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 잔인한 [행복]

Posted 2007/10/09 15:59, Filed under: 아름답게 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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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 감독: 허진호 / 출연: 황정민, 임수정, 공효진 외 / 124분 / 2007.10.3 개봉

개봉 첫 날, 입소문을 들어보지도 않고 보는 영화는 흔치 않다. 여자친구로부터 '행복'의 감독이 허진호라는 것과 황정민, 임수정이 주인공이라는 말을 듣고선 곧장 극장으로 향했다.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는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진 후 어찌할 줄 모르고 있던 내게 특별한 감동으로 다가온 영화였다. "당신만은 추억이 되지 않습니다."라던 정원(한석규)의 마지막 모습과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상우의 질문에 "...미안해..."로 대답하던 은수의 표정은 가슴 깊숙이 박힌 가시 같았다. 바로 그 허진호 감독의 영화가 아닌가.

게다가 교도소 스피커를 냅다 뜯어버리고 매달리던 석중(황정민)의 모습을 눈물 없이 지켜보긴 힘들었고, 눈썹을 밀고 뻐드렁니를 끼운 채 건전지로 연명하던 영군(황수정)의 활약(!)을 생생히 기억하는 지금, 그 두 명의 배우가 허진호 감독과 함께 나온다는 데 기대를 하지 않을 수가 있으랴.

'행복'은 '봄날은 간다'보다는 편안하지만 '8월의 크리스마스'보다는 잔인한 영화였다.

영화는 큰 감정의 기복 없이 물 흐르듯 흘러간다. 그들이 연인이 되었을 때에도, 다시 남남이 되었을 때도 가슴이 울렁거리지는 않았다. 심지어 죽기 위해 달려가는 은희를 보면서도 그저 무덤덤할 뿐... 그 놈의 화분을 냅다 던져버리고 싶었던 '봄날은 간다'를 볼 때보다 훨씬 편안한 느낌이었다. 영수가 이별을 알릴 때 내뱉던 은희의 욕설은 부족했다. 더 심했어야 했다.

그래도 떠나버린 정원의 모습보다, 남아있는 영수의 꼬라지가 더 형편없다는 점에서 '8월의 크리스마스'보다는 조금 더 잔인한 영화였다. 자신에게 침을 뱉던 영수는 그 후로 어떻게 살아갈까...

지금은 너무 행복해서, '행복'의 잔인한 고통에 쉽사리 공감하지 못한다. 잊고 싶은 기억일 뿐더러, 이미 흐릿해진 감정을 애써 올올히 되살릴 이유는 전혀 없다. 조제를 보고, 정원을 보고, 은수를 보며 광분했던 날들은 이제 영원히 안녕이니까. 목숨을 끊고 싶을 만큼 잔인한 고통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나는 지금 내 곁의 한 사람을 사랑하고 있으니 말이다.


+ 임수정도 예뻤지만 공효진도 멋지다. 공효진은 이런 이미지 - 살짝 양아치 같은;; - 에 적격이었다.
+ 박인환 아저씨를 보며, 담배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어떤 면에선 금연/금주 홍보 영화..
+ "간경변, 재주 좋네?"라던 아저씨와 그 트리오의 '창문 밖 합창'은 절대 놓치지 마시라. ^^
2007/10/09 15:59 2007/10/09 15:59

딸 같은 아들

Posted 2007/06/18 23:59,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나는 우리 아부지를 많이 닮았다. 닮고 싶지 않은 것도 많은데 남들은 천상 부자지간이랜다. 마음이 여리고 눈물이 많다. 그리고 소심하다. 오늘은 간만에 족발에 소주 한 잔 기울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수도원에 간 동생 이야기를 하며 온 식구가 눈물을 죽죽 짜냈다. 한참을 펑펑 쏟아내고는 밖으로 나와 담배를 한 대 피워물었다. 그래, 지금 우리집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나다. 나라도 기운내야하지 않겠나. 야밤에 담배 한 개비 훌쩍훌쩍 피워대고 있자니 눈물먹은 별도 별사탕같더라. 아부지의 등짝을 냅다 치면서 "에구, 울아부지 왜이렇게 약해요"했더니 또 울먹이시며 "지는?! 지도 강한 척 하면서..."라며 벌개진 두 눈으로 쏘아보셨다.

언제부터인가 울아빠, 울아부지, 우리 아버지의 어깨가 내려다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과 세상에서 제일 여린 사람의 괴리를 어느새 해소해버린 존재. 그 곁에서 나는 조금씩 자라고 있었나보다. 울아부지 소원대로 이제 딸자식 노릇 좀 해봐야겠다. 설령 내게 성정체성의 혼란이 올지언정... (아직도 울아부지는 "애교는 딸이 부려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신다...근데 왜 내게 그런 것을 바라시는고...)
2007/06/18 23:59 2007/06/18 23:59

자공이 물었다. "마을 사람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공자는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그렇다면) 마을 사람 모두가 미워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라고 묻자
"(그 역시)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마을의 좋은 사람이 좋아하고 마을의 좋지 않은 사람들이 미워하는 사람만 같지 못하다."고 대답하였다.

(子貢曰:"鄕人皆好之,何如?"子曰:"未可也。"  "鄕人皆惡之,何如?"子曰:"未可也。不如鄕人之善者好之,其不善者惡之." - <論語>)

교사도 사람인지라 언제나 즐거운 기분으로 수업을 할 수는 없다. 몸이 피곤하거나 다른 일로 바짝 신경을 써야하는 날이면 아이들의 작은 소리에도 참 예민해진다. 그렇다고해서 학생들 앞에서 내 기분을 그대로 드러낸다는건 교사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무덤덤하게, 부처님 가운데 토막처럼 희노애락에 흔들림없는 모습이 필요하다는건 알겠는데 참 힘들 때가 많다.

요즘 고등학생들은 자유분방하다. 어떤 일이든 자신의 기준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자신들의 논리로 이해하지 못하면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학생이니까" 라는 말은 그네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너는 이러저러하니 저러이러하게 해야한다"라고 말해주어야 납득을 한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보다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인 것은 사실이다. 학생과 교사 사이에는 지금보다 더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필요하지만 올해 처음 학생들을 만나본 나로서는 매 수업 시간, 녀석들과의 의사소통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나는 귀가 얇아서 이런 저런 말들에 쉽게 휘둘리는데 청각은 또 예민하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학생들끼리 주고받는 숱한 이야기들이 내 귀에 쏙쏙 들어올 때가 많다. 대부분 저희들끼리 주고받는 농담이지만 때로는 나에 대한 뼈아픈 농담도 섞여있다.

오늘 문득 공자님의 저 말씀이 생각났다. 학기 초, 처음 만나보는 여고생들의 환대(?!) 속에서 갈피를 못잡던 나... 어쩌면 나는 모든 학생들로부터 사랑받기를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본다. 선생님이기 때문에 해야하는 많은 불편한 일들을 나는 일부러 피해온 것이 아닐까.

스스로 위로하다가도 또 한 번 부족한 나를 자책해본다.
이제 겨우 18살, 스무살도 채 되지 않은 그들 중에
누가 좋은 사람이고, 누가 좋지 않은 사람이겠는가.

나도 모르게 마음 속으로 미운 녀석들을 골라보고 있었나보다. 아이구, 이런....
2006/12/05 20:49 2006/12/05 20:49

귀를 기울이면

Posted 2006/11/30 19:13, Filed under: 학교종이 땡땡땡
학기말이라 그런지 이런저런 일들이 많다. 오늘은 교과서 검사 (수행평가의 하나)를 하느라 늦게까지 교무실에 남아있는데 건너편 선생님이 남학생과 상담을 하고 계신다.

장난스럽게 생긴 1학년 녀석인데 근 1시간 가까이 선생님께 조잘조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남학생도 선생님과 저렇게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는 중이다. 더 놀라운 것은 선생님은 조용히 학생과 마주앉아서 가끔 추임새(!)를 넣어줄 뿐인데도 아주 사소한 일부터 장래에 대한 고민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들에게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면 그들의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오늘의 저 아름다운 풍경을 오래도록 기억해야겠다.



+ 근데 저 녀석의 이야기가 워낙 스펙타클하고 흥미진진해서 일이 진도가 안나간다. 헉;;
2006/11/30 19:13 2006/11/30 19:13

너에게

Posted 2006/10/02 13:23,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생각해보니 여태껏 제대로 된 편지 한 장 못썼네요. 자고로 편지는 연애편지가 제일인데... 보름달 휘영청 뜨는 추석이 코 앞인데 이러다 첫눈 오는 날까지 손편지 하나 못건네주는 것은 아닐지 걱정입니다.

꿈보다 행복한 시간이 꿈보다 빠르게 지나고 있다는 말, 실감하고 통감하고 절감하고 있어요. 어느새 10월이 되었고 우리 다시 만난지도 한 달이 넘어가네요. 9월은 아마도 스물 몇 해의 인생 중에서 가장 화려한 시간으로 남게 될 것 같습니다.

예전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 무엇이 남았고 무엇이 변했을까요. 손을 잡고, 어깨동무를 하고, 손을 허리에 두르고, 서로를 마주볼 때면 우린 아직 스무살 그 어디쯤에 머물고 있는 것만 같다가도, 문득 "생활"을 돌아다보게 되면 이젠 더 이상 어리광을 부릴 나이가 아니라는걸 새삼 확인하곤 합니다. 우리의 앞날을 넌지시 짚어보게 될 때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간절해지구요.

악몽을 꾼다는 당신의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 한 켠이 시려옵니다. 지난 기억을 더듬어보면 당신이 힘들 때 나는 언제나 몇 마디 말 뿐이었지요. 불확실한 미래를 두고 불안해하는 당신을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옆에서 지켜보며 응원하는 것 뿐인지라 안타깝고 아쉽습니다. 같이 고민하고 함께 공감하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겠죠. 당신은 또 "그게 제일 좋아"라고 하겠지만 결국 자신과의 힘겨운 싸움이란걸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 그저 눈이 시릴 수 밖에요.

사랑하는 당신..
우리 함께 살아갈 날이 훨씬 더 많이 남아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언젠가는 지난 편지보다 더 신나고 더 즐겁고 더 행복한 편지를 고운 편지지에 담아볼께요.

화창한 10월의 오후, 따뜻한 웃음 머금고 몇 줄 써봤습니다.
사랑해요..
2006/10/02 13:23 2006/10/02 13:23

오뉴월에 서리 내리다

Posted 2005/07/12 20:27,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어제 밤부터 오늘 새벽까지 내 친구의 여자친구와 채팅을 했다. 군대 간 내 친구가 무사히 전역할 때까지 나는 친구를 대신해서 그녀에게 맛난 것도 사주고 한눈팔지 않게 감시잘하겠노라고 친구에게 약속했었다.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따위의 유행가 가사는 말그대로 노래 가사일 뿐인데다 뭐 내 취향의 사람은 아니므로 나는 꽤 적절하게 행동해 왔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내 친구의 핵폭탄급 실수 때문에 굉장한 상처를 받았고, 그 때 녀석은 훈련소에 있었다. 밤 늦게 전화해서 펑펑 울어대는 그녀에게 나는 그 녀석을 대신해서 해줄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었다.

어쨌든 몇 번의 식사와 몇 번의 채팅 등등으로 그녀는 내게 꽤 고마워하고 있고, 나도 내 친구가 얼마나 그녀를 사랑하는지 시시때때로 강조하는 것 말고는 썩 예쁜 친구 하나 생겼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제의 대화는 무척 지난하고 고통스러웠다. 시작은 만사가 늘어져버린 나의 대책없는 술주정이었다. 그녀는 잘 참아주며 내가 보고 싶어하는 군대의 친구 대신 내 얘기를 들어주고 맞장구도 쳐주면서 가끔 농담을 해가며 기분을 풀어주려고도 했다. 거기까진 좋았다.

늘 그렇듯이 그녀와 나의 대화에서 내 친구의 이야기는 빠질 수가 없다. 그 녀석의 핵폭탄급 실수에 대한 이야기도. 나는 어제 내가 아직 잘 알지 못하던 그녀의 모습을 알게 되었고, 한참 설전을 벌이던 나는 급기야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전화통화가 아니었기에 망정이었다. 그토록 서럽게 울어본 적은 참 오랜만이었다. 그렇게 우는 방법을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내 몸은 너무도 처절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잔인해져야만 한다고 말했다. 내 친구가 상처를 받아서 그녀를 욕하며 미련없이 잊을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처음 이런 식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내가 끝내 울음마저 터트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잔인해지지 말고 강인해지라고 충고했다.

더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가면 오고갈수록 점점 그녀는 잔인해져갔다. 나의 위로와 나의 협박과 나의 회유와 나의 충고와 나의 배려와 나의 인내와 나의 강요와 나의 이해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 채 그녀 앞에서 무너져 가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에 내 기억 속 어딘가에 묻어두었던 얼굴이 오버랩되기 시작한 것은 그 즈음이다. 그녀가 뱉어내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서서히 나를 향한 예전의 그 말들이 되었다. 그 때의 그 말들이 그녀와 같은 생각에서 비롯된 것들이었음을 어렴풋하게나마 직시하는 찰나, 눈물이 쏟아졌다.

어떻게 대화를 마치고, 어떻게 컴퓨터를 끄고,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그녀는 내게 오래도록 묵혀두었던 것들, 다시는 꺼내고 싶지 않은 것들을 들춰내어 낱낱이 펼친 채 나에게 들이밀었고, 그 이면에 숨겨두었던, 결코 확인하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쏟아내었다.

여자들이란 다 그런거야 따위의 말을 안주삼아 연거푸 술잔을 들이켜던 나와 내 친구의 지난 일들이 참 부질없다고 느껴졌다. 어쩌면 나는 늘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는지도 모르겠다. 절대로 확인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타의에 의해 알게 되었을 때의 당혹감이란 실로 엄청났다.

나는 예전의 그 사람이 나에 관한 좋은 기억만을 간직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그가 나에게 죄책감과 약간의 미련, 얼마간의 동정 따위를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일순 감정이 북받쳤다.

나는 어제 밤과 오늘 새벽, 그렇게 타인의 연애사로 시작된 이야기 때문에 내 훌륭한 기억력을 다시금 확인해야만 했고, 오늘 하루 그것들을 진정시키고 다시금 조용히 감추느라 약간의 수고를 더해야만 했다.

그녀와 친구의 관계가 어떻게 진행될지, 어떤 식의 결말에 이를지 섣불리 생각하고 싶지 않다.

다만 내 친구가 나의 전철을 밟고, 오래전 언젠가 그 사람의 친구가 내게 해주었던 이야기들을 내가 나의 친구에게 전하는 일 만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기를 빈다.

그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기 때문에...
2005/07/12 20:27 2005/07/12 20:27

나도 사랑하고 싶다

Posted 2005/03/13 22:02,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이제 나도 사랑하고 싶다. 젊은 날의 치기 가득했던 첫사랑과 서로의 필요로 만났던 지난 사랑은 이제 조용히 덮어두고서, 참된 사랑을 하고 싶다.

그런데 어떻게 사랑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억지로 지워버린 기억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사랑하고 싶지만 다시 고통받고 싶지는 않으니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종일 핸드폰만 만지작 거린다. 눈을 뜨던 그 순간부터 잠자리에 들어야할 지금 이 순간까지 줄곧 핸드폰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몇 통의 부재중 전화와 몇 개의 문자 메세지가 표시되어 있지만, 내 마음은 표시되지 않는다. 슬프다.

오늘도 내가 연락해야할까? 반갑게 인사하는 그 목소리가 어쩌면 "예의상" 건네는 인사일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고 있다. 아직 연락을 못했다. 아니, 안했다.

나는 늘 오해했고, 오바했으며, 오기로 밀어붙이다가 결국은 쓴 맛만 보았다. 제 죽을 줄 모르고 불길로 뛰어드는 한 마리 부나방처럼 나는 그렇게 맹렬하게 덤벼들었던 것이다. 어렸기 때문이었을까. 몇 해가 지나면서 내가 얼마나 자랐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나는 결코 성급하면 안된다는 것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어렵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일은 언제나 힘들고 어려우며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 동안 나는 너무 쉽게 사랑했다. 아니 사랑한다고 말해왔다. 아꼈어야 했다.

결국...


그녀에게 잘 자라는 문자 하나 보냈다.




아... 소심의 극치여... OTL...
(사탕 따위는 생각해본 적도 없다. -_- )
2005/03/13 22:02 2005/03/13 22:02



나는 Sk텔레콤 가입자이다. 처음 휴대폰을 장만했을 때부터 줄곧 SK를 사용하고 있지만, 만족해서라기보다 바꾸기 귀찮다는 이유로 줄곧 쓰고 있다.

최근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핸드폰과 멀리 떨어져 지냈다. 전화올 곳도 없고, 문자를 주고받을 일도 그닥 많지 않은데다, 나만의 시간이 절실해지는 요즘이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전화기를 꺼두었다가 자기전에 잠깐 확인해보곤 한다. 이젠 친구들도 내 습성에 적응을 한 것인지 부재중전화는 커녕 문자 한 통 와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런 내가 요즘 휴대폰을 늘 켜놓게 되었다.
따뜻한 봄날이 다가오고 있다.


나도 이제 SK텔레콤을 쓸 때가 온 것이다.
2005/02/27 11:33 2005/02/27 11:33

우울한 하루

Posted 2005/02/20 19:37, Filed under: 맛있는 문학
찬 바람이 불어옵니다. 어느새 주위는 거무룩해졌습니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점점 빨라집니다. 옷깃을 야무지게 여물어봐도 스며드는 찬 기운을 떨쳐내진 못하겠습니다. 봄이 오기엔 아직 이르지만 아직도 매서운 겨울바람이 남아있다는 느낌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닙니다. 끔벅이는 가로등 불빛 아래, 웅크린 어깨 너머로 조금 엿보이는 그대 얼굴은 그저 차갑기만 합니다.

분주한 사람들의 틈바구니를 헤집고 식당으로 들어섭니다. 주인이 반갑게 맞아주네요. 애써 웃어줍니다. 점원이 안내해준 자리는 밝고 따뜻합니다. 메뉴판을 펼쳐드는 그대의 얼굴은 그저 무표정할 뿐입니다.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나는 떠들기 시작합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저 이 막막한 공기가 제 살을 파고드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떠들고 또 떠듭니다. 그대는 가끔 고개를 끄덕이거나 살짝 웃으며 맞장구를 칩니다. 나는 그대가 내 이야기에 귀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슬프지는 않습니다. 이제는 익숙해진 일입니다. 내가 이 무거운 공기를 견디지 못하는 것처럼 그대 역시 내 가벼운 말들을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함께 앉아있을 수가 없습니다.

음식은 맛이 좋습니다. 그대에게 자꾸 권합니다. 괜찮다는 그대에게 자꾸만 권하고 또 권합니다. 나는 음식을 씹는 그 잠깐 동안의 침묵도 견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대가 나를 떠벌이라고 생각할지라도 매 순간 무엇인가를 말해야만 합니다. 나는 그대와 함께 있는 곳에서의 침묵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대와의 침묵은 나를 깊은 수렁으로 잡아끄는 것 같습니다. 발목을 잡혀 헤어나오기 힘들어지기 전에 내가 먼저 도망칩니다. 그래서 이렇게 떠듭니다. 한 순간도 쉬지 못하고.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고, 음식점을 나옵니다. 우리는 익숙한 농담을 주고 받습니다. 늘 같은 말장난에 우리는 늘 같은 목소리와 늘 같은 표정으로 웃어줍니다. 웃어보입니다. 마치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농담을 오늘 처음 들었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웃어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이미 오래전에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내색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알지만 모두가 모르는 일입니다.

연극을 봅니다. 끝없이 불편한 연극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과거를 향해 뒤돌아가고 있었고, 그대는 미래를 향해 앞서가고 있었습니다. 연극이 끝날 무렵, 이미 우리는 서로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소리쳐 불러보고 싶지만 주위가 너무 조용합니다. 나는 침묵이 두렵습니다. 내가 침묵을 견뎌내는 일은 연극의 주인공이 회초리를 맞고, 뺨을 얻어맞고, 팔이 꺾이는 고통을 참는 일보다 더 힘이 듭니다. 주인공의 아픔은 연극이 끝나면 사라지겠지만, 침묵의 비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날카로워집니다. 날카로운 침묵의 날에 나는 그 동안 숱하게 상처입었습니다. 덧나고 곪은 상처에서 고름이 나오고 진물이 흐를 때에도 그대의 침묵은 그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언제부터인가 혼자서도 떠들기 시작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여전히 바람이 붑니다. 차가운 겨울 바람입니다. 그대의 옷깃을 여며주고, 내 목도리를 건네주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대가 거절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제 나는 그대의 거절을 감당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나는 묻지 않습니다. 나는 한 자락의 바람도 파고들지 못하도록 더욱 단단히 옷깃을 여밉니다. 그 틈을 비집고 새어들어온 바람은 유난히 차갑습니다.

우리는 즐겁게 만났고, 맛있는 식사를 했고, 유쾌한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습니다. 그대는 다음에 또 보자는 인사도 잊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대가 먼저 내게 연락하지는 않을 것임을. 나는 웃으며 헤어졌고, 즐겁게 돌아옵니다. 유쾌한 듯 노래도 흥얼거립니다. 가슴이 답답하지만 체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눈이 맵지만 바람이 너무 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그대를 만나면 즐겁고 유쾌합니다. 하지만 그대와 헤어지고나면 나는 기분이 언짢아지고 짜증이 솟아납니다. 불쾌해져버립니다. 다시는 그대를 만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어느새 나는 그대와 함께 영화를 보고, 식사를 하고, 산책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조울증을 반복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에게는 새로운 일이 있고, 나는 그것을 해야만 합니다. 미안하지만 이제 그대를 다시 만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없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가끔 그대를 먼저 만났더라면 어땠을지 상상해보기도 합니다. 부질없는 헛웃음만 터져나옵니다. 상상은 후회의 반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만 합니다. 집착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르겠네요. 모든 것을 처음으로 돌려놓고 싶은 것은 저만의 생각은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대와 그대의 친구도, 그대의 친구의 친구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대가 그대이기 이전부터, 그 한 처음부터 말입니다.

켜켜이 쌓인 가식을 털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저는 해낼 것입니다. 언젠가 우연히 그대를 마주치게 되는 날, 그대의 침묵에 당당한 나의 침묵으로 응답할 수 있겠지요.

그 동안 고생많았습니다. 덕분에 즐거운 일도 많았고, 고마웠던 일도 많았습니다. 이제 더 이상 저의 수다에 고통스러워 하지 않아도 되고, 재미없는 농담에 맞장구쳐주지 않아도 됩니다. 그대를 불편하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그 후로도 너무 오랫동안 그대는 그대와 상관없는 일들 때문에 괴로워했고, 내게 전혀 내색하지 않으려 애써 왔습니다. 나는 그대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나 역시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저의 아집을 버리겠습니다. 집착과 허울을 벗겠습니다.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없다해도 이제 더 이상 그대의 불편한 모습을 견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대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2005/02/20 19:37 2005/02/20 19:37

조제, 은수, 그리고 연인들...

Posted 2005/01/24 09:53, Filed under: 아름답게 놀기

<봄날은 간다>는 사랑영화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도 사랑영화다.

<봄날은 간다>는 사랑이 어떻게 변하느냐고 항변하지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는 사랑은 변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봄날은 간다>를 보면서 엉엉 우는 사람도 있었고, 하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를 보는 사람은 울지는 않지만 슬프고, 안타깝지만 괴롭지 않으며, 유쾌하지만 신나지는 않을 것이다.

조제(원래 이름은 쿠미코..)와 츠네오는 진심으로 사랑했고, 헤어짐으로 슬퍼하지만 다시 또 그렇게 잘 살아간다. 살아갈 것이다. 은수와 상우도 진심으로 사랑했을테지만 지나치게 빠져들었고, 헤어나오지 못한 채 집착에 빠져 허우적댄다.

털썩, '다이빙하듯' 의자에서 뛰어내리는 조제. 영화 초반, 그 모습을 처음 봤을 땐 상당히 뜨악한 장면이었다. 츠네오의 말처럼, '저러다 어디 한 군데 부러지는 것'은 아닐지 걱정될 정도였으니...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 털썩 뛰어내리고 생선구이를 가져가는 조제의 모습은 힘이 넘쳐 보였다. 몸은 비록 주저앉을지언정 마음은 주저앉지 않는 조제... 상우보다 굳세고, 은수보다 당당하다.

츠네오는 여자가 많다. "생각해서 소용없는 일은 생각하지 않는 스타일"인 그는 말그대로 '본능에 충실'하다. 하지만 그의 진심은 영화를 보는 이에게 전해져오고, 그의 변심을 욕할 수가 없게 된다.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게 될 뿐...

<봄날은 간다>는 나에게 답답하고 거부하고 싶은 영화였다. 상우는 왜 저렇게 집착하는 것인지, 은수는 도대체 무슨 꿍꿍이였을지 영화가 끝나도 나는 그 찝찝함을 쉬이 떨쳐내지 못했다.

하지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답답하지만 거부할 수 없었다. 쓴 맛을 알면서도 들이붓는 소주처럼 그렇게 수울술 들어왔다. 하지만 머리가 깨질 것 같은 숙취는 없었다. 토악질도 하지 않았다. 그저 '속이 쓰리네.. 물 좀 마셔야겠다...' 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사랑도 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언젠가는 남남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사랑하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상대방을 고문하지도, 스스로 자책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렇게 좋았던 날이 있었다는 것만으로 족하지 않느냐고 넌지시 물어본다. 그런게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이 아니냐고.

울고 싶은데 울 수가 없다. 화내고 싶은데 화가 나는 것은 아니다. 웃음이 터질 것 같은데 대놓고 웃지는 못하겠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그렇게 다가왔다. 월요일 아침부터 잔뜩 복잡미묘한 감정을 부추기면서...



+ 조제와 츠네오가 "세상에서 제일 야한 짓"을 벌이던 "물고기 호텔" 장면에서 "오아시스" 생각이 났다. "오아시스"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역시 비교해볼만한 것 같다.

+명대사의 향연이 펼쳐진 영화다. 종종 써먹을 곳이 많을 것 같다. 푸흐흐흐...
2005/01/24 09:53 2005/01/24 0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