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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24 만감이 교차했던 생일 (1)
  2. 2008/09/01 담임이 된다는 것 (4)
  3. 2007/09/13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1)

만감이 교차했던 생일

Posted 2008/09/24 01:36, Filed under: 학교종이 땡땡땡

월요일 아침, 어머니의 생일 축하 문자로 하루를 시작했다. 주말에 끝난 축제 덕분에 이번주 역시 환타스틱한 반 분위기가 될 것을 예상하고 월요일 아침부터 단단히 주의를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교실에 들어서니, 아이들이 케익에 촛불까지 켜놓고 내 주위에 빙 둘러선 채 생일축하노래를 불러주었다. 폭죽도 터트렸고, 교탁 위에는 미리 접시에 담아둔 소담스런 간식거리들도 있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고마웠고, 평소에 잘하지 이런 걸로 환심사려 하는지 의구심도 들었고, 그런 생각을 한 것 자체가 부끄럽고 미안했다. 그 와중에 여전히 몇 몇은 내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었고, 몇 몇은 진심어린 편지를 써주었으며, 몇 몇은 해맑은 웃음을 띄우며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어리둥절했고, 혼란스러웠다. 괜히 뻘쭘해지고 영 어색해지기 시작해서 대강 교탁을 정리하는 척 했다. 뭔가 따뜻한 분위기에서 정다운 이야기라도 나누어야할 것 같았지만 "고맙다, 정말."로 많은 말들을 대신했다. 귓가에 스쳐 들어온 또 다른 날카로운 이야기는 케익 속에 묻기로 했다. 어쨌든 내 생일을 기억해주고, 케익까지 마련해주고, 노래도 불러준 녀석들... 웃음과 울음이 동시에 터져나온다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었다. 다행히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복잡해진 마음으로 교무실로 돌아왔다. 수업 들어가는 반마다 아이들이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간단한 말 한마디였지만 고마웠다. 그래도 쉬는 시간은 없었다. 그 졸리운 중세문법을 끝.까.지. 설명했다.

쉬는 시간, 내가 담당하고 있는 학교신문반 아이들이 찾아왔다. 교무실 밖으로 불러내길래 처음엔 축제 비용 정산 때문에 그러는 줄 알았다. 교무실 문을 여는 순간, 아이들이 생일축하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복도에서 울려퍼지는 노랫소리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생각지도 못했던 축하였다. 나는 소리 높여 고맙다고 말하며 한 사람씩 악수를 했다. "정말 고맙다"는 말 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퇴근 후 여자친구를 만났다. 함께 저녁을 먹고 카페에서 후식을 즐겼다. 그녀가 손수 만든 케익을 꺼내 불을 붙이고 내 귓가에 나즈막히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윽한 포옹으로 고마움을 표시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예쁜 쿠키가 덧붙여진 생크림 무스케익의 살살 녹는 맛은 내 마음을 알알이 녹여주었다.

한 보따리 싸들고 집으로 왔다. 자정이 다 되어가는 그 시각에, 아버지께서 손수 케익을 꺼내 불을 붙이고 어머니와 함께 축하 노래를 불러주셨다. 케익은 아버지와 어울리지 않게, 작고 귀여운 분홍빛 케익이었다.

케익을 네 번 먹었다. 잠이 드는 그 순간까지 배가 꺼지지 않았다. 나는 생애 가장 정겨운 생일을 보냈다. 그 케익들 앞에서 나는 내 나이를 속으로 찬찬히 헤아려 보았다. 스물 아홉해를 사는 동안, 나는 어떻게 살아왔을까. 이제 큰 초 3개면 족할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또 어떤 모습일까.

아이들 덕분에 웃고, 아이들 때문에 울고, 아이들로 인해 내가 변화한다.
짐작조차 되지 않는 그 변화의 소용돌이 안에서 나는 또 하루를 보냈다.

2008/09/24 01:36 2008/09/24 01:36

담임이 된다는 것

Posted 2008/09/01 14:24, Filed under: 학교종이 땡땡땡
오, 사랑하는 주님.
날 도와 주소서.
큰 힘과 당신의 지혜 내려 주시어
자신들의 삶에 큰 관심 없는 이들의 가슴속에
내가 기쁨을 불러 일으키게 하소서.

당신의 인내와 당신의 겸손이 나의 마음에 항상 머무르게 하시고
당신의 은총과 당신의 사랑이 나의 모든 언행을 주관하게 하소서.

가르치면서도 배우게 하소서.
사랑 없는 지식은 아무 힘 없나이다.
나를 통해 이들이 행복을 찾고
나도 언제나 그 길을 걸어가게 하소서.
천국에서 별처럼 빛나게 하소서.

('교사의 기도' 조금 수정)

지난 금요일, 우리반 아이 한 명이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전학을 갔다가 적응하지 못해 다시 우리반으로 오게 된 아이였는데 흡연 문제로 다른 선생님께 적발되었다. 학교에서 담배를 피운 건 아니었는데 다시 전학 온 이후, 나에게 잘지내겠다고 약속한지 이틀도 채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반 분위기가 흐트러지는 데 큰 기여(?)를 하는 아이인지라 누차 다짐을 받았지만 결국 내 말은 공허한 울림에 불과한 것만 같았다. 더군다나 녀석의 계속된 거짓말은 나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고, 수십대 매를 때렸지만 마음의 불편함은 더욱 커졌다.

오늘 아침, 녀석을 보는 것조차 힘들었다. 내 마음의 화를 다스리지 못했고, 결국 언성만 높이고 말았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아직 녀석과 조용히 대화할 자신이 없다. 치밀어오르는 내 마음을 우선 진정시켜놓고서야 무언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교사 역시 완전한 인간이 아니고, 아이들은 변하지 않는다던 다른 선배 교사님의 말씀이 귀에 쟁쟁하다. 수십년을 그렇게 살아온 아이들이 나로 인해 변하기를 바란다는건 큰 욕심일 뿐이라는 말씀이셨다. 녀석을 포기할거냐는 물음에 나는 답하지 못했다. 담배 한 대 피우러 밖으로 나왔다가 예전에 성당에서 교리교사를 할 때 자주 부르던 저 노래가 생각났다. 나즈막히 혼자 읊조려보았다.

스르륵 눈물이 흘렀다.

인내와 겸손이 내 마음에 머무르고 있었는지, 내 모든 언행은 사랑으로 행해진 것이었는지... 가르치면서도 배우게 하라는 대목에서 그만 펑펑 눈물을 쏟고 말았다. 나는 지독히도 많은 욕심으로 가득 채워져있었고, 아이들에게 강요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담임이 된다는 것이 아이들을 '내가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기억해야겠다. 나는 그저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곁에서 지켜봐줄 조력자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비가 그치면,
지금 나의 이 불편한 마음도 사그라들기를 빈다.

교사의 기도 全文

2008/09/01 14:24 2008/09/01 14:24

지난 월요일부터 열흘간 1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다. 그 반 담임 선생님의 개인 사정으로 같은 부서인 내가 잠시 학생들과 함께 하게 되었는데 정식 담임이 아닌데도 생각보다 훨씬 마음이 쓰인다.

반 아이 중에 한 명이 이틀 동안 무단결석을 하더니 오늘 오전에 스르륵 교무실에 나타났다. 사정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 가슴도 먹먹해지더라. 아버지의 술주정 때문에 부모님은 이혼하셨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단다. 어머니는 보험설계사로 일하시는데 직장암 3기... 수술은 했는데 여전히 힘들어 하시고 가정 형편은 말할 것도 없이 경제적으로 참 어려운 상태. 무엇보다 가슴 아픈건 이 아이가 학교를 나오기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가 친구 문제 때문이라는 점이다.

수업도 들어가지 않는 반이라 어떤 아이인지 잘 모르겠지만 교무실에서 잠깐 이야기를 해본 것만으로는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다.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고, 자신이 원하는 친구의 모습이 확고한 면이 있는데 다른 학생들과 어울리지 못할만큼 독특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언젠가부터 자신과 어울리는 아이들이 점점 사라져갔고 (본인은 처음에 같이 놀던 아이들이 소위 '노는 학생들'이라서 좀 멀리했는데 그 때즈음이었던 것 같다고 한다.) 요새는 학교에 와도 하루종일 말한마디 편하게 나눌 친구가 없다고 했다.

반 학생들 중에서 조용한 아이 한 명과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길래 우선 그 아이와 좀 더 친해져보라고 했다. 그리고 나중에 무슨 일을 하더라도 (직업전문학교로 전학갈 생각도 하고 있단다.) 결석이 많은 건 좋지 않으니 힘들더라도 일단 학교는 나와서 정규수업은 듣고 가라고 했다.

쉬는 시간 틈틈이 교실에 가서 분위기를 살피고 내려왔는데 5교시 끝나고 가보니 이 녀석이 보이지 않는다. 애들 말로는 점심만 먹고 가버렸다고 한다. 또 며칠 동안은 학교에 나오지 않겠지.. 후아..

내년에는 담임을 맡을 생각인데, "교사의 꽃은 담임"이라는 말을 이제야 조금씩 실감하고 있다.
나는 어디까지 아이들을 보듬을 수 있을까. 이런 아이들의 문제는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적어도 어린 새들만큼은 내 가시에 찔려 날아가지 않도록 고민하고, 또 고민해봐야겠다.
2007/09/13 18:01 2007/09/13 1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