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Results for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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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6/29 가는 비 온다 (4)
  2. 2007/05/09 이것은 시가 아니다 (3)
  3. 2006/09/26 지루한 시 수업 시간 (4)
  4. 2006/03/20 아이들이 웃어제낀 이유 (4)
  5. 2006/02/25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2)
  6. 2005/03/14 자나깨나 생각하는 연애
  7. 2005/01/08 씨앗을 묻으며
  8. 2004/12/01 꽃으로 남은 시인. (1)
  9. 2004/11/26 새로운 시 쓰기법. 팬포엠(FanPoem)! (4)
  10. 2004/10/30 비 오던 날 (2)

가는 비 온다

Posted 2007/06/29 14:09, Filed under: 학교종이 땡땡땡
빗방울 하나가   / 강은교

무엇인가 창문을 두드린다
놀라서 소리나는 쪽을 바라본다
빗방울 하나가 서 있다가 쪼르르 떨어져 내린다

우리는 언제나 두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이 창이든, 어둠이든
또는 별이든
오늘은 비가 시원하게 쏟아졌다. 교무실에 앉아 나뭇잎에 후둑거리는 빗소리를 듣다가 오늘 같은 날, 녀석들과 함께 시 한 편, 같이 읽으면 좋겠다 싶어서 부랴부랴 종이에 옮겨적었다. 이 녀석들, 맨날 밑줄치고 동그라미치고, 소재 찾고 주제 찾느라 시 한 편 제대로 읽어본 적 있었을까. 내 탓도 있을게다. 기말고사 진도 빠듯하다는 핑계로 "자, 여기 밑줄쳐봐. 이런걸 뭐라고 하지? 그래, 반어!"라며 떠들어댔으니...

인사를 하고 아무말없이 칠판에 시를 적기 시작했다. 등 뒤로 들려오는 한 마디...
"선생님, 그거 어디다 적어요?"
작품개요 정리해줄 때도 "어디다 적어요?"라며 묻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다.

"이건 적지말고 그냥 한 번 봐."
"왜요?"
"비오잖아? 크아~"

애들이 난리가 났다. 꽃미남 문학 소년이라서 비 오는 날이면 감수성이 예민해진다고 농을 던졌더니 토하는 시늉도 하더라. 느끼하다며 비명을 질러댔다. 그 난리 중에 "에이, 그럼 선생님이 직접 써야죠~"라는 녀석에게 윙크를 던지며, "기다려봐. 때가 되면 다 보여줄게. 아직은 쪽팔린다."라고 했더니 또 토하는 시늉을 한다.

지들끼리 떠드느라 내 낭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는데 슬쩍 베껴적는 녀석도 있었다. 그래, 단 한 명이라도 문학을 즐길 수 있게 된다면 그 얼마나 가슴 따뜻한 일인가. 삭막한 세상을 촉촉히 적시는건 비 뿐만이 아닐진대...

나는 아직 두드리고 싶은게 많아서
행복하다.
그것이 창이든, 어둠이든
또는 별이든.
2007/06/29 14:09 2007/06/29 14:09

이것은 시가 아니다

Posted 2007/05/09 21:29, Filed under: 학교종이 땡땡땡
며칠 전 여자친구가 읽고 있던 시집의 제목은 [이것은 시가 아니다]였다. 제목을 본 순간, 마그리트가 그린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그림이 생각났다. 3학년 국어생활 교과서에서 언어의 자의성을 언급하면서 마그리트의 작품을 설명했던 내용이 머릿속에서 겹쳐졌다.

몇 작품을 훑어보니 꽤 재미있을 듯하여 여친이 다 읽으면 빌려보기로 했다. 이승훈이라는 이름을 얼핏 본 것 같기도 해서 찾아보니 '갈매기 나라'라는 시를 문제집에서 슬쩍 본 것 같다. (이젠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작품이나 시인은 문제집이 먼저 생각난다;;) 답지 중의 하나로 제시된 작품이었는데 내가 이해하기도, 학생들에게 설명하기도 난해한 작품이어서 대~충 넘어갔던 것 같다;

내친 김에 인터넷을 좀 둘러보면서 읽을거리 몇 가지를 찾았다. 한겨레 신문의 기사는 이 시집과 작가에 대해 대략적인 이해의 방향을 잡아줄 수 있을 것이다. 한양대 학보의 인터뷰는 작가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학생들에게 언어의 자의성을 설명해야할 때, 이 시집과 마그리트의 그림을 활용해봐야겠다. 참, 정희승의 '이것은 시가 아니다'도 참고하면 좋을 듯.

오늘의 교훈 : 여친을 잘 만나면 공부도 하게 된다!
2007/05/09 21:29 2007/05/09 21:29

지루한 시 수업 시간

Posted 2006/09/26 13:30, Filed under: 맛있는 문학
이번 학기 내가 맡은 보충 수업 중의 하나는 "시가 깊이 읽기"이다. 나는 시가 재미있고 시 읽는 시간이 즐겁지만 아이들에겐 고통스러운 시간인가보다. 더군다나 "시대와 역사"라는 주제로 쓴 시들을 모아서 읽고 있다보니 한 20분쯤 설명하다보면 멍~해지는 녀석들이 많아진다.

그래서 수업 중간쯤 재미있을법한 것들을 몇 가지 준비해간다.

지난 주에는 [매미 그리기]를 했다. 수업용 프린트물을 뒤집으라고 한 뒤 "매미를 그려봐라!"라고 했다. 왜 시 수업 시간에 매미를 그리라고 하는지 생각을 좀 하면서 그리라고 힌트 아닌 힌트를 주었지만 다들 난리가 났다. 파리, 모기, 잠자리 등등등 온갖 형체의 곤충을 그려놓고 매미란다.

원래 정답은 없는 문제다. 시인이셨던 교수님이 낸 시험문제 중의 하나였는데 그 수업을 직접 듣진 않았지만 시험지를 받아 든 학생들이 퍽 당황했다고 들었다. 어쨌든 정답은 없지만 A+를 받은 답안이 있었단다.

그 학생은 큰 나무를 하나 그리고 옆에 "맴~맴~"이라고 써놓았다더라.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얼~ 머리 좀 썼는데?" "오, 똑똑하다" "신기하네" 등등 별 얘기가 다 들려왔고, 어쨌든 잠에서 좀 깨어났다. 그 교수님은 다른 시험에서 "우리 학교 분수대의 동그란 의자 개수는?"이란 문제도 냈었다고 말해주었더니 꽤 재미있어 하더라.

엊그제는 귀여니의 시를 잠깐 얘기했다. 칠판에 [명심해./하루만에 당신에게 반했다는 그 사람은/다음날 또 다른 사랑에 빠질수 있다는 걸]이란 귀여니의 시를 적고 제목이 뭐겠냐고 물었다. 맞춘 아이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명심해]가 제목이라고 했더니 피식 웃었다. 귀여니가 썼다고 하니 그제서야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아이도 있었고...

어쨌든 저 시가 출판되었다는 기사 밑에 달린 답글 몇 개를 소개했다.
하이 / 헬로우 / 안녕 (제목: 제니퍼)
호랑이 / 기운이 / 솟아나 (제목: 콘푸로스트)
왼/손은/거들/뿐 (제목: 강백호)
아이들의 반응이 가장 격렬했던 답글은 "1/3/12/26/35/41/보너스 2 (제목: 로또 160회)"였다.

그 옆에 또 다른 시 한 편을 적었다.


늦 잠


꿈이 끝나면
저절로 잠이 깰테니
제발 좀
깨우지 마세요


김영수라는 고등학생이 쓴 시이다. 아이들에게 제목을 적지 않은 채 "이 시는 제목이 뭘까?"라고 물었더니 아직 답글의 웃음이 묻어나는 듯 킥킥대며 "꿈이요!", "잠이요!" 등등을 외쳐댔다.

[명심해]와 [늦잠]의 차이에 대해 물어보았다. 왜 사람들은 [명심해]는 시라고 생각하지 않고 웃긴 답글을 다는데 [늦잠]은 좋은 시라고 할까. 김영수는 여러분과 같은 고등학생이고 이 시는 그 학생의 시집에 실려있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영수의 여친은 영희일 거라고 말했다가 재미없다고 항의를 받기도 했고;;;)

나는 <꿈>이라는 글자에 동그라미를 쳤다. 이 꿈은 우리가 잠잘 때 꾸는 그 꿈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미래, 우리가 정말 원하고 바라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꽤 진지한 눈빛으로 칠판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끄덕이는 학생도 있었다. 내가 수업을 하면서 가장 즐겁고 가슴 벅차는 순간은 바로 이런 때이다.

매 수업 시간이 그 날 같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으랴. 수업 준비가 부족해서 그야말로 "말발로 떼우는" 적도 있었고 아이들의 질문에 명쾌한 해설을 해주지 못한 적도 있다. 나름대로 재미있게 준비했다고 스스로 뿌듯해하다가 황망한 아이들의 눈빛을 보며 실망한 적도 있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지루하고 재미없는 시라도 즐기면서 볼 수 있는 수업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되리라 믿으련다.

다음에는 또 무슨 이야기를 해볼까. 이거 벌써 밑천이 드러나는 것 같아 걱정이다.
2006/09/26 13:30 2006/09/26 13:30

아이들이 웃어제낀 이유

Posted 2006/03/20 21:04, Filed under: 학교종이 땡땡땡
나는 이번 학기에 보충수업과목을 3개나 개설하게 되었다. (그 복잡한 속사정이야 눈물없이 볼 수 없으니 일단 생략.) 그 중 하나가 "현대문학"이다. 그나마 수업연구의 부담을 덜어보고자 시중에 나온 문제집을 하나 선택해서 수업을 하고 있는데 "현.대.문.학."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중압감은 역시나 만만치 않다.

주로 야자시간이나 주말에 수업 준비를 하는데 지난 시간에는 조금 특별한(?) 수업을 했다. 첫 시간에는 현대 문학에 대한 간략한 안내 정도로 마쳤으니 제대로 된 첫 수업인지라 괜히 긴장했다. 이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자신이 듣고 싶은 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하여 수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현대문학을 선택한 아이들 중에는 유난히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많다. 이것은 곧 내 수업이 부실할 경우, 바로 티가 나게 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첫 단원인 [현대시]를 어떻게 가르치면 좋을까 궁리하다 예전에 써둔 내 시를 써먹어보기로 했다. 눈 딱 감고 칠판에 내가 쓴 시를 주욱 죽 써내려갔다. 참 민망했지만 일단 아이들에겐 지은이가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내 시의 한 구절, 한 구절을 예로 들어가며 시의 운율, 이미지, 상징 등을 설명하고 시 감상법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게, 그리고 진지한 눈빛으로 경청하고 있었다. 내가 내 시를 설명하면서 그렇게 "억지로 짜맞추어가며" 설명하노라니 얼굴이 홍당무가 될 지경이었지만 정색을 하며 수업을 진행했다.

"자, 이제 이 시의 지은이를 알려주겠습니다."

칠판에 내 이름 석자를 적어 놓는 순간, 약 3초간의 정적이 흐른 뒤, 아이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쓴거에요?" "진짜 선생님이 썼어요?"라는 질문에 수.줍.게. "응, 내가 대학 다닐 때 쓴거야."라고 대답하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호탕하게, 기세좋게, 마구 비웃어가며...

그 중 한 여학생이 외친다. "선생님, 너무 불쌍해 보여요.." OTL..

어쨌든 그 수업 이후로 정규 문학 시간에도 종종 아이들은 그 시를 언급한다. 작가와 시적 화자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그 시를 들먹이며 "그 시에서 선생님이 말해준거, 그거죠?"라고 하는 녀석도 있다. 굉장히 민망하지만 어쨌든 아이들은 시를 쬐끔 재밌어 하게 된 것 같다.


+ 문제의 그 시를 링크해 둔다. 이 시는 대학교에서 문학반 활동을 할 때, 선배 누나가 쓴 시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은 시다. 그 누나에게는 물론, 학생들에게도 이건 말하지 않았다. "선생님, 표절한거에요?!"라고 할까봐 무서워서; 어쨌든 그 시의 제목은 "비 오던 날"이다.

+ 기왕 이렇게 된 거, 소설 파트 진도를 나갈 땐 내가 쓴 소설을 한 번 써먹어볼까 생각중이다. 나도 은근히 즐기고 있는가보다. 허허허허..
2006/03/20 21:04 2006/03/20 21:04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Posted 2006/02/25 01:28, Filed under: 맛있는 문학
4. 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우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 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우커를 하러 갔고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 김광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지난 임용시험의 전공과목에서 가장 마지막 문제는 이 시를 해석하는 문제였다. A4 반쪽 정도의 빈 공간에 나는 무엇을 적었던가. 내가 아는 선배형은 이 시 때문에 국문과를 택했다고 했었다. 그 형은 교양수업의 자기소개 시간에 이 시를 읊었다고 들었다.

그 형은 이 시를 읽을 때, 화자와 사회의 관계, 문학과 역사의 관련성, 화자의 어투, 각종 수사법 등을 고려하면서 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형은 이 긴 시를 외우고 있었고, 즐겨 암송하였으며 주위 사람들에게도 곧잘 들려주었다.

시를 즐기는 것과 시를 가르치는 것은 분명 다르지만 시를 가르치는 목적 중의 하나가 "시를 즐길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임은 자명하다. 지금 내 어깨가 뻐근해져 오는 건 이 시를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며 읽기"라는 학습목표 아래 어떤 이론을 가르쳐야할지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 것들은 자습서만 봐도 훌륭히 정리되어있다.

나는 아직 이 시를 읽고 난 후, 내게 전해져 오는 "그 무엇"을 어떻게 온전히 표현해야하는지 자신이 없다. "중년 남성들의 추억"이란 식으로 정리할지도 모를 학생들에게 '결론 없는 모임'의 끝과 깊은 '늪'의 시작을 어떻게 연결시켜주어야할지도 막막하다. 내가 느꼈으니 너희도 느껴봐라는 식은 교육이 아니며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모두가 뜬구름만 잡게 될 뿐이다.

요즘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아이들과 얼마나 폭넓은 문학경험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점이다. 그 목적과 수단을 충분히 곱씹어 보기엔 새학기가 너무 빨리 다가왔다.

오늘은 시 수업을 할 때, 기타반주를 곁들여볼까 하는 상상도 해봤다.
시의 아름다운 울림이 기타와 공명하여 아이들의 마음을 두드려 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2006/02/25 01:28 2006/02/25 01:28

자나깨나 생각하는 연애

Posted 2005/03/14 02:04, Filed under: 맛있는 문학

연 애


- 안도현


연애 시절
그때가 좋았는가
들녘에서도 바닷가에서도 버스 안에서도
이 세상에 오직 두 사람만 있던 시절
사시사철 바라보는 곳마다 진달래 붉게 피고
비가 왔다 하면 억수비
눈이 내렸다 하면 폭설
오도가도 못하고, 가만 있지는 더욱 못하고
길거리에서 찻집에서 자취방에서
쓸쓸하고 높던 연애
그때가 좋았는가
연애 시절아, 너를 부르다가
나는 등짝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 같다
무릇 연애란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기에
문득 문득 사람이 사람을 벗어버리고
아아, 어린 늑대가 되어 마음을 숨기고
여우가 되어 꼬리를 숨기고
바람 부는 곳에서 오랜 동안 흑흑 울고 싶은 것이기에
연애 시절아, 그날은 가도
두 사람은 남아 있다
우리가 서로 주고 싶은 것이 많아서
오늘도 밤하늘에는 별이 뜬다
연애 시절아, 그것 봐라
사랑은 쓰러진 그리움이 아니라
시시각각 다가오는 증기기관차 아니냐
그리하여 우리 살아 있을 동안
삶이란 끝끝내 연애 아니냐




방금 잠이 깨버렸다. 자기 전에 블로그에 글도 한 편 남겼고, 양치질과 세수도 했고, 책가방도 챙겨두고, 불도 껐다. 난 누우면 바로 잠이 들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꽤 깊이 자고 있었다. 그런데 생전 안꾸던 꿈을 꿨다. 악몽은 아닌데 찝찝한 꿈... 연애하는 꿈이었다. 결혼까지 할 상황이었는데 대판 싸우고 헤어졌다. 그 와중에 잠이 깼다. 꿈치고는 영 찝찝해서 화장실 한 번 갔다가 물 한 모금 마시고 왔다. 그런데 아까 껐다고 생각했던 컴퓨터는 로그아웃만 되어 있었다; 끄기 버튼 대신 로그인 버튼을 눌렀다. 그리곤 옛 노트에 베껴놓은 연애시 하나 옮겨 놓았다.

전화기를 보니 문자가 와있다. 시간을 보니 내가 문자를 보내고 한 40분쯤 있다가 보낸 모양이다. 간단명료. "잘자요~^^". 그래도 쌩까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다음 버튼을 눌렀는데, 다른 문자가 2개 더 와있다. 매우 정확한 소식통(그녀의 언니;;)에 따르면 그녀는 오늘 꽃다발과 사탕을 받았단다. 쿵야... 내가 한 발 늦은건가? 닭 쫓던 개가 되어야 하는건가? 그러나 소식통의 어투가 그닥 진지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내가 우려하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그 소식통은 내 마음을 알고 있으므로, 정녕 무언가 "일"이 벌어졌다면 이렇게 말해주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꿈을 꾼 것인가. 허허... 자나깨나 연애라니, 이렇게 비통할 때가 없다. 어서 잠이나 마저 자야겠다. 내일 아니 벌써 오늘이 되었군. 나는 이런 날을 전혀 신경쓰고 싶지 않은데 연애를 하려면 신경써야 하나보다. 나는 그냥 "우리 살아 있을 동안" 그 사람을 생각하고 싶은 것 뿐인데...
2005/03/14 02:04 2005/03/14 02:04

씨앗을 묻으며

Posted 2005/01/08 07:19, Filed under: 맛있는 문학

씨앗을 묻으며

- 이희중

먼 우회(迂廻)의 길을 걸어 오늘 여기 서 있네
풍향이 바뀌는 길목에서 한때는
삶과 사랑과 기쁨을 노래하기도 했으나
아직도 어둡고 메마른 시간 어귀
마른 땅에 씨앗을 묻으며 기다려 보나니
망설임 없이 피는 꽃이 있던가
제 살갗을 찢는 아픔을 견디고서야
하나의 세상이 열리는 것
오늘이 죽음과 미움과 슬픔의 시간일지라도
어두운 흙 속에서 숨쉬는 씨앗에게
품 속 내 낡은 삶의 부적을 건네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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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아들의 아침밥을 위해 피곤한 몸을 일으키신 어머니를 기억하며 나는 씨앗을 묻으러 나간다. 올해의 끝자락에서 또 하나의 세상이 열리는 것을 지켜보기 위해서 나는 씨앗을 묻고, 물을 주고, 거름을 준다.

아직은 어둡지만, 아직은 메말랐지만
피어날 꽃에 대한 희망으로 새벽 바람이 정겹다.
2005/01/08 07:19 2005/01/08 07:19

꽃으로 남은 시인.

Posted 2004/12/01 00:09, Filed under: 맛있는 문학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2004년 11월 29일 오전 9시. 또 한 분의 시인이 돌아가셨다.

내가 처음 이 시를 읽게 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때로는 연애시로 아리따운 그녀에게 보내는 연서 속에 베껴쓰기도 했고, 때로는 사춘기 시절 일기장에 한 구절 적어놓고 오랫동안 바라보기도 했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나는 무엇을 쓰고 있나. 그는 우리들에게 꽃으로 기억되고 꽃으로 불리우는데 내가 죽으면 무엇으로 기억될까.

부끄럽지 않게 산다는 것. 요즘 내 삶의 화두가 되고 있다..
2004/12/01 00:09 2004/12/01 00:09

새로운 시 쓰기법. 팬포엠(FanPoem)!

Posted 2004/11/26 03:19, Filed under: 맛있는 문학
오전 수업 때 후다닥 발표를 해치우고 늦은 오후의 나른함이 스을슬 기어나올 무렵, 강의실에서 선생님을 기다리며 하품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졸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그 숱한 한자들을 눈 부라리며 꼬라보고 있는데, 선생님이 들어오시더니,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에 관심있는 사람 있어요?"라고 물으시는게 아닌가.

십 여명이 듣는 소규모 수업에서 대뜸 손들기가 뻘쭘하여 잠시 주춤하다, '팬픽'이 아닌 '팬포엠'을 다루는 콜로키움이 있는데 관심있는 사람은 말하라는 설명이었다. 또 한번 주춤하다 언제 하는 것인지를 물었더니 "지금 이 시간에 하는 겁니다"라는 선생님의 말씀.

주저없이 관심있다고 큰 소리로 대답했고, 나머지 학생들도 엉겁결에 동참, 강독 교본은 책가방에 넣고 낼름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옆 건물 회의실에서 이제 막 시작된 콜로키움의 정식 명칭은 "팬포엠(FanPoem)의 가능성과 실제 구현 사례 -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문학 환경과 글쓰기의 방법론 연구 2" 였다.

자, 나른한 오후, 수업 하나 제끼고 왔는데 무슨 내용일까 싶어 살펴보니, 오호라! 황동규 시인도 와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과 교수님과 신춘문예 당선 시인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이쯤되니 '팬픽'을 연상하며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할까 싶었던 내가 뭔가 착오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단히 말해 '팬포엠'은 Fan이 쓰는 Poem, '즉 독자가 쓰는 시'를 지칭하는 말이었으며, "Hypertext를 이용한 시 쓰기 프로그램"이었다.

인터넷을 통한 의사소통은 이미 오래전부터 숱한 논의가 있어온 상황에서 유독 인터넷 문학에 대한 진지한 모색은 그닥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간간이 PC통신 작가 1세대로 불리는 이우혁이나 이영도에 관한 짤막한 언급, 귀여니에 대한 찬반양론 등이 들릴 뿐이었지 문학과 인터넷 환경의 상호연관성에 대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작업들은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오늘 콜로키움을 통해 이전에도 "生時. 生詩", "언어의 새벽"과 같은 인터넷 문학 프로젝트(정확히는 시 프로젝트) 2000년 이후 간간이 행해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의 무관심도 한 몫을 하겠지만, 그만큼 일반 대중들에게 문학과 인터넷의 새로운 소통 방식에 대한 관심이 그리 중요한 관심사는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겠다.)

90여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팬포엠'은 여러모로 상당히 매력적인 프로젝트로 보였다. 인터넷에서의 글쓰기가 현실에서의 글쓰기보다 보다 더 자유로울 수 있다는 측면을 부각시키면서도 멋진 시를 읽고 독자가 자신만의 느낌을 해당 구절별로 덧붙일 수 있다는 사실은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재미를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해당 게시물들의 의사소통 과정에서 블로그의 트랙백과 같은 장치가 없고, 팬포엠의 원본이 되는 - 독자가 '팬'임을 자쳐할 수 있는 - 텍스트의 수가 적은데다, 해당 텍스트의 각 구절 링크가 기획자의 의도대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문학, 특히 시가 인터넷을 통해 보다 더 일상적인 문화 양식이 될 수 있도록 하는데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좋은 시를 읽고 그에 대한 느낌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과정에서 시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시인과 독자 사이에 새로운 소통의 장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11월 1일, 실제 '팬포엠'의 인터넷 구현을 시작했고, 현재까지 계속 진행하고 있다. 주제발표를 했던 분은 이후로 점점 더 많은 팬포엠이 모이게 되면 훌륭한 문학 연구 자료로 활용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자, 이제 팬포엠이라는 또 하나의 새로운 즐거움이 생겨났다. 인간이 울고 웃으며 살아가는한 문학은 언제나 즐거움을 줄 것이며 인터넷을 통해 우리는 색다른 시의 재미를 느껴볼 수 있을 것 같다.

팬포엠 안내 보기



팬포엠 쓰는 곳 : http://www.fanpoem.co.kr
(불여우로도 잘 보입니다. ^^)
2004/11/26 03:19 2004/11/26 03:19

비 오던 날

Posted 2004/10/30 03:37, Filed under: 맛있는 문학

비 오던 날


비릿하게 젖어드는 낙엽 무참히
함부로 내딛는 발길에 채여
어지럽다
익숙한 거리 잊지않을 그 곳에서
숨죽여 만난다 언제나처럼
점점이 뿌려지는 고요를 견디려
살 부러진 우산 그 발목을 움켜쥐고
고개 떨구어 떨어진 낙엽본다
떨어지는 물 본다
돌아가는 거리에 쌓인 지난 여름을
사뿐히 즈려밟지 못하는
등돌린 그대 검은 우산 위로

토해내는
노란 위액 한 웅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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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그 날,
비라도 왔더라면...
2004/10/30 03:37 2004/10/30 0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