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남자. 2006.


처음 이 영화의 예고편을 보았을 때, 공길 역의 배우가 신인 여배우인줄 알았다. 그래서 위 포스터의 네 명의 남녀가 얽히고 설키는 것이 영화의 주된 내용일 것이라 짐작했던 것이다.

이준기, 실제로 보니 더욱 격렬하게 나의 테스토스테론을 분출시키더라. 안그래도 요즘 오랜 솔로 생활로 인하여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억압되고 있던 내 남성 호르몬은 그 칼날같은 턱선과 강성연 뺨치는 허리선을 보며 꿈틀꿈틀대기 시작했다.

잘 만들어진 동성애 영화다. "쟤네는 똥꼬가 참 많이 아프겠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지 않는 영화였고, 그래서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 나라, 참 좋아졌다. 이런 영화가 별 다른 잡음을 내지 않으면서 동시에 인기까지 얻을 수 있다니. 한편으론 팬픽이나 만화 등을 통해 동성애에 익숙해진 20대 여성들에게 이 영화가 제대로 된 코드를 찔러주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안타까운 것은 이 영화를 함께 본 그녀에게 나는 아직도 프로게스테론을 분비할만한 상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쳇. 이준기보다 더 애교넘칠 수 있는데..


+ 공길과 장생의 줄타기 장면에서 영화가 끝났더라면 조금 더 깔끔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다, 나 거기 있고, 너 여기 있다"는 말을 굳이 그렇게 강조하고 싶었던 것인지... 어쨌든 저 대사는 그녀에게 문자보낼 때 써먹어야지. "너 거기 있고, 나도 거기 있어." 또는 "나 여기 있어, 너는 어디 있니?"라고. ㅋㅋ

+ 진짜 "왕의 남자"는 내시였다! 장항선 아저씨, 최고! 냐하~
2006/01/24 23:54 2006/01/24 23:54

연애의 기술이고 나발이고

Posted 2006/01/15 02:10,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바로 밑의 글이 무안해져버린 일이 발생했다.

그녀와 채팅중,
"저어...." (뭔가 심상치 않은 포쓰가 느껴지기 시작.)
"정말 죄송한데요...." (그래, 올 것이 왔구나. 좌심방 우심실이 바짝 긴장중)
"연극, 같이 못 볼 것 같아요." (자, 이쯤에서 태연하게 반응해야 한다!)

"네.. 다른 약속이라도.." (정확히 뭐라고 말했는지는 기억도 안난다. 중요한 것은 시치미를 뚝. 떼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뉘앙스였다는 점.)

"아직 남자를 만나본 적도 없고.. 어쩌고.. 아직은 솔로체질.. 저쩌고..."
(중언부언시작된다. 그 아이, 참 순진했다.)

"^^ 네.. 괜찮아요." (괜찮긴! 그래도 어쩌겠나. 6살 많은 내가 참아야지.)

"고민상담필요할 때 부르세요" (뚜시궁! 나보다 6살 어린 그녀. 내 고민을 상담해 주겠단다. 이 얼마나 순수한 마음씀씀이인 것이냐! 감동의 눈물을 슬쩍 훔치는 척 했다.)

아무튼 내 인생 최고의 소개팅 사건은 이렇게 허무한 결말을 맞이하였다. 중간에 전화라도 좀 할걸 그랬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그녀와 내가 인연이 아니었던 것을 사람의 힘으로 어찌해볼 도리가 있었겠나.

그런데 말이다...

그녀와 저런 정신없는 대화를 나누고 추스리는 동안, '띵~동~' 하면서 새로운 대화창이 열렸다. 간만에 만난 학교 후배. 03학번 여후배로, 올해 4학년이 된다. 안부인사가 끝난 뒤... 이 알흠다운 후배분께서 자신과 친하게 지내고 있는 한 살 어린 후배를 소개시켜 준다고 한다!!!

그래, 좋다. 2006년 한 해, 뭐가 돼도 틀림없이 되겠구나 싶다. 그 하염없이 하얗게 지새운 밤들을 이렇게 한꺼번에 보상받게 될 줄이야. 역시 인간은 착하게 살고 볼 일이다. 아니면 나처럼 잘생기고 볼 일이;; 아무튼. 임용시험떨어졌다고 우울하게 지낼 틈을 안준다. 그러고보면 인간만사, 내 뜻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는 데 걱정하고 근심할 일이 뭐가 있을까 싶다.
2006/01/15 02:10 2006/01/15 02:10

연애의 기술

Posted 2006/01/14 01:21,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요청글> 이제 막 알게 된 사람과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나요?

엊그제 소개팅한 그녀와 메신져에서 만나면 할 말이 없어서 서로 어색한 상황이 연출... 내 생애에 또 이런 경우는 처음;;;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하나..아놔.. 세대 차이도 아니고, 이건 참.. ㅜ_ㅜ
2006/01/14 01:21 2006/01/14 01:21

그녀와의 첫 만남

Posted 2006/01/12 09:50,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지난 해 가을 무렵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내 블로그에 유난히도 많은 '그녀'들이 등장했다;; 오늘의 그녀는 새롭게 떠오르는 샛별 정도 되겠다.

지난 글에서 말했던 것처럼 어제 저녁, 신촌에서 소개팅을 했다. 주선자 없이 우리끼리 만나기로 했는데 그녀는 나보다 무려 6살이 어린 사람이었다. 이름과 나이, 연락처 이외의 다른 정보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던 나는 사천만의 국민 웹사이트 싸이월드에서 그녀를 찾아볼까 했지만 생각만 하고 말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제 그런 짓 하기도 귀찮다. -_-a

40분 지각했다. 이유가 있긴 했는데 "늦어서 죄송해요"라는 나의 문자에 "조금 마니 늦으시네요;;"라는 답문을 보내는 그녀였기에 아주아주 미안해지면서 슬슬 당황하기 시작했다.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서 그녀를 만난 순간. 잠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녀와 내가 동갑내기인줄 알았다. 좋게 말하자면 성숙한 얼굴이더라. 또한 소싯적부터 머리 크다고 놀림받은 나보다도 얼굴 면적이 넓은 듯 했다. '아. 내 연애사에 미인이란 없나보구나'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추스렸다. 유리창에 슬쩍 내 얼굴을 비춰봤다. 바로 감사해하며 저녁먹을 곳으로 이동했다.

나름대로 익숙한 동네라고 생각했는데 신촌역에서 내리니 공간감각이 사라져버렸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스파게띠아에 들어갔다. 그녀가 스파게티를 좋아한다고 해서 제일 먼저 눈에 보인 스파게티집으로 간 것이다.

스파게티 먹고, 민토를 갈까 하다가 술을 잘 안마셔봐서 - 칵테일은 한 번도 안마셔봤다고 해서 - 이번에도 역시 눈에 보이는 바에 들어갔다. 나는 블랙 러시안, 그녀는 준벅. 이것 역시 메뉴판의 첫번째 칵테일을 순서대로 시킨 것.

이쁘진 않은데 착하게 생겼다. 가끔 어떤 대화 중에 문득 그녀와의 나이 차를 실감한 것 말고는 이런 저런 이야기도 많이 했다. (에피소드 1. 그녀는 술집에서 "민증검사를 하면 나가야되는 나이"라서 술집갈 때 조심스럽다고 했다. 나는 민증검사 한다고 하면 "고맙습니다"라고 말한다고 대답해줬다.)

미팅은 몇 번 안해봤고, 소개팅은 처음이란다. 아직까지 남자친구 사귄 적도 없다고 했다. 소개팅 많이 해봤냐고 물어보더니 느닷없이 마지막으로 여자친구를 사귀었던건 언제냐고 물어보더라. 왜 물어본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재미나게 얘기 - 사실은 거의 혼자 떠들었다. 그녀는 낯을 가리는 듯 했다. 자기 친구들은 자기보고 재미있다고 한다고 했다. 설마 어제의 그런 모습이 재미있다고 한건 아니겠지. 어제의 그녀가 재미있는 모습이었다면 나는 김제동이다. - 를 하고는 헤어졌다. 그녀의 메신져 주소를 받아놓고 집에 가면 등록할테니 로그인하라고 했다.

소개팅 중, 소개팅 후, 친구 녀석들이 아주 난리를 쳤다. 문자는 약과고 전화까지 해대는 놈이 있었다. 끝나고 말해줬더니 죽인다고 덤비는 놈도 있었다. "이 도둑놈의 ㅅㄲ야! 나쁜 자식... 순진한 새내기나 꼬시고." 이런 정도는 약한 표현.

집에 와서도 꽤 늦게까지 메신져를 했다. 그닥 영양가있는 대화는 없었다. 그녀는 굉장히 귀찮은게 많은 사람이었다. 내가 싸부님이라고 불렀다. 보고싶은 만화책이나 비디오가 있어도 반납하는게 귀찮아서 안빌려본다고 할 정도였다. -_-)=b 그런데 나 하곤 꽤 오래 채팅을 했다.

주선자도 로긴했길래 슬쩍 물어봤다. 그녀는 나를 어찌 생각하는지. 착한 사람같다고 했단다. 처음 만나서 잘은 모르겠지만 좋은 사람 같다고 했단다. 내 친구들에게 마.구. 자랑했다가 뒈.지.게. 욕처먹었다. 이중인격자라는둥, 가면을 벗으라는둥, 변신의 비법이 뭐냐는둥 온갖 악담은 다 들었다.

나는 어땠냐고 주선자가 물어봤다. 나는 솔직히 말했다. 예쁜 얼굴은 아닌데 호감가더라. 한 번 보고 어찌 알겠나. 말도 별로 없던데... 암튼 더 알아보고 싶어지는 사람이었다. 라고 말했다. 주선자가 웃더라. 의미는 잘 모르겠다.

암튼 뭐 다음주에 연극 같이 보기로 했다. 영화가 만만하긴 한데 같이 볼 게 없더라. 킹콩은 내가 봤고, 왕의 남자는 그녀가 봤다. 그렇다고 아무 영화나 보기엔 돈아깝고. 어쨌든 연극보기로 했다.

나는 스스로 눈이 높다고 생각해 왔는데 높기는 개뿔. 넙치의 눈알 높이가 내 눈높이보다 높은 것 같다. 나는 여자들의 얼굴이나 몸매에 상당히 빠른 속도로 적응할 수 있으며 주관적인 가치로 판단하고 있다는걸 알았다. 쩝.

임용시험떨어지고 우울했는데 하루를 참 알차게 보냈다. 이 글 다 쓰고나서 문자나 한 통 보내놔야겠다. 아. 정말 다 괜찮은데 그녀의 "떡대"가 웅장한 것만큼은 좀 어떻게 해보고 싶어진다. 허허허.
2006/01/12 09:50 2006/01/12 09:50

선택과 집중

Posted 2006/01/08 02:24,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여자친구 있을 거 같은데, 없어요? 진짜?"

처음 몇 번은 나름대로 기분좋게 들렸던 말인데 오늘은 좀 아니더라. 친구는 많은데 애인은 없는 내게 '선택과 집중'은 나의 성공적인 연애를 위한 핵심 포인트다.


그녀
는 내일 미팅을 한다고 나에게 "전략"을 물어본다. 쳇. 이쯤 되고보니 나도 열.렬.히. 그녀를 좋아한건 아니었다보다. 좀 서운하긴 했지만 딱 그만큼이었다. 또 한 번, 연애의 기회는 날아가 버리고 친구가 한 명 생기게 될 것 같은 느낌. 후아.

"모든 여자에게 친절하면 내 여자는 없는 거에요"라던 어느 후배의 걱정어린 충고가 새삼 기억난다. "선택"하지 못한다는 것보다 정작 더 큰 문제는 "집중의 대상"이 없다는 사실이다.

휴우. 어째 술만 좀 들어가면 첫사랑 생각이다. 이젠 그만할 때도 됐는데...
2006/01/08 02:24 2006/01/08 02:24

오뉴월에 서리 내리다

Posted 2005/07/12 20:27,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어제 밤부터 오늘 새벽까지 내 친구의 여자친구와 채팅을 했다. 군대 간 내 친구가 무사히 전역할 때까지 나는 친구를 대신해서 그녀에게 맛난 것도 사주고 한눈팔지 않게 감시잘하겠노라고 친구에게 약속했었다.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따위의 유행가 가사는 말그대로 노래 가사일 뿐인데다 뭐 내 취향의 사람은 아니므로 나는 꽤 적절하게 행동해 왔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내 친구의 핵폭탄급 실수 때문에 굉장한 상처를 받았고, 그 때 녀석은 훈련소에 있었다. 밤 늦게 전화해서 펑펑 울어대는 그녀에게 나는 그 녀석을 대신해서 해줄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었다.

어쨌든 몇 번의 식사와 몇 번의 채팅 등등으로 그녀는 내게 꽤 고마워하고 있고, 나도 내 친구가 얼마나 그녀를 사랑하는지 시시때때로 강조하는 것 말고는 썩 예쁜 친구 하나 생겼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제의 대화는 무척 지난하고 고통스러웠다. 시작은 만사가 늘어져버린 나의 대책없는 술주정이었다. 그녀는 잘 참아주며 내가 보고 싶어하는 군대의 친구 대신 내 얘기를 들어주고 맞장구도 쳐주면서 가끔 농담을 해가며 기분을 풀어주려고도 했다. 거기까진 좋았다.

늘 그렇듯이 그녀와 나의 대화에서 내 친구의 이야기는 빠질 수가 없다. 그 녀석의 핵폭탄급 실수에 대한 이야기도. 나는 어제 내가 아직 잘 알지 못하던 그녀의 모습을 알게 되었고, 한참 설전을 벌이던 나는 급기야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전화통화가 아니었기에 망정이었다. 그토록 서럽게 울어본 적은 참 오랜만이었다. 그렇게 우는 방법을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내 몸은 너무도 처절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잔인해져야만 한다고 말했다. 내 친구가 상처를 받아서 그녀를 욕하며 미련없이 잊을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처음 이런 식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내가 끝내 울음마저 터트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잔인해지지 말고 강인해지라고 충고했다.

더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가면 오고갈수록 점점 그녀는 잔인해져갔다. 나의 위로와 나의 협박과 나의 회유와 나의 충고와 나의 배려와 나의 인내와 나의 강요와 나의 이해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 채 그녀 앞에서 무너져 가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에 내 기억 속 어딘가에 묻어두었던 얼굴이 오버랩되기 시작한 것은 그 즈음이다. 그녀가 뱉어내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서서히 나를 향한 예전의 그 말들이 되었다. 그 때의 그 말들이 그녀와 같은 생각에서 비롯된 것들이었음을 어렴풋하게나마 직시하는 찰나, 눈물이 쏟아졌다.

어떻게 대화를 마치고, 어떻게 컴퓨터를 끄고,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그녀는 내게 오래도록 묵혀두었던 것들, 다시는 꺼내고 싶지 않은 것들을 들춰내어 낱낱이 펼친 채 나에게 들이밀었고, 그 이면에 숨겨두었던, 결코 확인하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쏟아내었다.

여자들이란 다 그런거야 따위의 말을 안주삼아 연거푸 술잔을 들이켜던 나와 내 친구의 지난 일들이 참 부질없다고 느껴졌다. 어쩌면 나는 늘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는지도 모르겠다. 절대로 확인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타의에 의해 알게 되었을 때의 당혹감이란 실로 엄청났다.

나는 예전의 그 사람이 나에 관한 좋은 기억만을 간직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그가 나에게 죄책감과 약간의 미련, 얼마간의 동정 따위를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일순 감정이 북받쳤다.

나는 어제 밤과 오늘 새벽, 그렇게 타인의 연애사로 시작된 이야기 때문에 내 훌륭한 기억력을 다시금 확인해야만 했고, 오늘 하루 그것들을 진정시키고 다시금 조용히 감추느라 약간의 수고를 더해야만 했다.

그녀와 친구의 관계가 어떻게 진행될지, 어떤 식의 결말에 이를지 섣불리 생각하고 싶지 않다.

다만 내 친구가 나의 전철을 밟고, 오래전 언젠가 그 사람의 친구가 내게 해주었던 이야기들을 내가 나의 친구에게 전하는 일 만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기를 빈다.

그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기 때문에...
2005/07/12 20:27 2005/07/12 20:27

담패설님의 글을 재미나게 읽고 있다. 모름지기 야한 얘기, 군대 얘기, 싸움 얘기, 스포츠 얘기 싫어하는 남자가 몇이나 있을까. 담패설님이 여자라는 이유는 그런 나의 음흉한 심보를 충분히 자극하고 있다. 꽤 예전부터 재미있게 보고 있는 짬지닷컴 사장님의 글과는 또 다른 묘미가 있다. (물론 "여자라는 사실을 잊고 보라"는 그녀의 주문은 충분히 납득한다. 첫 느낌이 그랬단 얘기;;)

그러나 나는 담패설님을 통해 섹스에 대한 여자들의 생각을 알고 싶었다. (뭐 그렇다고 모든 여자가 즐떡하라는 그런 소리는 아니고;;;) 몇 번의 연애 경험에 비추어 보아 남녀간의 "스킨쉽 진행정도"는 상당히 민감한 문제이자, 둘의 관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요소라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제 올라온 글은 그런 점에서 여러모로 마음에 들었다. 넘쳐나는 "섹스칼럼"식 잡소리들 속에서 담패설님의 목소리가 내 귀에 더욱 박혔던 것이다.

내가 사랑했던(온마음으로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나보다 나이가 어렸다. 우리는 참으로 순진무구한 사람들이었고, 수줍고 부끄럽게 연애를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데 1년이 넘게 걸렸고, 서로의 손을 잡는데 두 달이 넘게 걸렸으며, 사귄지 100일이 되었을 때, 뺨에 뽀뽀를 했고, 100일과 200일의 중간 언저리에서 첫 키스를 했었다.

우리는 어렸고, 서로에게 매우 조심스러웠으며, 서로를 존중해 주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강요하지 않았고 상대방의 심기가 불편해질 것 같은 행동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모든 연인들이 동감하겠지만, 무슨 일이든 "시작"이 어렵지, 일단 시작되면 점점 가속도가 붙어서 겉잡을 수 없을 상황으로 번져간다. 우리는 손잡는 데 걸린 시간(사귄 시간)보다 키스까지 걸린 시간이 짧았고, 키스하는데 걸린 시간보다 애무까지 하게 된 시간이 짧았으며, 애무와 오럴의 간극은 매우 좁았다.

그러던 즈음, 그녀는 내게 매우 조심스러운 편지를 보냈다. 서로의 몸을 더 좋아하게 되면 서로에게 이득될 것은 없으니 현재 선을 유지하거나 자제토록 하자는 권고성 편지였다.

나는 머리로는 이해했으나 몸으로 실천하지 못했다. 그토록 오랜 시간을 배려했음에도 둘만의 공간에서 나는 돌변했다.

결국 어느날인가 나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았고, 이후 수개월동안의 고통기를 거쳐 끝내 헤어지고 말았다.

그녀와의 이별은 나에게 실로 거대한 충격이었다. 담패설님의 표현에 빗대어보면, 백만년동안 한 번도 딸딸이를 치지 못하게 하는 형벌을 받은 정도였을까. 어쨌든 진심으로 사랑했던 그녀를 떠나보낸 후, 나는 근 1년을 슈퍼초울트라 "개(犬) 폐인" 생활을 했었다.

나는 연애에서 가장 중요한 신뢰를 깨뜨렸다. 그리고 그녀와 단 둘이 있을 때면, 지난 세월의 애정은 사라지고 그녀의 몸만이 남아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가장 가슴아픈 일은 나의 실수로 인해 우리의 길고도 아름다웠던 연애시절이 통째로 변질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시간이 흘러,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 나는 진심으로 그녀에게 사과를 했고, 그녀는 소리내어 한없이 울었다. 가슴이 찢어지고, 고막에서 피가 나는 것 같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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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잇 스탠드도 좋고, 빨간집도 좋고, 자유연애도 좋다. 그렇게 지내는 사람들은 또 그렇게 지내면 되고, 나는 나대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여전히 내 가슴에 인두 자국으로 남아 있는 그녀와의 기억은 이런 나의 생각을 더욱 공고히 만든다.

그녀같은 여인네들과 연애를 할 때와 소위 "즐기며 사는" 여인네들을 만나 연애를 할 때는 분명 달라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애정어린 섹스는 관계의 활력소가 되지만, 상대방의 동의가 없다면 애정은 밑 빠진 독의 물처럼 소리없이 빠져나가게 마련이다. 두 사람의 사이가 멀어지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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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듯이 사랑했고 미친듯이 후회했던 적이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내 의지 위로 내 작은 몽둥이가 먼저 솟구쳐 오르는 일은 만들고 싶지 않다.

또다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낼 수는 없기 때문에...
2005/04/08 23:21 2005/04/08 23:21

나도 사랑하고 싶다

Posted 2005/03/13 22:02,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이제 나도 사랑하고 싶다. 젊은 날의 치기 가득했던 첫사랑과 서로의 필요로 만났던 지난 사랑은 이제 조용히 덮어두고서, 참된 사랑을 하고 싶다.

그런데 어떻게 사랑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억지로 지워버린 기억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사랑하고 싶지만 다시 고통받고 싶지는 않으니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종일 핸드폰만 만지작 거린다. 눈을 뜨던 그 순간부터 잠자리에 들어야할 지금 이 순간까지 줄곧 핸드폰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몇 통의 부재중 전화와 몇 개의 문자 메세지가 표시되어 있지만, 내 마음은 표시되지 않는다. 슬프다.

오늘도 내가 연락해야할까? 반갑게 인사하는 그 목소리가 어쩌면 "예의상" 건네는 인사일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고 있다. 아직 연락을 못했다. 아니, 안했다.

나는 늘 오해했고, 오바했으며, 오기로 밀어붙이다가 결국은 쓴 맛만 보았다. 제 죽을 줄 모르고 불길로 뛰어드는 한 마리 부나방처럼 나는 그렇게 맹렬하게 덤벼들었던 것이다. 어렸기 때문이었을까. 몇 해가 지나면서 내가 얼마나 자랐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나는 결코 성급하면 안된다는 것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어렵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일은 언제나 힘들고 어려우며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 동안 나는 너무 쉽게 사랑했다. 아니 사랑한다고 말해왔다. 아꼈어야 했다.

결국...


그녀에게 잘 자라는 문자 하나 보냈다.




아... 소심의 극치여... OTL...
(사탕 따위는 생각해본 적도 없다. -_- )
2005/03/13 22:02 2005/03/13 22:02

우울한 하루

Posted 2005/02/20 19:37, Filed under: 맛있는 문학
찬 바람이 불어옵니다. 어느새 주위는 거무룩해졌습니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점점 빨라집니다. 옷깃을 야무지게 여물어봐도 스며드는 찬 기운을 떨쳐내진 못하겠습니다. 봄이 오기엔 아직 이르지만 아직도 매서운 겨울바람이 남아있다는 느낌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닙니다. 끔벅이는 가로등 불빛 아래, 웅크린 어깨 너머로 조금 엿보이는 그대 얼굴은 그저 차갑기만 합니다.

분주한 사람들의 틈바구니를 헤집고 식당으로 들어섭니다. 주인이 반갑게 맞아주네요. 애써 웃어줍니다. 점원이 안내해준 자리는 밝고 따뜻합니다. 메뉴판을 펼쳐드는 그대의 얼굴은 그저 무표정할 뿐입니다.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나는 떠들기 시작합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저 이 막막한 공기가 제 살을 파고드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떠들고 또 떠듭니다. 그대는 가끔 고개를 끄덕이거나 살짝 웃으며 맞장구를 칩니다. 나는 그대가 내 이야기에 귀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슬프지는 않습니다. 이제는 익숙해진 일입니다. 내가 이 무거운 공기를 견디지 못하는 것처럼 그대 역시 내 가벼운 말들을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함께 앉아있을 수가 없습니다.

음식은 맛이 좋습니다. 그대에게 자꾸 권합니다. 괜찮다는 그대에게 자꾸만 권하고 또 권합니다. 나는 음식을 씹는 그 잠깐 동안의 침묵도 견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대가 나를 떠벌이라고 생각할지라도 매 순간 무엇인가를 말해야만 합니다. 나는 그대와 함께 있는 곳에서의 침묵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대와의 침묵은 나를 깊은 수렁으로 잡아끄는 것 같습니다. 발목을 잡혀 헤어나오기 힘들어지기 전에 내가 먼저 도망칩니다. 그래서 이렇게 떠듭니다. 한 순간도 쉬지 못하고.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고, 음식점을 나옵니다. 우리는 익숙한 농담을 주고 받습니다. 늘 같은 말장난에 우리는 늘 같은 목소리와 늘 같은 표정으로 웃어줍니다. 웃어보입니다. 마치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농담을 오늘 처음 들었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웃어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이미 오래전에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내색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알지만 모두가 모르는 일입니다.

연극을 봅니다. 끝없이 불편한 연극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과거를 향해 뒤돌아가고 있었고, 그대는 미래를 향해 앞서가고 있었습니다. 연극이 끝날 무렵, 이미 우리는 서로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소리쳐 불러보고 싶지만 주위가 너무 조용합니다. 나는 침묵이 두렵습니다. 내가 침묵을 견뎌내는 일은 연극의 주인공이 회초리를 맞고, 뺨을 얻어맞고, 팔이 꺾이는 고통을 참는 일보다 더 힘이 듭니다. 주인공의 아픔은 연극이 끝나면 사라지겠지만, 침묵의 비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날카로워집니다. 날카로운 침묵의 날에 나는 그 동안 숱하게 상처입었습니다. 덧나고 곪은 상처에서 고름이 나오고 진물이 흐를 때에도 그대의 침묵은 그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언제부터인가 혼자서도 떠들기 시작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여전히 바람이 붑니다. 차가운 겨울 바람입니다. 그대의 옷깃을 여며주고, 내 목도리를 건네주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대가 거절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제 나는 그대의 거절을 감당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나는 묻지 않습니다. 나는 한 자락의 바람도 파고들지 못하도록 더욱 단단히 옷깃을 여밉니다. 그 틈을 비집고 새어들어온 바람은 유난히 차갑습니다.

우리는 즐겁게 만났고, 맛있는 식사를 했고, 유쾌한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습니다. 그대는 다음에 또 보자는 인사도 잊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대가 먼저 내게 연락하지는 않을 것임을. 나는 웃으며 헤어졌고, 즐겁게 돌아옵니다. 유쾌한 듯 노래도 흥얼거립니다. 가슴이 답답하지만 체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눈이 맵지만 바람이 너무 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그대를 만나면 즐겁고 유쾌합니다. 하지만 그대와 헤어지고나면 나는 기분이 언짢아지고 짜증이 솟아납니다. 불쾌해져버립니다. 다시는 그대를 만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어느새 나는 그대와 함께 영화를 보고, 식사를 하고, 산책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조울증을 반복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에게는 새로운 일이 있고, 나는 그것을 해야만 합니다. 미안하지만 이제 그대를 다시 만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없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가끔 그대를 먼저 만났더라면 어땠을지 상상해보기도 합니다. 부질없는 헛웃음만 터져나옵니다. 상상은 후회의 반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만 합니다. 집착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르겠네요. 모든 것을 처음으로 돌려놓고 싶은 것은 저만의 생각은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대와 그대의 친구도, 그대의 친구의 친구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대가 그대이기 이전부터, 그 한 처음부터 말입니다.

켜켜이 쌓인 가식을 털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저는 해낼 것입니다. 언젠가 우연히 그대를 마주치게 되는 날, 그대의 침묵에 당당한 나의 침묵으로 응답할 수 있겠지요.

그 동안 고생많았습니다. 덕분에 즐거운 일도 많았고, 고마웠던 일도 많았습니다. 이제 더 이상 저의 수다에 고통스러워 하지 않아도 되고, 재미없는 농담에 맞장구쳐주지 않아도 됩니다. 그대를 불편하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그 후로도 너무 오랫동안 그대는 그대와 상관없는 일들 때문에 괴로워했고, 내게 전혀 내색하지 않으려 애써 왔습니다. 나는 그대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나 역시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저의 아집을 버리겠습니다. 집착과 허울을 벗겠습니다.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없다해도 이제 더 이상 그대의 불편한 모습을 견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대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2005/02/20 19:37 2005/02/20 1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