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Results for '문학'

28 POSTS

  1. 2007/06/29 가는 비 온다 (4)
  2. 2006/06/30 선생님, 질문있어요! (2)
  3. 2006/05/14 분명히 알고 돌아서는 이의 뒷모습
  4. 2006/04/09 중간고사 문제 만들기 (6)
  5. 2006/03/30 여고생이 읽지 말아야할 소설 (30)
  6. 2006/03/20 아이들이 웃어제낀 이유 (4)
  7. 2006/03/04 나의 첫 문학 수업 (12)
  8. 2006/02/25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2)
  9. 2005/09/13 짧은 글짓기 (8)
  10. 2005/03/17 작은 이야기. Synopsis (1)

가는 비 온다

Posted 2007/06/29 14:09, Filed under: 학교종이 땡땡땡
빗방울 하나가   / 강은교

무엇인가 창문을 두드린다
놀라서 소리나는 쪽을 바라본다
빗방울 하나가 서 있다가 쪼르르 떨어져 내린다

우리는 언제나 두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이 창이든, 어둠이든
또는 별이든
오늘은 비가 시원하게 쏟아졌다. 교무실에 앉아 나뭇잎에 후둑거리는 빗소리를 듣다가 오늘 같은 날, 녀석들과 함께 시 한 편, 같이 읽으면 좋겠다 싶어서 부랴부랴 종이에 옮겨적었다. 이 녀석들, 맨날 밑줄치고 동그라미치고, 소재 찾고 주제 찾느라 시 한 편 제대로 읽어본 적 있었을까. 내 탓도 있을게다. 기말고사 진도 빠듯하다는 핑계로 "자, 여기 밑줄쳐봐. 이런걸 뭐라고 하지? 그래, 반어!"라며 떠들어댔으니...

인사를 하고 아무말없이 칠판에 시를 적기 시작했다. 등 뒤로 들려오는 한 마디...
"선생님, 그거 어디다 적어요?"
작품개요 정리해줄 때도 "어디다 적어요?"라며 묻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다.

"이건 적지말고 그냥 한 번 봐."
"왜요?"
"비오잖아? 크아~"

애들이 난리가 났다. 꽃미남 문학 소년이라서 비 오는 날이면 감수성이 예민해진다고 농을 던졌더니 토하는 시늉도 하더라. 느끼하다며 비명을 질러댔다. 그 난리 중에 "에이, 그럼 선생님이 직접 써야죠~"라는 녀석에게 윙크를 던지며, "기다려봐. 때가 되면 다 보여줄게. 아직은 쪽팔린다."라고 했더니 또 토하는 시늉을 한다.

지들끼리 떠드느라 내 낭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는데 슬쩍 베껴적는 녀석도 있었다. 그래, 단 한 명이라도 문학을 즐길 수 있게 된다면 그 얼마나 가슴 따뜻한 일인가. 삭막한 세상을 촉촉히 적시는건 비 뿐만이 아닐진대...

나는 아직 두드리고 싶은게 많아서
행복하다.
그것이 창이든, 어둠이든
또는 별이든.
2007/06/29 14:09 2007/06/29 14:09

선생님, 질문있어요!

Posted 2006/06/30 23:41, Filed under: 학교종이 땡땡땡
우리 부모님은 어린 나를 학교에 보내시면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차 조심해라."라는 말씀을 잊지 않으셨다. 착한(!) 나는 부모님의 말씀을 실천에 옮겼고 선생님들의 말씀을 잘 "듣기만" 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그 버릇은 여전했고 정말 골치를 썩이는 문제가 아니면 선생님께 질문하는 일은 드물었다. (공부 잘하는 반장과 몇 명의 친구들을 귀찮게 했을 뿐;;;)

내일 1교시가 문학 시험이다보니 하루 종일 녀석들이 질문 공세를 퍼붓고 있다. 평소에는 수업 관련 질문은 하나도 하지 않고 "몇 살이에요?" "키는 얼마에요?" 등 쓸데없이 가슴아픈 질문만 던지는 녀석들이 시험이 다가오면 미친듯이 질문을 해댄다.

수업시간이나 쉬는 시간, 야자 시간에 질문하는 학생들의 99%는 여학생들이다. 아주 간단한 질문부터 나도 "이건 다시 확인해보고 말해줄께"라고 대답하는 질문까지 각양각색의 질문들이 터져나오는데 며칠 전 야자감독 때는 근 1시간을 대답해주면서 보내기도 했다.

여학생들은 굉장히 세밀하게 공부한다. 심지어 내가 수업시간에 예를 들어준 것까지 적어놨다가 물어보는 학생이 있다. 심지어 내가 했던 농담을 적어놓은 녀석도 있었다. 대체적으로 여학생들은 아주 꼼꼼하게 필기를 하고, 열심히 외운다.  때로 여학생들은 한 문장의 세세한 의미 분석에 치중하느라 전체 작품 또는 문제의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해서 쉬운 문제를 틀리는 경우도 있었다.

남학생들은 대충 본다. 대부분의 남학생들은 여학생들보다 필기를 적게 한다. 여학생 못지않게 꼼꼼하게 하는 남학생도 있지만 여학생과 대적하기엔 부족했다. 어쨌든 남학생들은 대체로 작품 전체를 본다. 그리고 나름대로 정리를 한다. 남학생들은 보통 "이 소설에서 XX이랑 OO이가 갈등하는 이유는 이러저러한 것 때문인거죠?"라거나 시적 화자의 태도를 묻는다. 내 경험상, 남학생들은 대충(!) 알고, 자신의 느낌대로 문제를 푸는 것 같다.

어쨌거나 남학생이건 여학생이건 결과는 비슷하다. 남학생은 세밀한 표현법에서, 여학생은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문제를 틀리게 되니까. 다만 여학생들의 평균 점수가 높은건 여학생들의 공부량이 더 많기 때문이리라.

아이들은 확실한 것을 원한다. 어떤 문학 작품의 표현법이 A이냐 B이냐를 명확히 알고 싶어 한다. 시를 공부하면서 "시어의 함축성"을 고려해야한다고 강조해도 "그렇다면 답은 어떻게?"라고 반문하는 학생들이 많다. 문학엔 답이 없다라고 설명할 때 "시험엔 답이 있잖아요!"라는 녀석들. "문제로 나오면 답을 골라야 하잖아요!"라는 녀석들에게 나는 차마 "그래도 문학은..."이라는 말을 하지 못하겠더라. 80%짜리 답과 10%짜리 답이 있다면 80%짜리를 고르는게 문학시험이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

휴우. 방금 또 하나의 문자에 답을 해주고 "언제 주무세요?"라는 말에 곧 잘거라고 답했다. 오늘 하루동안 문자 수십통, 전화 몇 통을 온전히 녀석들의 질문과 대답에 사용한 것 같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질문은 시험문제와 거리가 좀 멀었지만.. 허허허허..
2006/06/30 23:41 2006/06/30 23:41

한 때 "창작"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고3 때였던가. 대학은 가야겠고, 점수는 형편없고, 담임은 "가야대라도 가야대!"라던 그 때, 교내 게시판에 모 대학의 문예대회 안내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노트에 끄적였던 것들을 모아 담당 선생님께 보여드렸더니 "왜 이제 왔냐! 이거 먹히겠다!"라고 하셨다.

남들은 모의고사 공부한답시고 열을 올리는데 나는 아침에 조용히 윙크 한 번 날려주고 캠퍼스로 향했다. 날씨도 화창했다. 아마 그 땐 "그래, 대충 써도 예선 통과했는데 제대로 쓰면 등단쯤이야 우습겠군. 후훗."이라고 생각했었나보다.

본선에서 보기 좋게 탈락한 이후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대학에 와서 창작관련수업 때 교수님으로부터 오만가지 소리를 다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가득차 있었다. 언제였을까. 학회 활동을 하던 선배가 등단을 한 이후였는지, 창작 관련 수업에서 모조리 B이하를 맞은 이후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스스로 "난 아직 멀었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돌고 돌아서 여기까지 왔다. 내가 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치게 될 줄은 우리집 푸름이 녀석도 몰랐을테지. 어쨌든 아직까지는 잘 걸어왔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혹시라도 내 글이 "먹혔"더라면 귀여니보다 백만 배쯤 더 많은 네티즌들의 열렬한 댓글을 받았을테니...

그나저나 임용시험공부도 해야하는데... 후아...
2006/05/14 18:14 2006/05/14 18:14

중간고사 문제 만들기

Posted 2006/04/09 22:59, Filed under: 학교종이 땡땡땡
언제나 그렇듯이 주말이면 일주일동안 아껴둔 잠을 몰아서 자느라 바쁘다;; 게다가 이번 주말에는 곧 다가올 중간고사를 대비해서 시험문제도 미리 만들어 두어야했기 때문에 더 정신없었다. (약속 하나 있던 것도 취소해버렸다. 집 밖으로 나가는 것도 귀찮고 해서;;;)

세 명의 선생님이 나눠서 출제하게 되어서 나는 11문제를 만들어야 했다. 방금 마지막 문제를 만들고 파일에 암호까지 걸어두고 저장을 했다. 우하하하하. 녀석들, 문제보면서 땀 좀 흘리리라.

일단은 주욱 문제만 만들었다. 내일 학교에서 하나씩 재검토해볼 생각이다. 오타는 없는지, 답지는 적절하게 구성되어 있는지, 아이들이 오해할 만한 문제는 없는지 등등 생각보다 신경쓸 게 많다.

출제하는 데 참고하려고 작년도 중간고사 문제를 받아왔다. 내신 문제라기보다 수능형 문제에 가깝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 내신 문제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세상이 바뀌긴 바뀐 것 같다. 하긴 문학 과목이니 더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수업시간에 음악 듣고, 시낭송 들으며 룰루랄라 했던 녀석들에게 머리를 쥐게 만들 문제들을 만들어 놓고 보니 일말의 미안함도 살짝 고개를 든다. 그래도 시험은 시험. 달달달 외우기만 해서는 풀기 힘든 문제들이다. 그저 "내 수업 열심히 듣고 혼자서 많이 생각해 본 학생"이라면 그럭저럭 무난하게 풀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내 수업 열심히 들은 학생이라면 모두 만점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라고 말하면 녀석들은 또 뭐라고 꿍시렁거릴까. 낄낄낄.

어쨌든 나의 첫 시험문제가 아이들에게 공개될 날도 얼마남지 않았다. 자뭇 긴장되고 걱정스럽기만 하다. 별 일 없어야 할텐데... (가장 걱정되는건 "선생님! 왜 O번 문제 답이 3번이에요?!!! 이러저러하니까 1번도 답이잖아요!", "어? 그,그런가? 음... 그,그,그렇네..."라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 OTL..)


+ KT에서 광통신 어쩌고를 깔아놓고 갔다는데 어째 무선 인터넷이 더 말을 안듣는다. mac 주소로만 접속할 수 있었던 것도 이젠 무조건 네스팟 프로그램을 돌려야하고.. 좀 한가해지면 KT에 전화해서 한바탕 해야겠다. 쳇.
2006/04/09 22:59 2006/04/09 22:59

여고생이 읽지 말아야할 소설

Posted 2006/03/30 22:20, Filed under: 학교종이 땡땡땡
며칠전 야간자율학습(정확히는 "자기주도학습" ㅡ_ㅡ;) 지도교사로 남아있을 때의 일이다. (자율학습을 [감독]한다는 말도 우습지만 [지도]라는 것도 꼴사납다. 어쨌든 아이들이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역할을 말하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전교생이 밤10시까지 야자를 하는데 1,2학년에서 전교1등부터 30등까지는 "특별관리"를 하고 있다. 별도의 공간에서 야자를 하도록 하고 있는데 그 곳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다.

반에서의 석차로 뽑은 것도 아니고 전교 석차로 아이들을 걸러냈으니 야자시간에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릴만큼 조용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쉬는 시간에도 꼼짝않고 문제를 풀고 있는 학생도 있다. 나는 내가 먼저 숨이 막히거니와 녀석들도 좀 답답하지 않을까 싶어 가끔 일어나서 무슨 공부하는지 슬며시 들여다보기도 하고 간혹 책을 읽고 있는 아이가 있으면 살짝 표지를 구경하기도 했다. (그랬다가 "신경쓰인다"는 어느 학생의 항의 아닌 항의 소리를 듣고 그마저도 하지 않았지만;;)

쉬는 시간, 몇 몇의 아이들이 나와 이런 저런 잡담을 하고 있었다. 보통 여학생들은 남자 선생님에게, 남학생들은 여자 선생님에게 말을 잘 거는 편인데 어쨌거나 나는 곱디고운 여고생들에게 둘러싸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언어영역 이야기를 할 때였던가.. 누군가 "공지영"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나는 한 아이에게 "봉순이 언니"를 읽어보았느냐고 물었다. [고등어]가 아닌 [봉순이 언니]를 물어본 이유는 언젠가 그 책이 MBC 느낌표 선정도서였다는 사실을 기억했고, 아무리 책을 안읽는 아이들이라도 느낌표에 나왔던 책은 이름이라도 알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대답이 걸작이었다.

"어? 그 책, 우리 엄마가 읽지 말랬어요."

적잖게 당황했다. 왜냐고 물었더니 이유는 모르겠단다. 그 아이는 수업 시간에 언제나 허리를 세우고 잠시도 한눈을 팔지 않은, 발표에도 능숙하고 아이들에게도 있기있는 예쁜 반장이었다. 그 아이의 어머니는 왜 봉순이 언니를 "금서"로 취급한 것일까.

같은 반 아이 중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하는 학생이 한 명 있다. 그 아이 역시 맨 앞자리에서 절대로 졸지 않으며 내가 하는 말과 행동에 하나하나 귀기울이는 학생이다. "공부 잘하는 모범생"으로만 알았던 그 학생은 언제나 확실한 답을 원한다. 그러나 어디 "문학"이 확실한 과목이던가. 그래서 녀석은 늘 질문을 많이 한다. 무엇보다 날 가장 안타깝게 하는 것은 그 학생은 지나치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한 나머지, 스스로 완벽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볼 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인간적인 실수에도 그 아이는 혼자서 굉장히 마음아파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내가 한 마디 말을 보탠다면 더 크게 신경을 쓸 것 같아서 짐짓 모른척 하고 말았다.

조선일보를 열심히 구독하며 왜 북한이 우리의 주적인지를 옹호하는 논지를 펼치는 토론회(사실 토론회라기보다 일방적인 전달에 가까워보였지만)에도 참석하는 아이가 있는데 그 녀석은 내게 "선생님은 어떤 신문 보세요?"라고 하더니 내가 미쳐 대답하기도 전에 스스로 평을 내린다. "한겨례는 너무 정부편만 드는 것 같아요. 조선일보는 비판적인 것 같은데." 그 아이는 며칠 뒤, 내게 체게바라 평전을 읽고 독서토론회를 한 적이 있다며 자랑을 했다. 흐뭇한 미소와 함께.

나는 아이들에게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문학을 가르쳐야 한다는 건 우리의 삶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가르친다는 말도 우습다. 문학 자체를 가르친다고 해서 무엇하겠나. 문학을 통해 조금 더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게 도와준다고 하는 것이 더 옳은 일이 아닐까. 문학이란 우리가 조금 더 넉넉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는 방법임을 느낄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비단 몇 몇의 아이들 뿐만 아니라 한 달 남짓 고등학교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겪어보고, 들어보고, 생각해보니 결국 문제는 어른들이다. 그래서 날이 갈수록 수업에 대한 압박감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어른"임과 동시에 "선생님"이 아닌가. 올바른 것을 가르치고 있는지, 올바르게 가르치고 있는지 점점 걱정이 커져만 가고 있다.

내일 수업시간에는 내가 좋아하는 시 한 편을 읽어주어야겠다...
2006/03/30 22:20 2006/03/30 22:20

아이들이 웃어제낀 이유

Posted 2006/03/20 21:04, Filed under: 학교종이 땡땡땡
나는 이번 학기에 보충수업과목을 3개나 개설하게 되었다. (그 복잡한 속사정이야 눈물없이 볼 수 없으니 일단 생략.) 그 중 하나가 "현대문학"이다. 그나마 수업연구의 부담을 덜어보고자 시중에 나온 문제집을 하나 선택해서 수업을 하고 있는데 "현.대.문.학."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중압감은 역시나 만만치 않다.

주로 야자시간이나 주말에 수업 준비를 하는데 지난 시간에는 조금 특별한(?) 수업을 했다. 첫 시간에는 현대 문학에 대한 간략한 안내 정도로 마쳤으니 제대로 된 첫 수업인지라 괜히 긴장했다. 이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자신이 듣고 싶은 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하여 수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현대문학을 선택한 아이들 중에는 유난히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많다. 이것은 곧 내 수업이 부실할 경우, 바로 티가 나게 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첫 단원인 [현대시]를 어떻게 가르치면 좋을까 궁리하다 예전에 써둔 내 시를 써먹어보기로 했다. 눈 딱 감고 칠판에 내가 쓴 시를 주욱 죽 써내려갔다. 참 민망했지만 일단 아이들에겐 지은이가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내 시의 한 구절, 한 구절을 예로 들어가며 시의 운율, 이미지, 상징 등을 설명하고 시 감상법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게, 그리고 진지한 눈빛으로 경청하고 있었다. 내가 내 시를 설명하면서 그렇게 "억지로 짜맞추어가며" 설명하노라니 얼굴이 홍당무가 될 지경이었지만 정색을 하며 수업을 진행했다.

"자, 이제 이 시의 지은이를 알려주겠습니다."

칠판에 내 이름 석자를 적어 놓는 순간, 약 3초간의 정적이 흐른 뒤, 아이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쓴거에요?" "진짜 선생님이 썼어요?"라는 질문에 수.줍.게. "응, 내가 대학 다닐 때 쓴거야."라고 대답하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호탕하게, 기세좋게, 마구 비웃어가며...

그 중 한 여학생이 외친다. "선생님, 너무 불쌍해 보여요.." OTL..

어쨌든 그 수업 이후로 정규 문학 시간에도 종종 아이들은 그 시를 언급한다. 작가와 시적 화자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그 시를 들먹이며 "그 시에서 선생님이 말해준거, 그거죠?"라고 하는 녀석도 있다. 굉장히 민망하지만 어쨌든 아이들은 시를 쬐끔 재밌어 하게 된 것 같다.


+ 문제의 그 시를 링크해 둔다. 이 시는 대학교에서 문학반 활동을 할 때, 선배 누나가 쓴 시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은 시다. 그 누나에게는 물론, 학생들에게도 이건 말하지 않았다. "선생님, 표절한거에요?!"라고 할까봐 무서워서; 어쨌든 그 시의 제목은 "비 오던 날"이다.

+ 기왕 이렇게 된 거, 소설 파트 진도를 나갈 땐 내가 쓴 소설을 한 번 써먹어볼까 생각중이다. 나도 은근히 즐기고 있는가보다. 허허허허..
2006/03/20 21:04 2006/03/20 21:04

나의 첫 문학 수업

Posted 2006/03/04 17:33, Filed under: 학교종이 땡땡땡
어제 첫 수업을 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지, 첫 만남은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이런저런 고민도 많았지만 설레는 마음이 더 컸지요. 게다가 여학생은 처음 대하는지라 괜히 더 떨렸습니다. ;-p

간략한 제 소개와 한 학기 동안의 수업에 대한 안내, 평가 계획에 대한 설명, 그리고 약간의 잡담을 곁들이니 50분이 꽉 차더군요. 새 학기의 첫날, 같은 반임에도 서로 어색해하는 아이들 앞에서 저마저 어색해질 뻔 해서 표정관리하는 데에 신경을 좀 썼습니다. 재미있는 건 여학생들보다 남학생들이 더 쑥쓰러워하고 어색해 하고 있더군요. 예상 밖이었습니다.

문학은 즐거운 것임을 느껴볼 수 있는 수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몇 편의 짧은 시를 칠판에 적어주었습니다. 생각보다 학생들의 호응이 좋아서 내심 뿌듯했어요. 앞으로의 수업 시간에도 그 정도의 관심만이라도 꾸준히 가져주었으면 좋겠습니다.

3개 반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첫 번째 반은 저도 얼떨떨해서 준비해간 것만 겨우 하고 미리 '요건 말해줘야겠다'라고 생각했던건 하나도 말을 못해줬어요. 두 번째 반에서의 수업이 가장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저도 풍부하게 설명해줄 수 있었고 학생들의 반응도 좋았던 반이었으니까요. 세 번째 반은 제가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해버리는 바람에 학생들이 조금 혼란스러웠을 것 같았습니다;; 점심 식사 후의 노곤함과 창문으로 쏟아지는 따땃~한 햇살 덕분에 꾸벅꾸벅거리는 학생들도 눈에 띄었구요. 게다가 담임 선생님께서 임의로 남/여로 짝을 지어주셨는데 녀석들이 워낙 "내외"하는지라 썰렁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학교가 집에서 조금 멀기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서 나갔다가 밤에 들어오는 생활이 계속 될 듯 합니다만 수업을 생각하면 또 힘이 납니다. 제가 재미있어하는 문학을 학생들과 함께 할 생각을 하니 즐겁습니다. ^^ 이러다 또 저만 즐거운 수업이 될까봐 걱정도 되고...

선생님들의 잡무가 많은 건 이미 만천하가 다 아는 사실인데 우리 학교도 예외는 아닙니다. 수업준비 틈틈이 업무를 보는건지, 업무 틈틈이 수업준비를 하는건지 모를 정도니까요. 학기 초라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만 제가 교사라는 직업에서 즐거움을 얻지 못하게 된다면 그건 아마 수업 이외의 일로 빚어지는 결과가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학생부에 소속되었는데 다음주부터는 교문지도도 해야합니다. 집에서 조금 더 일찍 나가야되는 부담이 있지만 (지금도 제가 대문을 나설 때면 온 세상이 캄캄하지만..) 한 번이라도 더 마주치게 될테니 학생들과 조금 더 빨리 얼굴을 익힐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생각해보니 등교시간(7시 반) 이후 지각생 담당인지라 별로 만날 일이 없을 것 같기도 하네요 -_-;)

다음 주부터는 본격적인 문학/독서 수업이 시작되고, 그 다음 주부터는 보충수업이 시작됩니다. 오늘 책 몇 권을 사왔는데 정말 많이 준비해야겠다는 생각만 듭니다.

따뜻한 봄날이 오고 있나 봅니다. 첫 수업을 하고 난 지금, 제 볼이 살짝 발그레해졌거든요...
2006/03/04 17:33 2006/03/04 17:33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Posted 2006/02/25 01:28, Filed under: 맛있는 문학
4. 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우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 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우커를 하러 갔고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 김광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지난 임용시험의 전공과목에서 가장 마지막 문제는 이 시를 해석하는 문제였다. A4 반쪽 정도의 빈 공간에 나는 무엇을 적었던가. 내가 아는 선배형은 이 시 때문에 국문과를 택했다고 했었다. 그 형은 교양수업의 자기소개 시간에 이 시를 읊었다고 들었다.

그 형은 이 시를 읽을 때, 화자와 사회의 관계, 문학과 역사의 관련성, 화자의 어투, 각종 수사법 등을 고려하면서 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형은 이 긴 시를 외우고 있었고, 즐겨 암송하였으며 주위 사람들에게도 곧잘 들려주었다.

시를 즐기는 것과 시를 가르치는 것은 분명 다르지만 시를 가르치는 목적 중의 하나가 "시를 즐길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임은 자명하다. 지금 내 어깨가 뻐근해져 오는 건 이 시를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며 읽기"라는 학습목표 아래 어떤 이론을 가르쳐야할지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 것들은 자습서만 봐도 훌륭히 정리되어있다.

나는 아직 이 시를 읽고 난 후, 내게 전해져 오는 "그 무엇"을 어떻게 온전히 표현해야하는지 자신이 없다. "중년 남성들의 추억"이란 식으로 정리할지도 모를 학생들에게 '결론 없는 모임'의 끝과 깊은 '늪'의 시작을 어떻게 연결시켜주어야할지도 막막하다. 내가 느꼈으니 너희도 느껴봐라는 식은 교육이 아니며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모두가 뜬구름만 잡게 될 뿐이다.

요즘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아이들과 얼마나 폭넓은 문학경험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점이다. 그 목적과 수단을 충분히 곱씹어 보기엔 새학기가 너무 빨리 다가왔다.

오늘은 시 수업을 할 때, 기타반주를 곁들여볼까 하는 상상도 해봤다.
시의 아름다운 울림이 기타와 공명하여 아이들의 마음을 두드려 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2006/02/25 01:28 2006/02/25 01:28

짧은 글짓기

Posted 2005/09/13 22:31, Filed under: 맛있는 문학
가을비 보슬보슬 뿌려주시는 날이면 공책에 뭐라도 하나 끄적거려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요로코롬 마음이 간지러울 때 즐길만한 유용한 놀이를 찾았다.

이름하야 [짧은 글짓기]

여기에서 시작했나본데 이 곳에서 한글 설명서(?)를 읽었다. 원래 제목은 "문장 수행가가 해볼 40개의 단문 묘사"라는데 일본말이라 그런지 우리말 제목으로는 확실히 어색하다. 그래서 내 맘대로; 짧은 글짓기로 해버렸다.

일본어로 65자라는 것과 일본인이 뽑은 단어 40개라는게 걸리적거리긴 하지만 적당히 "한국어화"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마음같아서야 저 일본인 홈페이지에 이러저러하니, 요리조리 쓰겠다라고 남겨놓고 싶은데 내가 아는 일본말이라곤 "스고이!"정도이니... 혹시 일본어 잘하시는 분이면 저 쪽에 이 얘기 좀 전해주시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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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말 빼고, 한자 빼고, 어색한 우리말은 고쳐썼다)

01. 고백
02. 거짓말
03. 졸업
04. 여행
05. 배우다
06. 전차
07. 애완동물
08. 버릇
09. 어른
10. 식사
11. 책
12. 꿈
13. 여자와 여자
14. 편지
15. 신앙
16. 놀이
17. 첫 경험
18. 일
19. 화장
20. 분노
21. 신비
22. 소문
23. 그와 그녀
24. 슬픔
25. 삶
26. 죽음
27. 연극
28. 몸
29. 감사
30. 이벤트
31. 부드러움
32. 아픔
33. 좋아해
34. 옛날과 지금
35. 갈증
36. 낭만
37. 계절
38. 이별
39. 욕망
40. 선물
2005/09/13 22:31 2005/09/13 2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