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

Posted 2008/06/02 14:58,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오늘 동생이 입대를 했다. 논산 훈련소로 들어갔는데 주특기를 무엇으로 배정받게 될지 무척 궁금하다. 나도 논산으로 입대했었는데 4.2인치 박격포를 훈련받고 전방 GOP부대로 배치됐었다. 내 전철을 밟는 것도 걱정이지만 시절이 하 수상하야, 혹여라도 전경으로 차출되진 않을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동생은 수도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수도회 교육과정 중 청원기를 보내고 있던 동생은 제대 후 약간의 시간 동안 수도사로서의 삶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고민해볼 기회가 있다고 한다. 그 후 수련기를 거쳐 유기서원기를 마치면 종신서원 이후 온전한 수도사로서 생활하게 된단다.

수도원에 있을 때에는 전화나 이메일은 물론 편지도 주고 받지 못했다. 그러다 이제 군대를 가니 편지도 되고, 전화통화도 할 수 있고, 휴가 때 얼굴도 볼 수 있으니 가족들로선 차라리 조금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그런데 참 묘한 것은 군인이 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너무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저 반길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점심 때 훈련소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동생과 전화통화를 할 수 있었다. 내가 입대할 때는 가족들이 함께 갔었는데 동생은 수도원에서 바로 들어간 것이라서 원장수사님과 함께 단둘이 갔다. 마음이 짠하지만 애써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려고 했다. 혹시나 싶어 집에 전화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는 목소리가 심히 잠기셔서 얼른 전화를 끊으셨다.

동생은 군생활도 잘 해낼 것이다. 온 식구들이 사랑하고, 심지어 하느님도 그를 보살펴 주지 않는가. 동생이 수도원에 간 이후, 오히려 기도를 더 자주 하지 못했었다. 이제 다시 온마음으로 기도해야겠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동생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그것밖에 없을 것 같다.

못난 형이었음에 가슴 아프지만 녀석의 웃는 낯을 볼 날을 기다리며 오늘 하루는 조용히 녀석과의 추억을 되새겨 봐야겠다. 하필이면 오늘은 날씨도 참 을씨년스럽구나...
2008/06/02 14:58 2008/06/02 14:58

19일 오전 2시 30분께 경기도 연천군 중면 중부전선 OO부대 최전방GP 내무반에서 김모(22) 일병이 수류탄 1발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해 소대장 김종명(26) 중위와 상병 7명 등 모두 8명이 사망하고 일병 2명 이 부상한 사고가 발생했다.

이 부대 소속 김모 일병이 일부 동료들이 잠을 자고 있던 내무반 에서 총기를 난사하고 수류탄을 터뜨린 것으로 알려졌다. (후략)

- 기사 전문 보기


훈련소에서 똥먹였다는 소식이 잠잠해지기가 무섭게 이번에는 "김일병"이 K-2 소총 갈겨주고 수류탄 한 방 살포시 터트렸단다. 그것도 내무실에서 자고 있던 같은 소대원들에게.

경기도 연천의 최전방 부대면 열쇠부대 정도 되는건가? 어쨌거나 "잘 걷고 잘 쏘는 산악의 용사들"인 을지부대원으로 GOP 근무를 해봤던 나로서는 온갖 만감이 교차할 수 밖에 없는 사건이다.

GOP지역에서 사고가 많이 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실탄"을 지급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실탄은 "북한군이 남침하면 경고해줘라!"라는 의미로 나눠주는건데 이걸 지들이 멋대로 자살하는데 쓰거나 남의 집 귀한 자식 죽이는데 사용해버리는게 문제다.

새벽 2시 40분쯤이었다니 새벽 근무 복귀중에 벌어진 일이었던 것 같다. 자세한 이야기는 잠시 후 11시에 있을 국방부 기자회견을 봐야 알겠지만 어떤 미치광이의 총질에 한창 때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은 가슴아픈 일이다.

사실 GOP에 올라가있으면 FEBA(일반 부대)에 있을 때보다 시간도 훨씬 빨리가고, 잠도 많이 자고, 먹는 것도 더 잘 먹는다. 다만 그 어느 때보다 외로움을 많이 느끼고, 지극히 단순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그 고독감은 때로 엄청난 심적 고통이 될 때도 있다.

그래서 GOP에서 우리 소대원들은 훨씬 예민해졌다. 특히 투입후 2달쯤 지날 무렵이 제일 심했다. (내가 있던 중대는 약 4개월마다 한번씩 교대로 전방을 오르내렸다.) 담배소비량도 늘고, 선임병이나 후임병이나, 장교나 사병이나 한껏 예민해져서 작은 실수 하나에도 눈에 불을 키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소대원들은 오히려 전방생활을 좋아했다. 재수없이 겨울에 올라가면 4개월동안 눈만 치우다가 내려와야했지만 그 곳에서는 우리 소대원들끼리 아웅다웅하면서도 알콩달콩하게 생활하는 잔재미가 있었다.

PX이용을 못해서 황금마차(노란색 군용 트럭 -_-;)가 오기만을 눈빠지게 기다렸다가 생일파티했던 일, 눈치우다 말고 씨름도 하고, 눈싸움도 하고, 눈에서 수영도 했던 일, 새해에 일출보며 각자 고향을 향해 큰절했던 일, 담배 보급이 늦어져서 꽁초까지 돌려피던 일, 누가 먼저 독수리를 발견하는지 내기했던 일, 눈 앞에 스쳐지나간 동물이 노루인지, 사슴인지, 산양인지 실갱이했던 일....

외롭고 지루한 전방생활이었지만 소대원들이 함께 했기에 그 마음의 짐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나만 고생한다고 생각하면 하루도 버티지 못했겠지만 다들 이렇게 고생한다고 생각하니 만사가 여유로워졌었다.

총질을 해댄 녀석도 많이 외롭고 힘들었으리라. "적막한 산하"에서 "긴 총 옆에 끼고 깊은 시름 하던 차에" 선임이었든, 후임이었든 조금 호되게 굴었을테지. 오늘 새벽 같이 근무나간 고참한데 한소리 들었는지도 모르고. 어쨌든 복귀해서 탄반납도 무시하고 그대로 내무실로 돌진했겠지. 자고 있는 동료들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고 그들의 핏발섰던 목소리만 기억했겠지...

삶이 조금 팍팍하다 느껴질 때, 나는 가끔 군대에서 나를 챙겨주던 고참, 나를 잘 따르던 후임을 생각하곤 한다. 제아무리 사람이 살 곳이 못되는 곳이라지만 군대 역시 사람 사는 동네였고, 군인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끈끈한 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군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는 가운데, 또 이런 사건이 터져서 안타깝다.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점점 군대는 삭막해져만 갈 것이다. 구타/가혹행위가 난무하는 군대만이 삭막한 군대가 아니다. 피끓는 청춘들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때, 더 이상 군대에서 사람 냄새 맡기는 힘들지 않을까.

부디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 다행히(참 이기적인 생각같지만) 내 친구 녀석의 부대는 아니었다. 아침먹다가 "경기도 연천"이라는 말은 없었던 첫 속보를 보고 어찌나 걱정했던지... 수화기 넘어 들려오는 녀석의 목소리는 여유로웠다. 그래, 이 놈아! 이제 너도 일병됐으니까 좀만 더 버텨라. ^^

+ 그러고보니 작년에 그 소대장은 어찌 됐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2005/06/19 09:25 2005/06/19 09:25

오늘은 면회가는 날!

Posted 2005/05/21 07:08,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싸랑하는 친구야!
조금만 기다려라! 이제 곧 너에게 달려갈께~~ 샤라방~


자식, 어제 밤에는 잠도 못잤지? 흐흐흐...



(요즘 넥슨에서 "만만이"라는걸 만들었더라. 카트타고 드리프트 한 번 꺾어주다가 잠시 해보았는데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듯... ㅎㅎ
2005/05/21 07:08 2005/05/21 07:08

개그맨은 군인인가?

Posted 2005/05/11 23:46,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1. 김깜박의 후배 폭행
군대에서 구타/가혹행위로 영창가게된 "고춧가루 상병"보는 기분이었다. 소위 말하는 "기준잡는 서열"에서 김깜박이 총대를 맨 것 같은 느낌이다. 평소 얌전하던 애들이 딱 한 번 후임병을 건드렸다가 영창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 생각이 많이 났다.

2. 웃찾사 출연 개그맨들, 박승대에게 결별 선언
군대에서 "꺾인 상병들"이 왕고에게 항명하는 상황을 보는 것 같다. 자기들도 고생할만큼 하고 이제 좀 편해질 때가 됐는데 왕고가 계속 "쪼이니까" 열받아서 엎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딱 그 상황이다.

...

요즘 군대는 내가 있던 군대가 아니라고 한다. (내 친구가 작년 12월에 뒤늦게 입대해서 아직 이등병이다. 가장 절친했던 친구라서 요즘 군대 분위기가 어떤지 훤히 듣고 있다)

내가 군인이었을 때에는 과도기가 아니었나싶다. 계속되는 구타/가혹행위 사고로 전 군에 구타/가혹행위 금지에 관한 명령이 연일 하달되고 있었지만 암암리에 선임병의 구타/가혹행위는 존재했다. 그러다 몇 건 크게 사건이 터졌고, 왕창 영창을 갔다오기도 했었다.

지금은 군대도 달라졌다. 정말 많이 변했다. 내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과연 그 곳이 군대인지조차 헷갈릴 정도가 됐다. 당연한 변화다. 팔팔 뛰는 한창 때의 시커먼 녀석들을 한 데 모아놨으니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지는 곳인데다 군대라는 곳이 "상명하복"의 계급사회이다보니 더욱 좋지 않은 일이 많았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었고, 고쳐져야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점점 나아지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폐쇄적인 집단인 군대조차 변화하고 있는 마당에 도대체 개그맨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군대가 바뀌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선임병들의 "우리 땐 안그랬어!"라는 심보때문이다. 나는 죽도록 고생했는데 후임병들이 편하게 지내는 꼴은 못보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고참 행세를 하지 못하면 게으름을 피울 수도 없기 때문에 그런 아쉬움은 더해지게 마련이다.

설마 저들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건 아닐까 걱정이다. 억압에 의한 복종을 권위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성적 사고보다 감정의 논리가 앞서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변화하지 않으면 삶은 참모습을 잃게 마련이다.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악습을 되풀이한다면 더 이상의 발전이란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개그맨들은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즐겁게 생활할 수 있을 때, 우리도 더욱 유쾌한 웃음을 웃을 수 있지 않을까.

"대한민국이 웃는 그 날"보다 그들이 먼저 웃을 수 있는 그 날이 오길 바란다.



#. 그나저나 이번 주 개콘이나 웃찾사 분위기, 엄청 기대된다. 이런 분위기에서 사람들을 웃겨야한다니, 그 부담감이란 63빌딩 백만개가 덮쳐오는 압박일텐데...

2005/05/11 23:46 2005/05/11 23:46

+개인적 상처를 회상하며 젯털님의 글에 대한 오마쥬

난 군대 일병 시절, 굉장히 용감한 심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스스로 부끄럽다고 생각하고 은폐해버린 저 먼 기억속의 한 공간에서, 당시 내가 있던 전방 GOP 소초원들을 경악시키는 놀라운 짓을 저질렀었다. 내가 저지른 것인지, 그런 일을 당한 것인지는 스스로 기억을 지워버린 것처럼 희미한데, 문제는 이... 이... 그 당시 사람들만 만났다 하면, 선임병이든 후임병이든 전화 통화가 1분만 넘어갔다하면, 매 번 그 기억을 되살려준다. 생각만 해도 까칠한 기억을.

당시에 내가 살던 곳은 GOP 소초, 해발 고도 860미터였나? 870미터였나? 잘 기억도 안난다. 당시 XX사단마크를 오롯이 달고 있었는데 난 그 때 그 마크가 슈퍼그랑죠가 등장할 때 바닥에 그려지는 팽이 자국인줄로만 알고 있었다. 하여간, 어느 날 나는 아침을 먹고 룰루랄라 근무를 나갔다. 이병 5개월째.(이등병은 "호봉"이란 말을 쓰면 존내 맞던 시절) 때는 02년이었다. 우와... 정말 멀고도 먼 시절의 이야기다. 강산은 한 번도 안바뀌었지만 나는 군인에서 민간인이 되었다. 세상에 이보다 기쁜 일이 있을까. 민간인이라니! 우야든동, 근무지에 나왔는데 날씨는 따뜻하고 고참은 졸기 시작했다. 나는 경계근무를 나와있었고, 소초까지는 꽤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제길. 우주적 비상사태가 벌어졌다.

순간적으로 엄청난 공포가 밀려왔다. 그 공포의 근원은 내면의 깊은 곳에서 내가 고립되었다는 것을 느낀 그런 공포가 아니었다. 내 공포의 근원은 내 몸의 뒤에서 시작되었다. 그 어두운 초소의 한 귀퉁이에서, 나는 막사에 돌아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식한 순간부터 몸의 신진대사가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 때까지 그저 기미만을 보이고 있던, 막사에 돌아가면 해결할 수 있을것이라 생각했던 그 공포의 근원은, 갑작스레 빨라진 나의 호흡과, 긴장된 근육과, 꼬이기 시작한 속으로 인해서 빠르게 현실화되었다.

그래. 똥 마려웠다...-_-;

겁이 덜컥 났다. 이제 그 괄약근으로 통해서 알싸하게 전해지는 압력은 슬슬 그 형상을 구체화시키고, 세상으로 삐져나오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나에게 전달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나 나름대로의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는 자세를 취했다. 궁뎅이에 힘주고 다리를 모로 꼬기. 컥. 그리고 어기적어기적 초소 입구에 기댔다. 그리고 1부터10까지 세기 시작했다. 근무 교대 시간까지는 10여분이 남아 있었다. 그 영원의 기다림. 난 국방부 시계가 느리다지만 10분이 그렇게 길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 내 계급이 일병만 되었어도 막사로 뛰어들어갔을 것이다. 아니, 그랬다간 쌌을지도... 가 아니라 그랬을거다.

다시 영원의 기다림 속에서 근무 서던 고참을 불렀다. 희망은 오직 하나. 상황실! 당시 상황실에는 초소와 인터폰이 연결되어 있었다. 다행히 난 상황병 고참과 친했... 아니 갈굼당하는 사이였다. 친하다고 생각한건 나뿐이었을테다. 여튼, 나는 각고의 노력끝에 나의 모든 근육의 힘을 그 곳(?)에 집중시키며 상황실에 연락하는데 성공했다. 할렐루야! 그럼 그렇지~ ㅋㅋ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날 버릴리가... 있군...-_-;

소대장이 허락안해주드라. 이등병이 무슨 화장실 가고 싶다고 근무 교대냐고!!! 이거 인권침해 아냐?! 제길! 드디어 몸속의 혈류속도는 시속 300km를 넘어섰다. 그와 동시에 모든 신경계에서 삑삑삑삑 코드레드 사인을 보내왔다. 더 이상은 무리였다. 조금만 더 참으면 기네스북이 눈앞에 보일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나는 상황실에서 들려오는 천상의 목소리를 들었다. "다음 근무팀 준비하고 있으니까 쫌만 참아라" 그 시절에는 근무시간에 유도리가 있게 마련이었는데 마침 다음 근무팀의 고참이 착한 사람이었다. "오! 복받으실겁니다!"하는 생각과 함께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감사합니다!!!!"

나는 그 소리를 외치지 말아야 했다.

막사 밖으로 근무자들이 나오는 것이 내 동공에 포착되는 그 순간, 내 바지 뒤쪽은 3초 간격을 두고 1cm씩 아래로 처지기 시작했다. 묵직~한 중량감을 느낌과 동시에 따뜻한 온기가 올라왔다...

그 날 이후로 난 아주 그냥 제대로 쪽팔린 놀림을 당해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급했었나보다. 어쩌면 반가운 마음이 너무 컸던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렇지 스무 살 넘게 먹은 다 큰 청년이 그런 일을 벌이고 말았다는 사실은 정말 어이와 어처구니가 동반가출한 일이었다. 난 그걸 알고 있었다. 동물적 직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 짧은 구원의 시간 직후 난 막사로 어기적어기적 복귀하면서 어떻게 이 사태를 수습할 것인가를 끝없이 고민하고 있었으니까. 그 상황에서도 내 상태가 절라 쪽팔린다는 걸 알고 있었던거다

하여간, 난 그 당시 그랬었다. 그 날이 마침 내 바로 윗고참의 생일인지라 제대한지 2년이 넘어가지만 평생 그 고참의 생일은 잊어버리지 않을 것 같다.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당황한다고 그런 실수를 하지도 않고, 그런 지경에 이를 때까지 몸 속에 고이 간직해두지도 않는다. 물론 친해진 사람들 앞에서야 방귀뀌기 일쑤지만, 여전히 처음 본 사람들과의 만남에서는 조심하고 있다.

그 때의 일을 떠올리면 한없이 부끄럽다. 가장 기본적인 욕구 앞에서 가장 인간적인 권리조차 떳떳하게 주장하지 못했던 내가 부끄럽다. 지금의 이 부끄러움이 삶의 부대낌 속에서 어디로 사라졌을까? 이제는 당당하다고 생각하고 싶은 요즘, 갑자기 그 때의 기억이 불현듯 떠올라 잠시 쥐구멍을 찾게 만든다.


+ 정말이지, 지금 이 순간에도, 죽도록 쪽팔린다...;;;
2005/04/13 00:06 2005/04/13 00:06

그 녀석이 돌아온다!

Posted 2005/03/24 00:59,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100일전, 나를 꽤나 우울하게 만들었던 "그 녀석"이 돌아온다. 늘 그렇지만 이 곳의 시계는 국방부의 시계보다 백만배쯤 빨리 돌아가는 것 같다. 녀석이 연병장 뒷편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울적해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0일이 지났다니, 시간 참 빠르다는걸 새삼 느낀다.

이제 녀석과 맞장구치며 이야기할 거리가 몇 가지 더 생겼다. 기상 나팔의 끔찍함과 취침 나팔의 달콤함을 알고, 최루가스로 인한 질식사의 공포도 교감할 수 있고, 고참 뒷다마의 재미와 후임을 기다리는 애틋함을 논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어서 와라! 낯선 곳에서 고생 많았다! 이제 거나하게 술잔 나누면서 그 동안 우리 살았던 이야기나 실컷 하자꾸나!

비록 4박 5일 후면 다시 돌아가야 하지만, 어쨌든 휴가는 휴가니까!! ^^


+덤. 녀석의 백일 휴가 축하 기념 만화~

2005/03/24 00:59 2005/03/24 00:59

친구야. 너는 똥, 안먹었지?

Posted 2005/01/20 23:58,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지금쯤이면 자대 배치받았겠구나. 요즘 육군 복무기간이 2개월 단축되면서 훈련기간도 줄었다던데 무사히 잘 마쳤는지 모르겠네. 여자친구한테만 편지쓰지말고 나한테도 좀 쓰라니깐! 녀석...

오늘 뉴스에서 논산 훈련소 중대장이 훈련병들한테 똥 먹였다고 난리가 났더구나. 다행히 넌 사단 훈련소에 있었으니 그 일은 안 당했겠지만 결국 뉴스 끝날 때까지 네 생각 많이 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다녀와야 하는 곳이라고, 비록 많이 늦긴 했지만 한 번 다녀올만한 곳이라고 네게 말했지만, 사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게 좋은 곳이 군대가 아닐까 싶다. "군대갔다와야 사람된다.", "군대갔다와야 정신차린다."라는 말은 청춘을 저당잡혔던 이들의 최소한의 변명이겠지.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지난 세월이 너무 고통스럽게 다가올테니까.

내가 그 곳에 있을 때도 사병과 장교 사이의 팽팽한 긴장이 군생활을 힘들게 하곤 했지. 요즘은 군에 대한 사회적 시각도 많이 변했고, 각급 지휘관들의 인식도 많이 개선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뉴스에 나온 중대장같은 사람들이 있다는게 가슴아플 뿐이다. 너 첫 영장 나왔을 때쯤, 소대장이 사고쳤을 때도 참 답답했는데....

네가 생활하게 될 부대에서는 부디 좋은 지휘관을 만나길 빈다. 계급에 눌려 억지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믿고 따를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엊그제부터는 또 "연예인 X파일"이란게 뉴스를 달구고 있어. 너희 누나가 꼭 성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저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한편으론 걱정도 된다. 나도 저 파일을 봤는데, 연예인이 얼마나 피곤한 직업인지 새삼 확인했으니까.

저 파일의 대부분의 내용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처럼 인구에 회자되고 있던 내용이었는데 정작 우리가 사는 이 곳에서 누가 저들에게 당당히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싶다. "정치권 고위 간부와 만나더라"라는 소문이 돌면 그 연예인만 수군수군대고, 막상 그 정치인들은 "권력의 그림자"로 숨어버리잖냐. 모델료로 수 억씩 줘야하는 광고회사 입장에선 광고모델이 해당 제품에 미치는 사회적 영향을 무시할 수 없었을테고 자구지책으로 그런 파일까지 만든거겠지. 연예인 부부가 등장해서 "우리 부부는 이렇게 행복하게 살아요"라면서 광고를 찍었는데 나중에 그들이 이혼했다면 광고주는 닭 쫓던 개, 지붕쳐다보는 것 마냥 넋 놓고 있을 수 밖에 없을테니... 문제는 그걸 만들었다는 것보다 인터넷에 공개되고, 유포되고 말았다는 게 아닐까.

돈 있고, 빽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즐기면서" 생활하고, 아무 것도 없는 우리는 2년이란 세월을 군대에서 썩어야 하고... 그냥 좀 답답해진다. 많이.

네가 입대한 이후로, 나는 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름대로 바쁘게 살았어. 그런데 오늘같은 날, 순간순간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해지는 날이면 네 생각이 많이 난다.

네가 입대하기 전, "너 군대갔을 때, 애들 다 갔잖아. 미치는 줄 알았어. 이제 내 맘 좀 알겠냐?" 라고 말하며 담배 연기 한 모금 내뱉을 때, 솔직히 네가 오버하는 거라고 생각했었지. 그런데 오늘 내가 담배 한 대 빨면서 똑같은 말을 하고 있구나...

친구야. 부디 몸 건강히 무사히 전역해라. 아니 그 전에 첫 휴가 나오면 보겠구나. 많이 보고싶다. 네가 없는 사회, 여전히 썩어있지만 그럭저럭 잘 굴러가고 있다. 네 여자친구도 잘 지내고 있고. 내가 힘 좀 많이 쓰고 있다는건 좀 알아줬으면 한다. 헤헤. 아무튼 첫 휴가 때,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꾸나. 늘 하얗던 네 얼굴이 검게 그을렸을 모습을 상상하니 자꾸 웃음만 나네. 어여 나와서 술이나 한 잔 하자.



2005년 1월 20일.
네 친구.



#. 훈련소에서 칭찬받았다고 여친한테 자랑 좀 하지마라. 네 순진한 여친, 진짜로 네가 잘해서 그런건줄 알고 나한테 자랑하잖아! 솔직히 훈련소에서 상점 안 받아본 사람이 누가 있냐고! -_-+
2005/01/20 23:58 2005/01/20 23:58

침울한 하루

Posted 2004/12/14 18:56,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수능 성적이 발표되는 오늘 아침. 오전 9시 이전에는 눈조차 뜨기를 거부했던 내가 7시에 전철을 타고 청량리 역으로 갔다.

그 녀석이 결국 오늘 입대를 하기 때문이다.


참고, 참고, 또 참아서 캔디처럼 울지는 않았다.
애써 태연하게 들여보냈는데, 들어가며 몇 번이나 뒤돌아보던 녀석을 힐끗 보다가 결국 오만상을 찌푸리며 몇 방울 흘리고 말았다. 내가 울면 그 녀석도 울까봐 끝까지 참았는데 결국 뒤돌아서며 흘려버린 것이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라는데 눈물부터 나온 걸 보면 난 남자가 아닌가보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문득 수능 성적표를 들고 울고 있을 아이들이 생각났다.

녀석이 보여주었던 입영 통지서와 오늘 건네받은 녀석의 수험표가 기억나서
울컥했다.




부디 몸 건강히 군생활 잘하길 빈다.





+ 녀석의 마지막 모습이 자꾸만 생각난다. 내일은 시험과목이 2개나 있는 날인데, 자꾸 자고 싶어진다. 무던히도 전화안받는 녀석이었는데 이젠 그것마저 할 수 없다니 손이 떨린다

+ 쓰고보니, 이 녀석을 다시는 못보는 것처럼 써놨다. 내년 4월이면 백일휴가 나올텐데. 후후. 나도 참 궁상맞다.
2004/12/14 18:56 2004/12/14 18:56

나의 친구가 12월 14일 화요일에 춘천 102보충대로 입대한다. 그의 나이 방년 이십오세. 군생활이 2개월 줄었다지만 2006년 12월에 제대하면 곧 2007년. 그 때 나이 28살.

오늘 친구들과 늦게까지 환송회를 하고 내 침대에서 곱게 자고 있는 녀석을 보노라면 만감이 교차한다. 그 동안 일부러 "군대가봐라. 너는 완전 X될 것이다"라며 마구 놀려대었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더 짠해지는 마음을 녀석이 알까. 오늘도 저 녀석을 먼저 보내려고 했지만 내가 먼저 취해버렸다. 아니 더 취하고 싶었다. 진심으로 취하고 싶었다.

무엇하나 확실한 것이 없는 이십대라지만 얼마 남지 않은 그 황금같은 시간을 군대에서 보내게 될 친구를 생각하면 문득 가슴이 먹먹해지곤 한다. 저 녀석을 처음 만난지 올해로 정확히 10년째. 지난 10년 동안 우리가 지낸 시간을 기억해보면 24개월쯤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지금 우리는 까까머리 중학생이 아니지 않은가.

기분좋게 웃으며 건강하게 잘 다녀오라고 격려해주진 못할 망정 자꾸만 녀석을 놀리게 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오히려 우울해질 것만 같아서...

불확실한 미래와 갑작스런 입대를 앞두고 여자친구 문제로 고민하는 녀석을 보면 자꾸만 예전의 내가 떠올라 더욱 마음이 쓰리다. 군대가 현실의 도피처일 줄 알았던 나의 착각을 녀석도 되풀이하고 있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남자라면 한 번쯤 다녀와야 한다는 군대이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남성우월적이고 권위주의적이며 형식적이고 겉만 번지르르한 무수한 사회악의 한 단면을 뼛 속 깊이 익히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내가 상병 휴가를 나왔을 때, 언젠가 친구 녀석이 왜 그렇게 입이 험해졌냐고 타박을 준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잘 몰랐지만 전역하고 학교를 다니면서 스스로에게 많이 놀랬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지난 26개월간의 언어와 몸짓이 묻어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사고방식마저도 변해있음을 깨달았을 때는 문득 섬ㅤㅉㅣㅅ해지기도 했다.

더 많은 얘기를 나누고, 더 좋은 위로를 건네주고 싶은데 잘 안된다. 그저 엉덩이 몇 대, 머리통 몇 대, 툭툭 건드려줄 뿐...

이제 나도 기말고사가 코 앞으로 다가온 지금, 친구가 군대간다고 나까지 마구잡이로 산다는 건 너무 철없어 보인다. 저 녀석이 제대할 때 쯤이면 나도 무언가 내 갈 길을 찾아서 열심히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장래를 약속할 예쁜 애인도 있어야할 터인데 자꾸만 나약해진다. 스스로에 대한 핑계만 늘어나는 것 같고...

술기운이 많이 가라앉았지만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프다. 이제 자야겠다. 저 녀석은 곱게 침대에 내버려두고 나는 방바닥에 이불깔고 자야지. 내가 녀석의 집에서 자게 될때도 언제나 녀석은 나를 안쪽 자리로 밀어넣곤 했었다. 이제 한동안은 그런 다툼조차 없겠지.

저 인간이 군대가면 나는 어찌 살까.. 싶다. 심심할 때 전화해서 농담 따먹기할 사람도, 술 먹고 전화해서 그냥 목소리 듣고 싶었다고 하면, 헛소리말고 빨리 쳐 자라고 말해줄 사람도, 문득 옛 사랑이 생각나 담배 하나 피워물며 고삐리 때 놀던 기억을 나눌 사람도 이제 잠시 내 곁에 없다. 이렇게 나는 또 이 세상을 홀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나보다.

너 군대가면 편지 한 통 안쓸거다. 너 군대가면 면회같은 건 생각도 안할거다. 라고 큰소리치지만 내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자기는 휴가 나와서 군대 얘기 안할거라고 나하고 내기까지 했지만 내가 궁금해서 못참을 것 같다. 아직도 군대리아는 여전한지, 초코파이는 롯데껄로 주는지, 오리온껄로 주는지, 고참들은 어떤지, 간부들은 어떤지, 부대 시설은 괜찮은지... 차라리 내가 나중에 갔더라면 조금은 덜 걱정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 놈아. 니 털오라기 하나 다치지 말고 온전히 다녀와라. 눈송이 떨어져도 다칠새라 피하고 다니는 말년 병장의 그 날이 올 때까지 묵묵하게 잘 지내다 와라. 네가 없는 이 곳이 과연 잘 돌아갈까하는 쓸데없는 잡념일랑 집어치우고, 제대하고 번듯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 마음가짐든든히 하고 나와라. 네가 들어갈 때 두 팔 가득 안아준 것처럼 네가 나올 때도 온마음으로 안아줄 수 있도록 잘 살다가 와라.

아무리 X같은 곳이지만 그럭저럭 시간은 간다. 지내다보면 또 그 곳 나름대로 정도 생기게 마련이더라. 사람 사는 곳, 어디인들 다르겠냐. 평소 네 꼬라지로 봐서 너는 무사히 군생활 잘할거다.제발 아프지 말고, 다치지만 말아라.

아직 실감이 잘 안나겠지만 입대 전 날, 틀림없이 뒤척이다 잠도 잘 못잘거다. 이런저런 상념들일랑 나에게 던져두고 너는 오롯이 몸만 가져가라. 어머니도, 누님도, 여자친구도 걱정마라. 내가 힘 닿는 데까지 도우마.

하필 나도 12월 군번인지라 그 동네의 겨울이 어떨지는 상상만해도 온몸이 전율한다. 귀찮다고, 손시렵다고 속옷 안빨아입거나 내복 안입고 다니지말고 꼬박꼬박 시키는대로 다 해. 그게 장땡이다. 군대에서 하라는 것만 하고, 하지 말라는 것만 안하면 무사히 제대한다. 장담하마.

대놓고 말하면 또 괜히 나만 혼자 분위기잡는 것 같아서 여기다 지껄인다. 네가 언제 보게 될지는 모르겠다만 뭐 안봐도 알겠지. 그치? 나도 이제 진짜 자야겠다. 심하게 졸립다. 내일 아침에 또 무슨 연습하네 어쩌네 하면서 일찍 일어나서 깝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건 연습안해도 가면 다 하게 되어있느니...

너의 건강과 평온한 군생활을 위해서 제대하는 그 날까지 성당 열심히 다니고, 기도도 틈나는대로 할께. 이럴 때 제일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게 "그 분"아니겠냐...

야! 이거 다 쓰고 나면 너 진짜 입대해버릴 것만 같아서 그만두질 못하겠다. 내가 무슨 니 애인도 아닌데 왜 이러는지 몰라. 궁상맞게. 후아. 잘 자라. 좋은 꿈 꾸고. 내일 아침에 보자.

2004. 12. 4.
친구 씀.
2004/12/04 05:14 2004/12/04 05:14

뉴스 : 소대장 오발, 부대원 14명 사상


군대에서 또 사람이 죽었다. 갓 스무살을 넘긴 꽃다운 나이의 젊은이들이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한창 혈기왕성한 남정네들만 모아놓다보니 군대에서는 참으로 별의별 사건들이 많이 일어난다. 때로는 잊지못할 추억이 되는 일도 많지만 돌이키고 싶지 않은 사건, 사고들도 부지기수다. 내가 군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많은 사고가 일어났고,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젋은 동료 병사들이 여럿 있었다.


뉴스를 보다가 까무러치게 놀랐던 것은 [소대장]이 일으킨 사고였다는 점이다. 소대장은 일개 소대를 책임져야할 사람으로서, 그의 휘하에는 보통 적게는 20여명, 많게는 40여명 이상의 소대원들이 있다. 소대원들에게 있어서 소대장은 가장 가까운 장교임과 동시에 군생활의 전반적인 사항을 의논하고 실제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소대장이 대전차 사격장에서 실수를 했다는 사실은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 박격포나 대전차포는 일반 소총과는 그 위력부터가 다르기 때문에 사격장에서는 갓 들어온 신병부터 최상급 부대장까지 모두가 긴장하고,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여 사격을 실시한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사병도 아닌 장교가, 그것도 사격에 임하게 된 소대의 소대장이라는 사람이 포탄이 장전된 줄도 몰랐다는 게 말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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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04 06:44 2004/09/04 06: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