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구가 12월 14일 화요일에 춘천 102보충대로 입대한다. 그의 나이 방년 이십오세. 군생활이 2개월 줄었다지만 2006년 12월에 제대하면 곧 2007년. 그 때 나이 28살.
오늘 친구들과 늦게까지 환송회를 하고 내 침대에서 곱게 자고 있는 녀석을 보노라면 만감이 교차한다. 그 동안 일부러 "군대가봐라. 너는 완전 X될 것이다"라며 마구 놀려대었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더 짠해지는 마음을 녀석이 알까. 오늘도 저 녀석을 먼저 보내려고 했지만 내가 먼저 취해버렸다. 아니 더 취하고 싶었다. 진심으로 취하고 싶었다.
무엇하나 확실한 것이 없는 이십대라지만 얼마 남지 않은 그 황금같은 시간을 군대에서 보내게 될 친구를 생각하면 문득 가슴이 먹먹해지곤 한다. 저 녀석을 처음 만난지 올해로 정확히 10년째. 지난 10년 동안 우리가 지낸 시간을 기억해보면 24개월쯤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지금 우리는 까까머리 중학생이 아니지 않은가.
기분좋게 웃으며 건강하게 잘 다녀오라고 격려해주진 못할 망정 자꾸만 녀석을 놀리게 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오히려 우울해질 것만 같아서...
불확실한 미래와 갑작스런 입대를 앞두고 여자친구 문제로 고민하는 녀석을 보면 자꾸만 예전의 내가 떠올라 더욱 마음이 쓰리다. 군대가 현실의 도피처일 줄 알았던 나의 착각을 녀석도 되풀이하고 있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남자라면 한 번쯤 다녀와야 한다는 군대이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남성우월적이고 권위주의적이며 형식적이고 겉만 번지르르한 무수한 사회악의 한 단면을 뼛 속 깊이 익히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내가 상병 휴가를 나왔을 때, 언젠가 친구 녀석이 왜 그렇게 입이 험해졌냐고 타박을 준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잘 몰랐지만 전역하고 학교를 다니면서 스스로에게 많이 놀랬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지난 26개월간의 언어와 몸짓이 묻어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사고방식마저도 변해있음을 깨달았을 때는 문득 섬ㅤㅉㅣㅅ해지기도 했다.
더 많은 얘기를 나누고, 더 좋은 위로를 건네주고 싶은데 잘 안된다. 그저 엉덩이 몇 대, 머리통 몇 대, 툭툭 건드려줄 뿐...
이제 나도 기말고사가 코 앞으로 다가온 지금, 친구가 군대간다고 나까지 마구잡이로 산다는 건 너무 철없어 보인다. 저 녀석이 제대할 때 쯤이면 나도 무언가 내 갈 길을 찾아서 열심히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장래를 약속할 예쁜 애인도 있어야할 터인데 자꾸만 나약해진다. 스스로에 대한 핑계만 늘어나는 것 같고...
술기운이 많이 가라앉았지만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프다. 이제 자야겠다. 저 녀석은 곱게 침대에 내버려두고 나는 방바닥에 이불깔고 자야지. 내가 녀석의 집에서 자게 될때도 언제나 녀석은 나를 안쪽 자리로 밀어넣곤 했었다. 이제 한동안은 그런 다툼조차 없겠지.
저 인간이 군대가면 나는 어찌 살까.. 싶다. 심심할 때 전화해서 농담 따먹기할 사람도, 술 먹고 전화해서 그냥 목소리 듣고 싶었다고 하면, 헛소리말고 빨리 쳐 자라고 말해줄 사람도, 문득 옛 사랑이 생각나 담배 하나 피워물며 고삐리 때 놀던 기억을 나눌 사람도 이제 잠시 내 곁에 없다. 이렇게 나는 또 이 세상을 홀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나보다.
너 군대가면 편지 한 통 안쓸거다. 너 군대가면 면회같은 건 생각도 안할거다. 라고 큰소리치지만 내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자기는 휴가 나와서 군대 얘기 안할거라고 나하고 내기까지 했지만 내가 궁금해서 못참을 것 같다. 아직도 군대리아는 여전한지, 초코파이는 롯데껄로 주는지, 오리온껄로 주는지, 고참들은 어떤지, 간부들은 어떤지, 부대 시설은 괜찮은지... 차라리 내가 나중에 갔더라면 조금은 덜 걱정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 놈아. 니 털오라기 하나 다치지 말고 온전히 다녀와라. 눈송이 떨어져도 다칠새라 피하고 다니는 말년 병장의 그 날이 올 때까지 묵묵하게 잘 지내다 와라. 네가 없는 이 곳이 과연 잘 돌아갈까하는 쓸데없는 잡념일랑 집어치우고, 제대하고 번듯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 마음가짐든든히 하고 나와라. 네가 들어갈 때 두 팔 가득 안아준 것처럼 네가 나올 때도 온마음으로 안아줄 수 있도록 잘 살다가 와라.
아무리 X같은 곳이지만 그럭저럭 시간은 간다. 지내다보면 또 그 곳 나름대로 정도 생기게 마련이더라. 사람 사는 곳, 어디인들 다르겠냐. 평소 네 꼬라지로 봐서 너는 무사히 군생활 잘할거다.제발 아프지 말고, 다치지만 말아라.
아직 실감이 잘 안나겠지만 입대 전 날, 틀림없이 뒤척이다 잠도 잘 못잘거다. 이런저런 상념들일랑 나에게 던져두고 너는 오롯이 몸만 가져가라. 어머니도, 누님도, 여자친구도 걱정마라. 내가 힘 닿는 데까지 도우마.
하필 나도 12월 군번인지라 그 동네의 겨울이 어떨지는 상상만해도 온몸이 전율한다. 귀찮다고, 손시렵다고 속옷 안빨아입거나 내복 안입고 다니지말고 꼬박꼬박 시키는대로 다 해. 그게 장땡이다. 군대에서 하라는 것만 하고, 하지 말라는 것만 안하면 무사히 제대한다. 장담하마.
대놓고 말하면 또 괜히 나만 혼자 분위기잡는 것 같아서 여기다 지껄인다. 네가 언제 보게 될지는 모르겠다만 뭐 안봐도 알겠지. 그치? 나도 이제 진짜 자야겠다. 심하게 졸립다. 내일 아침에 또 무슨 연습하네 어쩌네 하면서 일찍 일어나서 깝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건 연습안해도 가면 다 하게 되어있느니...
너의 건강과 평온한 군생활을 위해서 제대하는 그 날까지 성당 열심히 다니고, 기도도 틈나는대로 할께. 이럴 때 제일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게 "그 분"아니겠냐...
야! 이거 다 쓰고 나면 너 진짜 입대해버릴 것만 같아서 그만두질 못하겠다. 내가 무슨 니 애인도 아닌데 왜 이러는지 몰라. 궁상맞게. 후아. 잘 자라. 좋은 꿈 꾸고. 내일 아침에 보자.
2004. 12. 4.
친구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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