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Results for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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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8/28 전화카드 한 장
  2. 2007/06/18 딸 같은 아들 (7)
  3. 2007/04/26 평등하게 바라보기 (6)
  4. 2007/03/20 사람과 사람 사이 (3)
  5. 2007/02/16 고기를 먹지 않는 여친 (8)
  6. 2007/01/23 아버지의 손 (8)
  7. 2006/12/13 혼란 (6)
  8. 2006/12/05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는 일
  9. 2006/11/17 수능 감독관의 하루 (2)
  10. 2006/11/01 욕심 (7)

전화카드 한 장

Posted 2007/08/28 09:53,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전화카드 한 장

언제라도 힘들고 지쳤을 땐 / 내게 전화를 하라고
내 손에 꼭 쥐어준 너의 / 전화카드 한 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는 / 눈시울이 붉어지고
고맙다는 말 그 말 한마디 / 다 못하고 돌아섰네

나는 그저 나의 아픔만을 /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런 입으로 나는 늘 / 동지라 말했는데
오늘 난 편지를 써야겠어 / 전화 카드도 사야겠어
그리고 네게 전화를 해야지 / 줄 것이 있노라고
- 노래 : 꽃다지



며칠 전 동생의 전화를 받았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산더미같았는데, 목소리 듣고 싶었던 날이 그 얼마나 많았는데, 짧은 안부인사 외에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복받치는걸 억지로 참으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마지막 인사를 했더니, "또 울어?"라던 녀석. 지도 울먹거렸으면서...

밖에 나와 담배 한 대 피워물고, 또 피워물고, 또 피워물었는데 문득 이 노래가 생각났다.
그리곤 이내, 나는 녀석에게 전화카드 한 장 보내줄 수 없고, 편지 한 장 쓰지 못함을 알고,
쓴 침을 억지로 삼켰다. 애꿎은 담배만 뻑뻑 피워대다가 눈알만 시뻘개졌다.
2007/08/28 09:53 2007/08/28 09:53

딸 같은 아들

Posted 2007/06/18 23:59,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나는 우리 아부지를 많이 닮았다. 닮고 싶지 않은 것도 많은데 남들은 천상 부자지간이랜다. 마음이 여리고 눈물이 많다. 그리고 소심하다. 오늘은 간만에 족발에 소주 한 잔 기울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수도원에 간 동생 이야기를 하며 온 식구가 눈물을 죽죽 짜냈다. 한참을 펑펑 쏟아내고는 밖으로 나와 담배를 한 대 피워물었다. 그래, 지금 우리집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나다. 나라도 기운내야하지 않겠나. 야밤에 담배 한 개비 훌쩍훌쩍 피워대고 있자니 눈물먹은 별도 별사탕같더라. 아부지의 등짝을 냅다 치면서 "에구, 울아부지 왜이렇게 약해요"했더니 또 울먹이시며 "지는?! 지도 강한 척 하면서..."라며 벌개진 두 눈으로 쏘아보셨다.

언제부터인가 울아빠, 울아부지, 우리 아버지의 어깨가 내려다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과 세상에서 제일 여린 사람의 괴리를 어느새 해소해버린 존재. 그 곁에서 나는 조금씩 자라고 있었나보다. 울아부지 소원대로 이제 딸자식 노릇 좀 해봐야겠다. 설령 내게 성정체성의 혼란이 올지언정... (아직도 울아부지는 "애교는 딸이 부려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신다...근데 왜 내게 그런 것을 바라시는고...)
2007/06/18 23:59 2007/06/18 23:59

평등하게 바라보기

Posted 2007/04/26 10:29, Filed under: 학교종이 땡땡땡
음식이라는 것은 만드는 사람의 실력은 차이가 있을지 모르나
맛을 보는데는 차이가 없다. 그렇게 평등한 것이 맛이야!
그러니 앞으로는 음식에 대해서 나는 물론이고 저 끝의 생각시까지
모두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하여 서로 자극을 주고 발전하도록 하라!
모두들 노력하여 실력을 쌓는 사람에게는
나이의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고 기회를 줄 것이다. 알았느냐?

- 정상궁 마마님, <대장금>

정상궁 마마님의 가르침이 새롭게 다가온 요즘이다. 학교성적이라는 것은 부모의 재력과 관심도에 따라 차이가 있을지 모르나 학생 개인의 인격적 성향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성적이 좋지 않은 아이는 공부 못하는 아이로 낙인찍히고 곧이어 질 나쁜 아이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이런 악순환의 고리는 쉽게 끊어질 수 없고 그닥 개선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최근에는 더욱 악화되고 있을 뿐...)

한 반에 약 35명씩 학 학년에 10개반, 대략 400여명 되는 아이들에게 평등하게 제시할 수 있는 잣대는 무엇인가. 차별이 아닌 차이를 인정하고 모든 아이들이 서로에게 자극받고 발전할 수 있는 그런 기준을 나는 찾아낼 수 있을까. 결국 "아름답게 살기"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들일까.

3월초부터 유난히 눈에 띄는 녀석이 있었다. 모든 선생님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그 녀석은 이제 교무실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다. 생각이 없는건지, 생각하기를 싫어하는지 모를 그 녀석을 보며 나는 처음부터 나도 모르는 낙인을 찍고 있었나보다. 매 수업 때마다 그 녀석을 보며 참 많이 참고 있다. 아마 나에게 듣는 잔소리와 비슷한 잔소리를 하루에도 수백번씩 듣고 있을게다. 그걸 생각하면 어떻게든 또 녀석을 달래서 책을 펴고 필기구를 손에 쥐게 만들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옆 반의 한 녀석도 유난히 튀는 녀석이 있는데 내가 몇 마디 답해주는걸 참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이 좀 꺼리는 표정을 짓더라도 부러 가끔은 그 녀석에게 질문을 해본다. 안드로메다 성인의 말도 그 녀석의 말보다 이해하기 쉬울 것 같긴 해도 씨익 한 번 웃어준다. "그래, 네 말도 맞긴 한데 그건 좀 아니다, 임마." 그래도 좋~단다. 녀석은 내 보충 수업 때도 실컷 노는 줄 알았는데 다음 번에 또 내 수업을 듣겠단다. 좋아해야할지, 걱정을 해야할지...

요즘 녀석들이 책을 펴고 꽤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나로선 굉장히 놀라운 일이다. 또 하나, 그 중 한 녀석의 글씨가 정말 멋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보다 더 잘쓰더라. "이 녀석이 보긴 이래도 글씨는 장난 아니게 잘써. 알아?"라고 반 아이들에게 일부러 큰 소리로 말해주었다. 아이들은 무덤덤했지만 녀석은 꽤 기분이 좋았나보더라.

모든 아이들에게 평등한 시선을 나누어줄 수 있는 것, 아니 나누어야 하는 것이 교사가 가져야할 책임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문득 내 눈빛 하나에 울고 웃는 녀석들을 보면 덜컥 겁이 날 때도 있지만 그 녀석들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서 작은 빛이 날 때, 내 가슴에도 살짝 따스한 기운이 스민다.

이제 좀 봄이 오려나 보다.
오늘도 그 녀석은 되게 졸게 생겼다.
날씨 참 좋다...

+ 여친이 대장금을 참 좋아한다. 대본을 구해서 읽을 정도인지라 나도 다시 읽어보고 있다. 감회가 새롭다.
2007/04/26 10:29 2007/04/26 10:29

사람과 사람 사이

Posted 2007/03/20 21:01,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새학기가 시작되었고 나는 이제 정식 교사로 교육청에 등록되었다. 달라진건 아무것도 없는 듯 하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여전히 내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도 변함이 없다. '정교사가 되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나이 한 살 더먹었으니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라며 일말의 기대를 버리지 않았었는데 상황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어른들이 말씀하시던 사회생활의 어려움이란 이런 것들 때문이었을까. 내가 워낙 소심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교사라는 직업은 나에게 참 어울리는 직업이자 즐거운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 나 홀로 학생들과 만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여러모로 피곤한 일들이 생기고 있다.

몇 안되는 사람들이 수없이 얽혀있는 이 공간에서 나는 어떻게 자리매김해야할까. 이것저것 생각하기도 싫고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기도 싫지만 나에 대한 소문을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듣게 되는 것도 굉장히 싫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건 이럴 때 쓰는 말인가보다.

나는 좀 더 야무져야할까? 모든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사람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이 곳에서 생활하다보니 나를 박쥐인간으로 보진 않을까 걱정될 때도 있다. 싫은 사람에게 화를 내고, 좋은 사람에게 웃음을 던지고 싶지만 나는 아직 모두에게 하하,호호 웃고만 지낸다.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고, 그것이 지난 일 년간의 짤막한 경험을 통해 얻어낸 생존전략이다.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은데 누구에게 말해야할지 모르겠다. 이 좁은 공간에서 내밀한 속내를 드러내보여도 좋을 사람이 누구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한 발짝 다가설 때마다 그들도 내게 다가와주면 좋으련만 어느샌가 저만치 떨어져있다. 가장 친한 척 하는 사람과는 그닥 친하고 싶지 않고 마음 속 이야기들을 털어내어도 좋을성 싶은 사람은 때때로 멀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친구와 애인, 가족이 없었다면...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나는 원래 복잡한 사람이 아닌줄 알았는데 잘못 알고 있었나보다.
2007/03/20 21:01 2007/03/20 21:01

고기를 먹지 않는 여친

Posted 2007/02/16 15:15,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채식, 그것은 세상을 바꾸는 힘 by 달군
+풀만 먹으며 살고 싶다 by dakdoo

내 사랑하는 여자친구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 못먹는 것이 아니라 안먹는 것이다. 작년 가을, 수 년만에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나는 내 여친이 몇 년째 고기를 먹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참으로 놀라웠던 그 날의 저녁식사 메뉴는 부대찌개였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먼저 제안한 메뉴였지만 그녀가 잘 먹지 않는 이유가 나를 만나서 긴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그녀를 통해서 우리 사회에서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새삼 알게 되었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은 대인관계에 있어서 큰 약점으로 손꼽힌다. 갈비없는 졸업식, 삼겹살 없는 회식, 순대 없는 떡볶이, 탕수육 없는 짜장면을 떠올리는 일은 내게 쉽지 않았다.

여친이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을, 그것도 수 년간 지속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왜 고기를 먹지 않느냐고 물어보았었다. 그녀의 대답은 단순명료했다. "동물이 불쌍하기 때문"이란다. 채식주의자라는 말을 거창하게 여기기 때문인지는 잘 알 수 없다. 어쩌면 채식주의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는 데 지쳤거나 사람들의 주목이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dakdoo님의 글을 보니 더더욱...) 하지만 그녀가 우리가 사는 이 땅의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그녀의 채식이 자연스럽게 수긍이 갔다.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그녀에게 고기를 먹지 않는 일은 동물들에 대한 단순한 동정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고기를 좋아하는 나는 아직까지 여자친구와 음식 문제로 고민해본 적은 없다. 언제나 우리를 괴롭히는 "오늘은 무얼 먹을까?"라는 고민은 "나는 고기가 좋은데 너는 안먹잖아"라는 이야기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 덕분에 고기가 들어가지 않아도 맛있는 음식들이 있다는 걸 새삼 하나씩 확인해보는 재미가 생겼다. 요기국수서울에서 두번째로 맛있는 단팥죽도 먹어봤고, 야채피자라는 게 있다는 사실도 알았으니까. 고기를 먹고 싶을 땐 나만 고기메뉴를 시키면 되고. (사실 대부분 이렇게 주문한다. 나는 돈까스, 그녀는 야채볶음밥, 이런 식;;;)

그녀를 만난 이후로, 나는 콜라를 거의 마시지 않는다. 언젠가 잡지의 기사를 보며 (아마 인도에서 콜라 시위가 났을 때 즈음일 것이다) 몸에도 좋지 않을 뿐더러 거대한 콜라 회사가 돌아가는 모습이 그닥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식의 대화를 나눴던 적이 있었다. 그 후로는 가급적 탄산음료를 멀리 하고 다른 음료를 주로 마시는데 (특히 바나나 우유! 바나나 우유는 빙그레 단지 우유가 최고다!) 그렇다고 전혀 마시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가끔 땡기면 잘 사다 마신다;;

둘이서 함께 자전거를 타고 단지우유를 마시며 여유롭게 데이트를 즐기다보면 조용하지만 넉넉한 행복이 밀려온다. 두 손을 마주잡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녀가 고기를 먹지 않는 일이 새삼 무게감있게 느껴지곤 한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나즈막한 고민들이기 때문이리라.

나는 내 여자친구의 채식을 지지한다. 설혹 훗날 우리의 아들딸들이 엄마의 고기 요리를 두려워할지언정 나는 그녀가 지금의 삶의 방식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온 시내를 자전거로 누빌 수 있고, 저녁식사 후 산책길에 어깨동무를 하고 가다 놀이터 한 켠에서 작은 동물들을 만날 수 있는 삶,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부자가 되기보다 모두 함께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그런 삶의 시작이 지금 그녀의 채식주의에서 조금씩 싹트고 있다고 믿는다.
2007/02/16 15:15 2007/02/16 15:15

아버지의 손

Posted 2007/01/23 22:23,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오늘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오신 아버지는 "너한테 할 말이 많다. 너도 이제 알건 알아야지..."라며 말문을 열었다. 거나하게 취하신 티가 역력했지만 아무리 많이 취하셔도 당신이 하신 말들을 또렷하게 기억하시는 분이란걸 알기에 나란히 쇼파에 앉아 귀를 기울였다. (우리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는 여기를 클릭해서 지난 글들을 한 번 보시라.)

친분이 있는 어른들과 내기당구를 해서 이겼다는 이야기를 약간의 흥분을 보태어 자랑하시던 아버지는 당신의 인생을 촘촘히 풀어놓으셨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숱한 사연들과 그를 둘러싼 다른 가족들과의 얽히고 설킨 이야기들, 아버지와 어머니의 신혼 시절, 외가 식구들과 아버지의 관계들, 나에 대한 출생의 비밀(!)까지..

대부분 이미 알고 있던 일들이지만 오늘 새롭게 알게 된 것들도 꽤 있었는데 들으면서 내내 '이건 진짜 영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는 어느새 가슴 졸이는 영화의 주연이 되어 내 옆에 앉아 계셨다.

50년대 생이신 아버지는 내가 알고 있는 우리 나라의 모든 현대사의 질곡들을 직접 겪으며 살아오신 분이다. 그 분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는데 어찌나 우여곡절이 많은지 웃으면서 울다가 가슴이 먹먹해져왔다.

요즘 우리집 상황이 이래저래 안좋다. 동생은 재수를 했지만 올해에도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게 되었고 남은 대학들의 합격자 발표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어머니는 원래 몸이 약하셨는데 폐경기를 겪고 계신데다 신장은 수술을 했고 심장도 많이 안좋으셔서 신경쓸 일이 생기면 온 식구들이 긴장해야 한다. 아버지는 다니시던 직장을 그만두시고 계획중인 사업 준비를 위해 몇 년째 쇳덩이들과 씨름하고 계신데 영문과 출신인 아버지가 용접을 해야하는 것부터 힘이 드신다. 게다가 몇 년 전에는 녹내장 판정을 받으셔서 내색은 않으셔도 실명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계신다.

결정적으로 내가 군대에 있는 동안 조금 무리를 해서 지금 살고 있는 건물을 지었는데 이게 팔리지 않아서 은행빚이 점점 무섭게 다가온다. 냉정하게 따지고보면 지금 우리집에서 고정적인 수입을 내는 사람은 나 하나. 그나마 건물에서 나오는 월세를 생활비로 쓰고 있지만 은행빚 갚기도 벅찬 상황이다. 어서 이 건물을 팔아야 하는데, 아버지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그놈의 노무현 때문에' 팔지도 못하고 이래저래 복잡해졌단다.

강남에 건물 한 채 갖고 있으면 부자인데 뭘 그러느냐고 하는 사람들도 많단다. 나도 제대하고 이 집을 처음 봤을 땐 이제 우리집도 꽤 먹고 살만해 졌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나중에 이야기를 듣고, 요즘 돌아가는 상황으로 봐선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조금 더 복잡하게 살고 있는 듯 싶다.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는 그 사연많은 인생을 용케도 잘 살아내신 것 같다. 욕심부리지도 않으셨고 남에게 해코지한 적도 없고 도박은 커녕 투기와도 거리가 멀다. 우리 아버지는 늘 식구들을 먹여살려야한다는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웠고 우리 어머니는 값비싼 외식보다 근사한 음식을 직접 만들어주셨다. 그렇게 몇 십년을 살아오시다가 자식들 다 크면 당신들끼리 자식 눈치 안보고 살 방도는 마련해야하지 않겠냐며 큰 맘 먹고 준비하신 게 이 집이었다.

어제 아침 두 분이 크게 다투신 모양이다. 법 없이도 사실 분들이라는 그 흔한 수식어조차 화려할 지경인 두 분이 부부싸움을 하는건 거의 대부분 돈 문제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돈 버는 일에 큰 관심이 없는 이유 중의 하나는 어려서부터 본 두 분의 부부싸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늘 즐겁고 행복한 우리 집안의 분위기가 싸늘해지는건 거의 대부분 돈 때문이었으니까 말이다. 다들 열심히 사는 것 같고, 행복하게 잘 지내는 것 같은데 돈 이야기만 나오면 늘 그렇게 마음이 아파왔으니까. 그래서 돈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걸 우리 가족들이 몸소 겪으며 서로를 지탱해내며 살아왔으니까. (오히려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생각하는게 일반적(?)이겠지만 아버지는 나를 그렇게 가르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때론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때론 격앙된 고함을 지르며 한참을 이야기하셨다. 어느 대목에선가 나는 문득 아버지의 손을 잡고 싶었다. 아버지의 손은 어느새 주름이 많이 져있었고, 손끝은 군데군데 기름때가 묻은 채 갈라져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손은 여전히 따뜻했고 묵직했다.

"이제 자라. 시간이 많이 늦었다."라며 말을 마치시곤 곧 잠이 드신 아버지. 나는 꽤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동틀 무렵 겨우 잠이 들었다. 조만간 어머니, 아버지께 나도 함께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책을 세워보자고 말씀드려야겠다. 동생과 내가 쓰는 생활비나 용돈만이라도 내 월급으로 해결하면 일단은 조금 도움이 될 터이다. 동생의 등록금이 문제인데 녀석도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고 있으니 거기에 내가 학자금 대출 같은 것들을 알아보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더 큰 문제들은 부모님과 상의해보고 내 이름으로 대출을 좀 받아도 되고... 그나저나 운전면허는 또 한 번 미루게 될 것 같다. 대학생 때는 놀고 먹느라 못땄는데. 후후. 사실 뭐 면허증이야 마음먹으면 금방 따니까 차가 필요할 때가 오면 그 전에 따두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부부 중 한 사람만 면허가 있어도 좋고. ^^;

다행이다. 이제야 비로소 나는 부모님께 "어른이 된 자식"으로서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고마운 일이다. 아버지의 긴 이야기와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 가족은 참 멋지다는 생각부터 든다.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다. 게다가 나는 또 한 명의 사람에게 분에 넘칠만큼 사랑을 받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나와 함께 웃고 울어줄 숱한 친구들도 있고.

훗날 내 아들(혹은 딸)도 내 손을 잡고서
묵직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07/01/23 22:23 2007/01/23 22:23

혼란

Posted 2006/12/13 23:40,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고흐, <울고 있는 노인>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것이 없는 요즘, 내 머릿 속은 어지럽기만 하다. 다양한 경우의 수 속에 틀어박혀 온종일 씨름하고 있지만 그럴수록 머리만 더 아프다. 정식 교사가 되는가, 계약을 연장할 것인가하는 문제는 내가 더 이상 손댈 수 있는 부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는 원인이 되고 있다.

정식 교사가 되도 문제, 안되도 문제다. 이 학교에 남게 된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남지 않게 된다면 무엇을 하게 되나. 다른 학교를 알아본다? 차라리 임용시험에 올인? 내년은? 내후년은?

하염없이 피곤하고 쓸데없이 신경만 쓰고 있다. 운동을 좀 하면 나아지려나. 오늘은 이래저래 날카로운 상태다. 예민하고 또 예민해서 작은 소리 한 마디도 귀에 거슬리는...

따지고보면 오히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술술 풀려온 것을 감사해야하겠지. 내가 기울인 노력에 비해 얻은 것이 더 많다는 점을 안다. 이제 내 스스로의 능력치를 바로보게 되었고 자신감을 잃어버리게 된 것 같다.

오늘은 쓸데없이 헴만 많다. 일찍 자야겠다.
2006/12/13 23:40 2006/12/13 23:40

자공이 물었다. "마을 사람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공자는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그렇다면) 마을 사람 모두가 미워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라고 묻자
"(그 역시)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마을의 좋은 사람이 좋아하고 마을의 좋지 않은 사람들이 미워하는 사람만 같지 못하다."고 대답하였다.

(子貢曰:"鄕人皆好之,何如?"子曰:"未可也。"  "鄕人皆惡之,何如?"子曰:"未可也。不如鄕人之善者好之,其不善者惡之." - <論語>)

교사도 사람인지라 언제나 즐거운 기분으로 수업을 할 수는 없다. 몸이 피곤하거나 다른 일로 바짝 신경을 써야하는 날이면 아이들의 작은 소리에도 참 예민해진다. 그렇다고해서 학생들 앞에서 내 기분을 그대로 드러낸다는건 교사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무덤덤하게, 부처님 가운데 토막처럼 희노애락에 흔들림없는 모습이 필요하다는건 알겠는데 참 힘들 때가 많다.

요즘 고등학생들은 자유분방하다. 어떤 일이든 자신의 기준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자신들의 논리로 이해하지 못하면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학생이니까" 라는 말은 그네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너는 이러저러하니 저러이러하게 해야한다"라고 말해주어야 납득을 한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보다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인 것은 사실이다. 학생과 교사 사이에는 지금보다 더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필요하지만 올해 처음 학생들을 만나본 나로서는 매 수업 시간, 녀석들과의 의사소통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나는 귀가 얇아서 이런 저런 말들에 쉽게 휘둘리는데 청각은 또 예민하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학생들끼리 주고받는 숱한 이야기들이 내 귀에 쏙쏙 들어올 때가 많다. 대부분 저희들끼리 주고받는 농담이지만 때로는 나에 대한 뼈아픈 농담도 섞여있다.

오늘 문득 공자님의 저 말씀이 생각났다. 학기 초, 처음 만나보는 여고생들의 환대(?!) 속에서 갈피를 못잡던 나... 어쩌면 나는 모든 학생들로부터 사랑받기를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본다. 선생님이기 때문에 해야하는 많은 불편한 일들을 나는 일부러 피해온 것이 아닐까.

스스로 위로하다가도 또 한 번 부족한 나를 자책해본다.
이제 겨우 18살, 스무살도 채 되지 않은 그들 중에
누가 좋은 사람이고, 누가 좋지 않은 사람이겠는가.

나도 모르게 마음 속으로 미운 녀석들을 골라보고 있었나보다. 아이구, 이런....
2006/12/05 20:49 2006/12/05 20:49

수능 감독관의 하루

Posted 2006/11/17 22:38,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카풀하고 가던 선생님과 같이 가지 않는 관계로 해가 뜨기 전에 집을 나섰다. 교문 입구에선 벌써 응원이 한창이더라. 감독관 출근부에 도장찍고 대기실로 갔다. 컵라면과 약간의 간식, 녹차와 커피가 준비되어 있었다. 1교시 도중에 SDF1를 느낄 것 같아서 아침을 먹지 않았었는데 1교시는 감독이 없길래 냉큼 라면 한 사발을 챙겨 먹었다.

전날 2시간 정도 감독관 연수를 받았고 두터운 팜플렛2도 받았지만 긴장되는건 마찬가지더라. 시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번뜩 내 동생 생각이 났다. 부디 무사히 치를 수 있기를...

1교시가 끝나고 드디어 내가 들어갈 차례. 나는 1교시는 휴식, 2교시는 제1감독관, 3교시는 제2감독관, 4교시는 제1감독관으로 배정받았다. (각 고사장별 감독관은 매 교시 시작 전에 공고된다.) 2교시는 제1감독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같이 들어간 선생님께서 많은 일들을 해결해주셨다.

예비령이 울리면 답안지와 문제지 봉투를 뜯어서 매수를 확인한다. 결시자를 파악해서 현황표를 작성하고 복도감독관에게 전달한다. 답안지를 나누어주고 남은 답안지 매수를 확인한다. 문제지를 나눠주고 남은 문제지 매수를 확인한다. 학생들이 문제를 푸는 동안 응시원서철을 들고 수험표와 대조해가면서 본인 확인을 한다. 머리 긴 학생, 안경 쓴 학생, 고개 숙인 학생들의 얼굴을 일일이 비교해봐야하는데 열중하고 있는 학생이 최대한 신경쓰이지 않도록 해야한다. 답안지에 수험번호와 이름, 응시유형 등을 정확히 표기했는지 확인 후 도장을 찍는다. 그리고 끝나는 종이 울릴 때까지 부정 행위를 하는지 감독한다. 너무 돌아다니거나 크게 기침을 하는 등 수험생들의 주의를 흐트러뜨리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학생들에게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다리가 뻣뻣해지고 허리가 땡길 무렵 끝날 때가 다 되어간다. 종료 10분 전임을 알려주고 여분의 답안지와 수정테이프를 확인해둔다. 학생이 요청하면 바로 달려가서 해결해준다. 끝종이 울리면 답안지를 걷고 문제지를 걷고 매수를 확인한다. 답안지 마킹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이상이 없으면 학생들을 퇴실시킨다. 4교시의 경우는 3명의 감독관이 들어가서 30분마다 한 번씩 문제지를 걷어야했다. 2분안에 다음 시험 준비를 해야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더 정신없더라.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큰 움직임 없이 오랫동안 서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고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잔뜩 긴장하고 있던 학생들의 표정과 딱딱했던 시험장의 공기였다. 내가 어찌 수능을 치뤘을까 싶기도 했고, 안간힘을 쓰는 학생들이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다. "대학수학능력"이 이 시험으로 얼마나 "측정"될 수 있길래... 서있기가 힘들어서 "어서 끝났으면..."이라고 생각하다가도 동생 생각에, 눈 앞에서 힘들어하는 학생들 생각에 마음을 고쳐먹기도 했다.

어쨌든 끝났다. 적어도 다음달 15일까지는 다들 마음 편히 지내리라. 고3 담임 샘들도, 학부모들도, 훌쩍이며 교문을 나서던 그 아이도 성적표를 받아들기 전까지는 그래도 여유있게 지낼 것이다. 숨막히던 고사장에서,
우리의 아이들이 언제까지 이 딱딱한 공기를 견뎌내야할 것인지 조금 착잡해졌다.

일당(?)으로 10만원을 받았다. 집에 와서 동생에게 봉투째 건네주었다. 지난 12년 아니 13년간(어쩌면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의 노력을 단 몇 시간의 시험으로 평가받았으면서도 녀석은 빙긋 웃었다.

길었던 하루는 그렇게 끝났다.

  1. Suddenly DDong Feel의 약자. 똥마렵다는 소리다. 수업중 "선생님! SDF요!"라고 외치던 녀석이 있었음; [Back]
  2. 일종의 감독관 행동 지침서 [Back]
2006/11/17 22:38 2006/11/17 22:38

욕심

Posted 2006/11/01 17:24,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어제는 졸업 후 처음으로 대학 동기들을 만났다. 결혼하는 여자 동기가 있어서 겸사겸사 만나게 되었는데 간만에 보니 참 반갑더라. 거의 2년만에 처음 얼굴을 본 녀석도 있었던터라 시간 참 빠르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취업난이 심각하다고 온 나라가 난리라는데 다들 취직해서 잘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다 연봉 이야기가 나왔다. 5천을 넘나드는 은행 다니는 녀석이 1등, 4천을 걸친 카드회사 직원 녀석이 2등, 가스공사 다니는 녀석이 3등...  여자동기들이 다니는 회사는 사천만 국민이 다 아는 곳인데도 "쟤네들에 비하면 우리는 돈 내고 다니는 기분이다야.."란다.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에이, 내가 있잖아. 나, 선생이야."

그 중 한 녀석이 하소연을 했다. 회사 사람들과 부대끼고, 업무가 적성에도 맞지 않는 것 같고, 야근도 잦아서 힘들다고 투덜대면 다들 "대신 돈 많이 주잖아."라고 말하는데 그 말이 제일 듣기 싫은 말이라더라. 글쎄.. 워낙 자존심이 강한 녀석이긴 하지만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조금 안쓰럽긴 하더라.

그네들의 절반 수준인 연봉(사실 연봉으로 따지면 얼마나 될런지 개념도 안잡히지만;;)을 받지만 나는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나의 문학 수업과 우리 학교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노라면 언제나 흥분상태가 되어버린다. 무개념의 실체를 확인하는 바람에 열받은 이야기, 순진한 아이들, 나 혼자 즐거웠던 수업, 정문지도, 야자감독까지... 시종일관 즐거웠고 녀석들도 흥미롭게 들어주었다.

내 한 달치 월급만큼의 적금을 붓는 녀석 앞에서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은, 오히려 연봉 이야기가 나온 이후로 오고간 숱한 이야기들이 썩 내키지 않았던 것은 지금 내가 충분히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제 겨우 30년도 채 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앞으로 더 많은 시련과 더 큰 고통들이 다가오리라. 내 삶을 내가 살아가지 못하고, 하루하루 살아남아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그 때에도 나는 오늘의 생각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을까. 조심스럽고 불안하지만 조용히 다짐해본다. 내가 정작 욕심내야할 것은 즐거움과 행복임을 잊지 않으리라고.
2006/11/01 17:24 2006/11/01 1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