젠가는 반드시!"라며 훗날을 기약하고만 있었다. 당시 내 자료를 하드에 백업해놓기도 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되돌아보니 사라져있었다. 그러다 "백업해야하는데..."라는 생각만 하기를 몇 달... 군대에서 본 잡지책에 블로그란게 있다는 소리가 기억나서 여차저차해서 80포트 계정에 조그를 설치했다. 요거참 재미지네!라며 블코에도 등록하고, 태터툴즈가 쓰기 편해보여서 블로그툴을 바꿔보기도 했다.

그 재미진 찰나, 어느날 갑자기 눈 앞에 달려든
"404 File Not Found"

울며 겨자먹기로 이글루스에서 새 삶을 시작하려는 찰나, 골빈해커님이 구원의 손길을 뻗어주시어 요로코롬 알콩달콩하게 지내게 되었다.

아.. 이렇게 장황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블로그를 돌아다니다가 어느 곳에선가 Internet Archive에 관한 글을 보게 되었다. 이름하야 Wayback Machine. 과거를 돌려준다는 그 오묘함에 이끌려 내 기억 속의 인터넷을 하나씩 끄집어 냈다. 물론 나의 "관계생각"도 함께.

꽤 오래전에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제서야 글을 쓴다. 어쩌면 나는 그 때까지도 과거를 되돌아보는 일이 무서웠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은 문득 그 때가 참 그리워서, 그 때 공들여 썼던, 하지만 지금 읽으면 유치하고 허무하며 씹다뱉은 껌 같은 글들이 아까워서, 볼마우스에 때가 낄 때까지 비벼대며 그렸던 그림들이 아쉬워서 다시 찾았다.

결과는 대만족. 몇 개의 그림이 빠진 것 말고는 거의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게시판의 글도 몇 개를 제외하고는 확인할 수 있어서 참 야릇한 감상에 빠져들었다. "그녀들"의 글은 지금봐도 참 가슴시린다.

이제 더 늦기 전에 나의 "관계생각"을 이 곳에 정리해 두려고 한다. 유치했지만 당시엔 참 치열하고 싶었던, 그저 묻어두기엔 꽤 소중한 내 기억의 한 부분을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금 돌이켜보련다.

아~ 재밌어요, 재밌어~! ^_____________^
2005/07/19 20:48 2005/07/19 20:48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던 선생님이 한 분 계신다.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그러니까 이제 막 고등학교 입학식을 앞둘 무렵, 나는 동네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 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치던 분이시다.

고등학교 2학년 1학기 때까지 나는 그 학원을 다녔다. 수학은 3개월 정도 다니다가 말았고, 영어는 1년쯤 듣다 말았지만, 국어는 계속 들었다. 그 선생님이 참 좋았기 때문이다.

그 분은 그 때까지 내가 만난 다른 어떤 국어 선생님들보다 더 쉽고 재미있게 국어를 가르쳐 주셨다. 우리가 알고 싶어했고, 알아야하는 새로운 일들을 설명해주시기도 했고, 재미난 농담도 많이 해주셨다. 그 분을 통해서 나는 시를 좋아하게 되었고, 소설을 좋아하게 되었고, 문학을 좋아하게 되었고, 국어를 좋아하게 되었다.

내가 인문계로 가겠다고 하던 날, 우리 아버지는 내내 침묵하셨다. 그 때, 나는 자신있게 말했다. 국어 공부를 하겠다고. 비록 직업이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국어 공부하면 재미있고 좋다고, 계속 이 공부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결국 아버지는 침묵 끝에 허락하셨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수능 시험을 치르고 원서를 쓰면서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국어국문과를 선택했다. 3군데 원서를 넣으면서 모두 국어국문과를 선택했다. 모두 합격했다. 썩 좋은 학교에 다니게 된 것도 기쁜 일이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참 기뻤다.

새내기 티가 줄줄 흐를 무렵, 문득 그 학원 선생님이 기억났다. 날 참 많이 예뻐해주신데다, 우리 학교 대학원에 다니신다는 얘기를 얼핏 들었던 것 같았다. 전화 통화를 한 후, 우리 학교 학생회관에서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처음 뵙게 되었다.

군대 가기 전에 그 선생님을 만나뵙고, 이런저런 얘기들을 했다. 선생님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으신 듯 했다. 난 선생님을 만나는 동안에는 까까머리 중고등학생이 되어있었고, 힘들고 답답했던 마음을 덜어버릴 수 있었다. 선생님이 고마웠고, 또 감사했다.

작년 말쯤, 내가 먼저 연락을 해서 선생님을 뵈었다. 대학원을 가야할지, 임용고사를 봐야할지, 취직을 할지 이래저래 선택의 기로에서 난 무엇을 해야할지 잘 몰랐고, 대학원에 계신 선생님께 조언을 구해보려고 했다. 선생님은 언제나처럼 내가 힘을 낼 수 있는 말들을 많이 해주셨다. 그리고 "성공에 대한 안내는 성공한 사람에게로부터 들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선생님으로부터는 대학원 얘기만 들었고, 다른 이야기는 내가 직접 알아보기로 했다.

헤어질 때 선생님이 명함 몇 장을 주셨다. 하나는 지금 계신 학원 명함이었고, 다른 하나는 인터넷 쇼핑몰 명함이었다. 사모님과 함께 하시는 거라고만 말씀하시고 별다른 말씀은 없으셨다. 난 뭔가 사업을 시작하셨나보다..라고만 생각하고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다.

올해 초, 임용고사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고, 계절학기 수강에다가 이래저래 잡일이 겹치면서 정신없이 정초를 보냈다. 어느날, 선생님이 문자를 보내셨다. 잘 지내냐고, 보고싶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새해 인사도 드리지 못한게 좀 죄송스러워서 선뜻 연락을 못드렸다. 하지만 내게 어떤 분이신데... 전화를 드려서 약속을 잡았다.

엊그제 학교에서 만났을 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선생님은 내게 "꿈"이야기를 강조하셨고, 몇 권의 추천해주신 책도 읽었다. 다만 중고등학교 때 추천해주시던 책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책들이었지만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책이니까 믿고 읽었다. 나에겐 좀 어색하고 거북한 면도 있었지만 선생님이 좋다고 추천해주셔서 끝까지 읽었다.

책 이야기며, 꿈 이야기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선생님이 시간관리에 관한 강의가 있으니 시간되면 한 번 들어보라고 하셨다. 뭐 그런 것까지 들을 필요가 있을까 싶긴 했지만 선생님이 강력추천하셔서 한 번 들어보기로 했다. 지금 나에겐 시간 관리 능력이 최대한 발휘되어야 할 때이기도 하기 때문에 별 스스럼없이 약속을 했다.

어제 선생님과 약속 장소에서 만났다. 선생님은 날 데리고 모 네트워크 마케팅 회사의 물류센터 정도 되는 곳을 보여주시고, 이런 저런 설명들을 해주셨다. 오늘 강의가 이 곳에서 꽤 높은 직급에 있는 분이 하는 강의인데 이 회사 얘기가 안나올 수가 없을테니 미리 알려주시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조금씩 기분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그 네트워크 마케팅 회사 제품은 우리 집에도 꽤 있고, 다단계 판매방식이 피라미드와 달리 합법적이며 그 회사는 합법적이고 널리 알려진 회사라는 정도의 배경지식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금씩 선생님과 나 사이에 거리감이 생긴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사모님과 다른 여자분 한 분이 오셔서 네 명이 같이 식사를 했다. 선생님은 내가 선생님과 10년 된 사제지간임을 두 분께 말씀드렸다. 나 역시 선생님과 10년이나 되었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그 것보다 불과 이틀전에 내가 알던 선생님과 너무 다른 것 같다는 느낌에 더욱 놀랐다.

강의가 시작되기 전, 선생님은 그 곳 서점에 들러서 보다 적극적으로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2시간짜리 강의를 듣게 되었다.

강의 내용은 나쁘지 않았다. 다만 강의의 목적은 그 회사와 관련된 이들이 보다 더 자신의 사업을 확장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었고, 나처럼 회사와 관련없는 사람이 그저 한 번 듣기엔 썩 좋은 강의는 아니었던 것 같다.

선생님 앞에서 차마 똥씹은 표정은 하지 못하고, 그럭저럭 어색해하며 나가려고 하는데, 일층에서 사람들이 둥그렇게 모여있었다. 여기저기 소그룹으로 나뉘어서 원을 이루고 서있는데, 나와 선생님도 그 중 한 곳으로 갔다.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강의소감을 말했다. 내 차례가 오자 선생님이 간략하게 내 소개를 하시곤 나에게도 소감을 말하라고 했다. 난 무척 당황해서 안하려고 했는데 분위기상 "좋았다" 정도로만 대답을 했다. 소감이 끝나자 다음 강의 안내를 하고는 갑자기 사람들이 손을 잡는다. 헉. 내 손도 잡는다. 그러더니 중간에 리더격인 듯한 분이 말씀하신다. "되게 어색해 하시니까 그냥 '하나, 둘, 셋'만 해주세요."라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하나, 둘, 셋을 외쳤다. 뭐라뭐라 구호를 외치더니 헤어졌다.

나오는데 선생님이 같이 따라오신다. 선생님은 강의 하나 더 듣고 가신다고 했다. 나는 못내 씁쓸한 마음을 지우지 못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검은 가방 하나를 내밀어 주신다. "집에 가서 한 번 꼭 읽어봐. 테잎도 한 번 들어보고." 그 앞뒤에 있었던 말은 내가 놀래거나 너무 당황하지 않았기를 바란다, 내 의도는 좋은 강의 들려주려던 것이었다 등등의 내용이었지만 너무 혼란스러워진 내 귀에 그런 말은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내일 아니 벌써 오늘이 되었군. 오늘 점심 때 선생님을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선생님이 무언가 잘못되신 것은 아니다. 분명히 합법적인 회사에서 합법적인 방법으로, 합법적인 활동을 하고 계신 것이다. 나는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하지만 작년 중순부터 불과 몇 주 전까지, 선생님이 내게 해주셨던 말들이 대부분 오늘을 위한 준비였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꿈을 되찾으라는 말, 성공은 성공한 자만이 말할 수 있다는 말... 추천해주신 책들도 어제 본 그 회사의 서점에 진열되어 있던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어제는 별생각없이 잠들었는데 오늘은 무척 가슴이 아프다. 이제 곧 선생님을 만나서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나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까. 선생님은 내게 자료를 읽었는지, 테잎은 들었는지 물어보실 것이다. 자료는 읽어보았지만 테잎은 듣지 않았다. 듣고 싶지도 않았고, 들을 시간도 없었다. 선생님은 내게 무슨 말씀을 하실까? 나의 미래와 꿈을 준비하며, 함께 하자고 권유하실까?

두렵다. 한편으론 끝없는 절망과 회한이 밀려온다. 내가 그토록 따르고 좋아했던 선생님이 왜 내게 이런 모습을 보이시는건지 알 수가 없다. 설령 그 사업이 정말 비전있고, 정말 획기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나는 아직 사업을 할 상황이 아닌데...

엊그제 선생님은 나를 처음 만날 때, 당신은 햇병아리 강사였다고 말씀하셨다. 그 때는 스스로 초보라는 것도 몰랐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그 때의 선생님이 미치도록 그립다. 내게 문학과 인생의 새로운 면을 보여주셨던 그 분이 왜 이렇게 변하셨을까.

내가 그 회사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을수도 있다. 어쩌면 대다수 사람들의 생각이 잘못되었고, 알고보면 정말 좋은 곳일수도 있다. 그래서 너무 좋은 곳이라서 선생님이 내게 소개시켜준 것일 수도 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좀 있으면 그 분을 만나야 한다. 나는 내 평생의 은사님으로 모실 줄 알았던 한 분의 스승님을 이토록 망설이며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내가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쓰리다. 칼로 베어 소금을 뿌린 것 같다. 모르겠다. 세상이란, 사회란 이렇게도 힘든 곳인가... 두렵다...
2005/01/28 09:13 2005/01/28 09:13

익명성과 가식의 오묘한 관계

Posted 2004/09/14 23:52,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인터넷의 익명성 문제는 잊을만하면 한번씩 불거져나오는 뜨거운 감자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오가는 숱한 글들을 보노라면 과연 이들이 실제 얼굴을 맛대고서도 이런 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더불어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식적이다]라는 말 역시 내게 있어 끈질기게 따라붙는 말 중의 하나가 되고 있다. 어른이 되면서 어느 순간, [보여주는 나]와 [본래의 나]를 구분하고 있다는 걸 느끼는 순간, 얼마나 섬찟했는지 모른다.


얼마전, 이 두 문제를 동시에 터뜨려버린 개인적인 사건이 있었다. 그 사람은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겠지만, 이미 그 사람의 가면은 송두리째 벗겨졌고, 나는 본의 아니게 그 가려졌던 속내를 휘젓고 다니게 되었다.


인터넷이 새로운 통신수단으로 대중들에게 막 퍼져나갈 때 즈음 - 야후가 점점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고, 알타비스타, 까치네 등이 활발하던 즈음 - 너나 할거 없이 이메일 주소를 만들면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서의 인터넷을 반겼다. 그 후, 쏟아지는 스팸 메일로 인해서 메일의 효용성에 의문이 제기될 무렵, 메신져가 등장했고, 윈도에 MSN이 포함되고, AIM과 ICQ를 사용하던 일부 사람들도 MSN으로 이동하는등 격변을 거치면서 또하나의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상대방이 자신을 삭제/차단했는지 알아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돌아다니기 시작하는 등 그 부작용 또한 만만치가 않다.


최근 한풀꺾인 듯 하지만 불과 몇 개월전까지만 해도 [싸이월드] 바람은 무척 거셌다. "웬만하면"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한메일 주소만큼, "젊은이라면" 누구나 싸이월드의 미니홈피 주소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정도였던 것이다. 그러나 곧 개인 사생활 침해가 문제가 되면서 그에 따른 부작용 또한 숱하게 생겨났다.


요즘 사람들은 - 아마 젊은 사람일수록 더 이런 경향을 보일 것 같다 - 인터넷의 익명성에 기대어 인간 본연의 모습(늑대같은) 을 드러내고 싶어하고, 오히려 실제 만남에 있어서 점점 더 가식적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등장한다고 해서, 사람과 사람이 더 쉽게 다가갈 수는 없는 것 같다.

2004/09/14 23:52 2004/09/14 2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