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습중인 학교에서 오늘부터 중간고사가 시작되었다. 나 역시 중고등학생 시절, 시험기간은 정말 피하고 싶은 기간이었다. 시험 시작 전날, 내일 지구가 멸망하진 않으려나, 학교가기 전에 우리 학교 운동장에 폭탄 하나 안떨어지나 늘 고민(?)하곤 했었다.
그러나.
선생님이 되고 보니 학생들의 시험기간은 마냥 좋다; 무엇보다 일찍 끝난다. 곧장 집으로 간다면 점심도 집에서 먹을 수 있다! 학생들에겐 지옥같은 나날이겠지만 선생님들에겐 중간 휴식 기간이다. ^^
물론 시험문제 출제에 대한 압박이 실로 엄청나긴 하다. 요즘은 내신 비중이 워낙 높아진데다, 동점자가 많을 경우 전체 학생이 중간 등급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난이도 조정에도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시험이 끝나고 이어지는 학생들의 문의에 일일히 답변해줘야 하고, 주관식 문제 채점도 여간 힘이 드는게 아니다.
이번 시험부터 우리 학교에서는 "학부모 공동 감독제"를 실시하고 있다. 1,2학년들의 고사장에 교사 한 명과 학부모 한 명이 함께 들어가는 것이다. 시험이 끝나면 말도 많고, 탈도 많은데 요즘 이렇게 학부모들이 함께 감독하는 것이 꽤 인기 있는 모양이다.
그만큼 부정행위에 대한 시선이 한층 날카로워진 것 같다. 책상 위에 끄적여놓거나, 컨닝 페이퍼를 본다거나 하는 정도는 이제 애교로 취급할 정도이다. 초치기야 우리 때부터 있었다곤 해도; 이젠 핸드폰까지 등장했다. 우리 학교에서도 시험 기간 중에는 핸드폰을 휴대하는 것조차 아예 금지시켰다.
이런 와중에도 컨닝을 시도하는 녀석이 있었나보더라. 마지막 시험이 끝나고 교무실에서 큰 소리가 나는걸 들었다. 어떤 녀석인지 참 안타깝다. 선생님은 물론 학부모까지 있는 상황인데다, 자기의 양심마저 속이는 결과가 된 것 아닌가.
점수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학생들에겐 전부인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특히 고3이 되면 수능점수가 인생 최대의 목표가 되고, 희망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의 삶에는 훨씬 더 중요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연연해할 수 밖에 없는게 우리 학생들의 현실이다.
실습을 하면서 교육정책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일선 학교에서는 서울대학교의 입시정책 하나로 인해 전체 교과과정을 재편성하기도 한다. 서울대학교를 많이 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혹시라도 지원하는 학생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해야하기 때문이다.
먼저 실습을 다녀온 친구의 말을 들어보면 교생수업 첫 날, 처음 받은 질문이 "선생님, 대학교는 어디에요?", "선생님은 수능 몇 점 받았어요?"였단다. 씁쓸하지만 요즘 학생들의 현실이다. 첫사랑 얘기라도 물어볼까 싶어 온갖 소설을 짬뽕해서 있지도 않은
연애 얘기를 만들어갔던 친구는 결국 실습이 끝나는 날까지 그 얘기는 입 밖에 꺼내지도 못했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그 학생들이 중학생이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내일이면 실습이 끝난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닙니다"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지만, 시험기간에 그런 말을 어떻게 해주어야할지 난감하다. 언젠가 한 번 (학원 학생이었는지 과외 학생이었는지는 가물가물하다..) 어떤 학생에게 그 얘기를 해주었다가 "그래도 선생님은 좋은 대학교나왔으니까 그런 말 하는거잖아요"라는 말을 듣고 나서는 선뜻 그 말을 꺼내기가 어려워졌다. 성적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시험공부는 열심히 하라는 말을 아이들은 모순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휴우. 그래도 우리 반 학생들은 아직 1학년이다. 만사마를 닮은 연예인 지망생 녀석도 있고, 마술을 잘하는 아이도 있다. 나랑 한 마디도 제대로 못나누었지만 늘 나를 보면 수줍게 웃어주는 아이도 있고, 친구랑 싸웠지만 다 자기 잘못이라고 하는 녀석도 있다. 새벽까지 공부하다가 늘 잠에 찌들어사는 녀석도 있고, 밤새 오락하느라 눈이 벌개진 녀석도 있다. 검사가 되고 싶은 이유가 "멋있기 때문"이라는 녀석도 있는가하면,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어하는 녀석도 있다.
우리 반 아이들은 내 친구들보다 더 높은 등급을 받기 위해서 아웅다웅하기보다, 성적이 나쁘다고 스스로를 비관하기보다, 점수 몇 점 높다고 우월함에 가득차기보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알고 나아가 타인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흔들리며 방황하지만 넓은 가능성의 세계 속에 있다는 사실을 그 녀석들이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힘내라! 이 녀석들아!
너희들의 인생은 만점을 받을 자격이 있다!
+ 더불어 시험도 백점받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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