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

Posted 2008/06/02 14:58,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오늘 동생이 입대를 했다. 논산 훈련소로 들어갔는데 주특기를 무엇으로 배정받게 될지 무척 궁금하다. 나도 논산으로 입대했었는데 4.2인치 박격포를 훈련받고 전방 GOP부대로 배치됐었다. 내 전철을 밟는 것도 걱정이지만 시절이 하 수상하야, 혹여라도 전경으로 차출되진 않을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동생은 수도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수도회 교육과정 중 청원기를 보내고 있던 동생은 제대 후 약간의 시간 동안 수도사로서의 삶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고민해볼 기회가 있다고 한다. 그 후 수련기를 거쳐 유기서원기를 마치면 종신서원 이후 온전한 수도사로서 생활하게 된단다.

수도원에 있을 때에는 전화나 이메일은 물론 편지도 주고 받지 못했다. 그러다 이제 군대를 가니 편지도 되고, 전화통화도 할 수 있고, 휴가 때 얼굴도 볼 수 있으니 가족들로선 차라리 조금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그런데 참 묘한 것은 군인이 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너무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저 반길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점심 때 훈련소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동생과 전화통화를 할 수 있었다. 내가 입대할 때는 가족들이 함께 갔었는데 동생은 수도원에서 바로 들어간 것이라서 원장수사님과 함께 단둘이 갔다. 마음이 짠하지만 애써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려고 했다. 혹시나 싶어 집에 전화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는 목소리가 심히 잠기셔서 얼른 전화를 끊으셨다.

동생은 군생활도 잘 해낼 것이다. 온 식구들이 사랑하고, 심지어 하느님도 그를 보살펴 주지 않는가. 동생이 수도원에 간 이후, 오히려 기도를 더 자주 하지 못했었다. 이제 다시 온마음으로 기도해야겠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동생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그것밖에 없을 것 같다.

못난 형이었음에 가슴 아프지만 녀석의 웃는 낯을 볼 날을 기다리며 오늘 하루는 조용히 녀석과의 추억을 되새겨 봐야겠다. 하필이면 오늘은 날씨도 참 을씨년스럽구나...
2008/06/02 14:58 2008/06/02 14:58

전화카드 한 장

Posted 2007/08/28 09:53,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전화카드 한 장

언제라도 힘들고 지쳤을 땐 / 내게 전화를 하라고
내 손에 꼭 쥐어준 너의 / 전화카드 한 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는 / 눈시울이 붉어지고
고맙다는 말 그 말 한마디 / 다 못하고 돌아섰네

나는 그저 나의 아픔만을 /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런 입으로 나는 늘 / 동지라 말했는데
오늘 난 편지를 써야겠어 / 전화 카드도 사야겠어
그리고 네게 전화를 해야지 / 줄 것이 있노라고
- 노래 : 꽃다지



며칠 전 동생의 전화를 받았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산더미같았는데, 목소리 듣고 싶었던 날이 그 얼마나 많았는데, 짧은 안부인사 외에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복받치는걸 억지로 참으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마지막 인사를 했더니, "또 울어?"라던 녀석. 지도 울먹거렸으면서...

밖에 나와 담배 한 대 피워물고, 또 피워물고, 또 피워물었는데 문득 이 노래가 생각났다.
그리곤 이내, 나는 녀석에게 전화카드 한 장 보내줄 수 없고, 편지 한 장 쓰지 못함을 알고,
쓴 침을 억지로 삼켰다. 애꿎은 담배만 뻑뻑 피워대다가 눈알만 시뻘개졌다.
2007/08/28 09:53 2007/08/28 09:53

내 동생

Posted 2007/05/29 01:14,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내 동생 곱슬머리 개구쟁이 내 동생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개.
친구가 부를 때는 종합무술인,
엄마가 부를 때는 꿀돼지,
아빠가 부를 때는 베드로,
형아가 부를 때는...너! 야! 그리고 이 새끼.

형아가 부를 때는...



나는 한번도 동생을 왕자님으로 부르지 않았다.
진심으로 따뜻하게 내 동생을 불러본 적이 몇 번이었던가.
미안하고, 또 미안하고, 가슴 아프다.
2007/05/29 01:14 2007/05/29 01:14

내 잘못이다

Posted 2007/04/11 15:01,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서울에서 속초까지
- 김광규

서울에서 속초까지 장거리 운전을 할 때
그를 옆에 태운 채 계속해서
앞만 보고 달려간 것은 잘못이었다.
틈틈이 눈을 돌려 북한강과 설악산을 배경으로
그를 바라보아야 했을 것을
침묵은 결코 미덕이 아닌데
긴 세월 함께 살면서도 그와
많은 이야기 나누지 못한 것은 잘못이었다.




내 동생이 수도원에 들어가겠다고 한다.
하루 종일 가슴이 먹먹하다.
2007/04/11 15:01 2007/04/11 15:01

오늘 동생의 재수학원 등록을 위해 함께 몇 군데의 학원을 둘러보았다. 부모님이 이제 연세가 좀 있으신대다 어무이는 오래 걸어다니시면 금방 피곤해하시므로 내가 가기로 했다. 사실 녀석과 함께 바람도 좀 쐴겸 내가 먼저 나가자고 했다.

몇 군데를 돌아다녀본 후, 녀석과 내가 동시에 점찍은 곳에 등록하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동생으로부터 놀라운 이야기 몇 가지를 들었다. 하긴 나랑 7살 차이가 나는 동생이라서 예전부터 "나의 정신세계"로는 감당할 수 없는 유머에도 익숙해져 있지만 오늘 얘긴 충분히 공감하면서 신나게 웃었다.

아는 분들은 아실 것이다. 지난 번의 내 착각에 대해서. 동생 역시 똑같은 일을 경험했다고 한다. 저만치에서 예쁜 여학생 둘이 오고 있었단다. (얘네들은 꼬옥 둘이 다닌다.) 내심 "폰번호 받아가려고 하는구나"라며 기뻐하던 내 동생(피는 못속인다;;)이 만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그들의 부름에 응답하려는 찰나,

more..

2006/02/10 23:36 2006/02/10 23:36

재수생이 된다는 것

Posted 2006/02/08 22:37,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얼마전 입시에서 쓴 물을 마신 후, 한동안 "인디밴드를 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해서 온 식구를 긴장시켰던 동생이 재수학원 입학시험에서도 불합격하고 말았다. "올 해에 온 몸을 불태워서(동생은 실제로 이렇게 말했다) 공부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인디밴드를 하겠다"고 선언하여 안정(?)을 되찾은 식구들은 다시금 걱정어린 눈길로 동생을 바라보게 되었다.

내 동생은 태어날 때부터 몹시 몸이 약했고, 어려서는 입원도 자주 하고 잔병도 많았다. 그래서 부모님(특히 아부지)은 나에게 하셨던 것과 달리 동생에게는 "공부는 못해도 좋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며 학업성적에 대한 압박은 거의 하지 않으셨다.

요즘 아부지께선 가끔 "네가 건강하게 태어났다면 지금쯤 입학증을 손에 쥐고 있을 것"이란 뉘앙스의 말을 하신다. 내가 듣기에도 상당히 거북한 말이니 내 동생은 오죽하겠냐만 부모님의 그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는건 아니라서 그저 묵묵히 동생 어깨를 두드려줄 뿐이다.

나는 재수도 해보지 않았고, 진로선택에 있어서도 큰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에 동생이 어떤 마음일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녀석의 수능 성적이 좋지 않다는 것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지만 "하고 싶은 일"을 소신껏 결정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동생이 고민하는 것은 그저 "입시"에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신학교"라는 특별한 삶의 방향을 선택했기 때문이리라.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던 어부 베드로를 "너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리라"며 제자로 삼으신 예수님은 공부하기는 싫어하지만(실제로 동생은 내게 말했다. 공부하기 싫다고.) 신부가 되고 싶어하는 내 동생에게 무어라 말씀하실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고, 인생은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에 회의를 느낄지도 모를 동생에게 올해는 처음으로 겪는 시련의 시간들일 것 같다. 그 곁에서 "힘내라"라는 위로와 응원 밖에 보태지 못하는 나는 오히려 그런 동생을 보며 기운을 낸다. 내가 가르치게 될 학생들에게 삶의 길잡이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더욱 굳건히 하게 되는 것이다.

다음 주 면접을 무사히 치르고 동생에게 내 첫 월급으로 용돈을 줄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 힘들다는 재수를 하게 되는 동생이 힘들고 지칠 때 나에게 와서 어깨를 기대고 편히 쉬어갈 수 있다면 나는 참 행복한 형이 될 것 같다..
2006/02/08 22:37 2006/02/08 22:37

어제 시험을 끝낸 녀석이 현관문을 열고 등장하던 그 순간, 온 식구들이 기립박수를 쳤다. "고생했다!!"

나는 끝내 "시험 잘 봤냐?"라고 묻지 않았다. 점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그게 얼마나 짜증나는 일인지 내가 익히 경험해봤으니까. 당시 나는 시험전의 격려전화도 부담스러웠지만 시험 직후 걸려오는 "잘 봤냐? 어땠냐?"는 전화가 더욱 짜증스러웠다. 물론 모든 전화는 어무이께서 처리하시도록 부탁드렸지만...

아무튼 간만에 외식하고 녀석은 친구들이랑 약속있다고 휙 떠났고 남은 세 식구만 집으로 왔다. 내 시험과도 관련이 있고 문제가 어땠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해설방송을 봤다. 언어영역 듣기 문제 해설이 끝날 무렵, 어무이가 동생의 수험표를 가져오셨다.

어무이와 나는 마치 비밀회의라도 하는양 그 수험표를 들고 하나씩 채점해나갔다. 이건 원래 수험생 본인이 해야하는 일 아닌가?! 내 동생은 "시험 어땠냐?"는 질문에 "언어는 쉬웠고, 사탐은 어려웠고, 영어는 보통이었다."고 대답한 것 말고는 일.체. 점수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야, 내일 학교에 예상점수 내야되지 않냐?"라는 질문에 "대충 380 나올거 같은데 몰라. 나중에 하지 뭐"라고 하더라. 너무나 자연스럽고 태평한 표정에 나 역시 '그래, 점수야 성적표 나오면 알게 될텐데뭘'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튼 어무이와 나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 사실 나는 정말 말그대로 '이 녀석이 몇 점이나 받았을까'라는 게 궁금했다. 사실 녀석은 모의고사 성적표를 보여준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나는 내신 성적에 비추어보아 수능 역시 뒤에서 세는게 빠를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몇 점이면 어디, 몇 점이면 어디, 이런건 아예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어무이는 조금 달랐다. 녀석이 신학교를 갈 수 있을 정도의 점수는 받았는지 짐짓 심각하게 물어보셨기 때문이다. - 끝까지 채점을 했다.

오호, 언어는 거의 만점을 받았더라. 동생이 시험을 잘봤구나..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고 "우와, 도대체 문제가 얼마나 쉬웠으면 얘가 이 점수를 받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무이껜 말씀드리지 않았다;

수학, 반타작. 내가 고3이었을 때, 수학 반타작이면 성공적인 점수였다. (이게 수능 때 운이 좋아서 대박나긴 했지만;;) 평소 실력을 알고 있었으니 여기까지 채점하고 울어무이, 기뻐하고 계셨다. "얘가 그래도 완전 바닥은 아니었구나."

그런데 사탐도 반타작. 슬슬 걱정하시는 어무이. "얘 이래가지고 신학교 갈 수 있겠냐?" "글쎄요, 아직 영어 남았으니까 일단 끝까지 채점부터 해보죠."

영어, OTL... 어쩔끄나, 어쩔끄나, 이 내 동생 어쩔끄나.
가톨릭 사제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뒤로 다른 진로를 구체적으로 생각해놓은게 없는 내 동생은 신학교에 입학하지 못할 경우, 무엇을 할 것인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부모님과도 마찰이 좀 있었고. (집에서 신학교 입학을 강요하는 건 아니었는데 "입학하지 못할 경우"의 차선책을 동생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동생의 점수는 참담했다. 서울에 있는 학교는 일단 물건너간 점수 같다. 그치만 뭐 언제나 그렇듯이 녀석을 제외한 다른 식구들만 점수에 연연해할 뿐 본인은 언제나 초월적인 자세를 견지할 것이다. 어쩌면 녀석이 인생에서 중요한게 학업성적만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일찍부터 머리로, 몸으로 체득하고 있는 것인지도...

채점을 끝내고 다시 수험표를 동생의 가방 속에 넣고 오신 어무이께 우리가 채점해본 건 동생한테는 비밀로 하자고 했다. 사실 너무 궁금해서 해보긴 했는데 우리가 그런걸 알면 삐질 게 분명하다.

동생아. 미안하다. 네 점수, 우리가 다 알아버렸다. 밥먹을 때 네가 "한000점은 맞은 것 같아"라고 말했을 때 사실 믿진 않았지만 가채점 결과는 너무도 치명적이구나. 부디 너도 그 점수를 예상했지만 식구들이 걱정할까봐 뻥친 것이기를 빈다.

자, 주사위는 던져졌고, 내 동생은 판 자체에 흥미가 없다. 아니 이미 승부에 대해선 초월한지 오래다. 나와 비교해보면 녀석은 강철 무지개 위에 꽂꽂하게 선 채, 흰 눈을 이마로 받으며 저 멀리 낙락장송을 바라보며 꾀꼬리 소리에 취한 채 흐르는 구름을 발 아래 둔, 도인의 풍모를 지닌 것 같다.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라 할지라도 녀석이 자신의 풍모를 간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욕심을 좀 내자면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루빨리 찾을 수 있게 되기를 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케케묵은 이야기를 녀석이 이미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


+ 오늘 언어영역만 풀어봤는데 확실히 문제가 쉽더라. 예전보다 소위 "아리까리한" 문제가 거의 없었다. 동생이 수능을 봤는데 내가 수능봤을 때보다 더 긴장되고, 뉴스에 귀기울이게 된다. 허허, 이 것 참...

+ 며칠전 실업계 고3 학생이 실습 중에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신문과 TV 뉴스에서 '수능시험을 보지 않은' 19살 청소년들의 이야기는 몇 번이나 언급이 되었을까. 청소년이 곧 학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걸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2005/11/24 19:23 2005/11/24 19:23

동생 이야기

Posted 2005/11/22 21:31,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 복숭아님의 동생 이야기에 대한 오마쥬

4.5킬로그램의 우량아로 태어나 "외동아들"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특권을 몰아서 받고 있던 나에게 7년 만에 엄청난 시련이 찾아왔으니.. 그것은 동생이라는 낯선 존재의 등장이었다. 내 동생은 당시 초등학교 (그 때는 국민학교였다) 1학년이었던 나의 팔뚝만한 몸뚱이로 태어나 인큐베이터 신세를 지더니 줄곧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다. 당연히 부모님의 모든 관심은 동생에게 쏠렸고, 나는 투덜거리며 학교가 끝나면 동생을 보러 -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를 보기 위해서 - 병원으로 가곤 했다. 더 이상 받아쓰기 백 점 맞은 것으로는 우는 동생을 달래는 엄마의 관심을 받기 어려웠고, 아빠는 늘 "이젠 형노릇을 해야지"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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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22 21:31 2005/11/22 21:31

대신 인문계 학생들은 내 동생을 위하야 "아는 문제"만 다 맞고 "아리까리한 문제"는 양보하는 미덕을 발휘하여 주삼. (중상위권 학생들은 이 말에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ㅡ_ㅡa)

동생에게 [미리] 바치는 노래. "넌 할 수 있어!"




+ 집에 아무도 없을 때 부른건데 갑자기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신 어무이.
어무이, "오늘 왜 이렇게 기분이 좋냐?" 올빼미, "기분 좋아서 부른거 아닌데;;"

+ (이 글쓴 뒤 정확히 6분 후 추가) 허걱. 방금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2005/11/16 20:11 2005/11/16 20:11

2005.06.19.

오늘 오랜만에 마음의 평화를 위해 떼제 기도를 갔다왔다. 정말 마음 편하고 또한 신부님과의 고백성사는 보통 성당에서 하는 형식적인 성사보단 상담에 가까운, 마음이 조금은 후련해지는 그런 성사였다...ㅋ

끝나고 오랜만에 만난 친한 아이들과 정답게 얘기도 하고 밥도 먹었다. 범균이와 헤어지고 나서 집에오는 지하철에서 어느 팔 한쪽이 없으신 아주머니가 자신의 하소연을 적은 종이들을 나눠주고 있었다. 난 친구들이랑 얘기할 때처럼 살만한 사람인데 평범한 사람인데 연기하고 그런 사람이라고...

근데 지하철 바닥에 물기도 조금 있었고 전철이 흔들렸을 때 아주머니가 가운데 서계시다 들고 계시던 종이들을 놓치셨다. 종이는 아주머니 근처로 흩어졌고 사람들은 선뜻 도와주지 못했다. 아마 용기가 부족했을 것이다. 진정한 용기가 부족하고 또 무언지 모르는 듯했다. 암튼 그래서 난 일어나서 그냥 종이만 주워 드렸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는 감사하다고 웃으시면서 파시던 자일리톨 껌 500원짜리 하나를 주시면서 정말 환하게 웃으시면서 주고 가셨다... 난 아무 생각이 없었다...난 아주머니를 나쁘게 생각했는데... 한심하게 생각했는데... 그런 나에게 종이 주어준 걸로 자신의 돈벌이인 껌을 쉽게 내놓으셨던 아주머니... 난 한동안 껌만 바라보았다... 아주머니는 내리시면서 나에게 아주 정중히 인사하시며 미소를 보이시며 내리셨다.

정말 나에 대해 다시 한번 실망했던 날이었다...휴...앞으로는 그런 지하철에서 힘겹게 정말 사람들에게 구걸을 할 수 밖에 없는 그 처지를 이해하고 쓰다듬어주고 싶다. 정말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나쁜 사람들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난 도와주련다. 작은 돈이라도 드리고 싶다.

힘들게 사시는 분들의 미소는 내가 공부를 잘했을 때의 기쁨보다, 운동을 잘해서 상이나 칭찬을 들었을때나, 마음에 안든 애와 싸워서 이겼을 때보다, 어른들에게 칭찬받았을 때보다도 비교가 안되게 내 마음을 채워주고 뿌듯하게 하고 평화롭게 한다. 갑자기 이런 글이 생각난다...리얼이라는 만화책에 있는 멋있는 글이다. '하느님이든, 부처님이든 그 누구든 어떤 신께서는 정말 힙들고 고통스러운 병이나 고난은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주는거 같애.'... 힘들게 사는 모든 분들에게 환한 미소를 드리고 싶다...정말 오늘 떼제를 간거 부터 뿌듯한 하루였다...


고3 수험생인 내 동생이 싸이 일기장에 적어놓은 글이다. 덩치는 산만한 녀석인데 공부도 안하고 맨날 잠만 자고 너무 태평하게 지내는 것만 같아서 늘 구박만 했다. 녀석은 나보다 더 잘 살고 있었는지도 모르는데...

씨..그래 난 원래 혼자고 할 줄 아는 것도 잘하는 것도 돈도 명예도 그 무엇도 없는 그런 바보 같은 놈이니까

이젠 익숙하다 이런 내가... 그래 난 역시 이런 놈인가보지?...
휴....젠장....
역시 난 creep이다..


이대로 가면 난 어디로 가는가...
아무도 알아주지도
알려고도
알리고 싶지도 않다..

뭘까 이런건 ...휴...

난 뭐가 될려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나...


최근 며칠동안 좀 우울해보인다 싶더니 이런 일기를 써놓았다. 엊그제 아부지께 한소리듣더니 한층 표정이 굳었다. 안쓰럽지만 나 역시 몇 마디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그.런.데.

녀석의 생일을 우리 식구 중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 채 지나쳐버리고 말았다. 4일이나 지난 오늘에서야 문득 녀석의 생일이 지나가버렸다는 사실을 안 아부지, 어머니와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래, 녀석은 값비싼 선물을 기대하거나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잘 차려진 생일상을 바랄만한 놈이 아니다. 그저 "생일 축하해, XX아~"라는 말 한 마디를 듣고 싶었을 것이다. 가장 가깝다는, "우린 언제나 널 사랑해~~"라고 말하는 가족들이 자신의 생일을 잊은 채 사흘을 넘게 보냈다. 녀석의 마음이 어떨지 상상해보는 것조차 가슴아프다.

오늘 밤, 야자를 마치고 온 녀석을 붙잡고 앉아서 뒤늦은 생일 잔치를 했다. 잔치라고 해봤자 케이크 하나 켜놓고 식구들끼리 노래 한 번 부르는 것에 불과했지만 녀석이 웃었다. 내 동생은 웃을 때가 참 멋지다는걸 새삼 깨달았다.

내 동생은 가톨릭 사제가 되고 싶어한다. 물론 성적은 아주 좋지 않다. 어디가서 대학교 이름대면 "좋은 학교 다니는구나"라는 얘기를 듣는 나와는 정말 많이 다른 녀석이다. 욕심도 없고, 끈기도 없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내 동생은 욕심을 내지 않은 것이고, 평화롭게 살고 싶어하고, 근심과 걱정을 하지 않고 싶어했을 뿐이다. "어른들"처럼 살기 싫어한다는거, 나 역시도 똑같이 경험했던 일이었음에도 나는 그새 내 지난 생각들을 잊어버린 채 그 "어른들"의 눈으로 동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웃음 띈 녀석을 데리고 나가서 간식을 좀 사왔다. 내일 있을 시험 준비 때문에 밤을 좀 새야할 것 같아서 야참을 준비하려는 생각도 있었지만 동생이랑 동네 한 바퀴 돌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녀석은 예전의 그 웃음을 되찾고 있었다. 참 미안하다. 어떻게 얘기를 해주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늘 동생에게 "세상은 우리가 힘써 지켜야할 것들과 애써 바꿔야할 것들로 가득찼다"고 얘기해 왔으면서도 정작 내 동생은 지키지 못했고, 나 자신을 바꾸지 못했던 것 같다.

녀석의 수능 시험도 끝나고, 내 임용 시험도 끝나는 올 겨울 어느날, 어디 멀리 여행이라도 같이 가야겠다. 마음같아선 지리산 천왕봉의 일출을 같이 보고 싶은데 0.1톤에 육박하는 녀석이 응해줄지는 모르겠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그래도 우리 형이 있으니까"라고 생각해줄 수 있는, 그런 형이 되고 싶은 마음 뿐이다.

사랑하는 동생에게 나는 아직도 사랑한다고 자주 말하지 못한다.
오늘 밤 자기전에 해줘야겠다. 한 번 안아주고...
(조심하긴 해야된다. 예전에 한 번 그랬다가 맞을뻔했다; 징그럽다고;;)
2005/10/21 01:37 2005/10/21 0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