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Results for '아버지'

6 POSTS

  1. 2007/06/18 딸 같은 아들 (7)
  2. 2007/01/23 아버지의 손 (8)
  3. 2005/12/16 아부지와의 화기애애(?)했던 토론 (6)
  4. 2005/11/10 아부지의 편지 (9)
  5. 2005/09/30 아부지는 얼리어답터 (25)
  6. 2005/06/18 아버지와 소주 한 잔 (1)

딸 같은 아들

Posted 2007/06/18 23:59,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나는 우리 아부지를 많이 닮았다. 닮고 싶지 않은 것도 많은데 남들은 천상 부자지간이랜다. 마음이 여리고 눈물이 많다. 그리고 소심하다. 오늘은 간만에 족발에 소주 한 잔 기울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수도원에 간 동생 이야기를 하며 온 식구가 눈물을 죽죽 짜냈다. 한참을 펑펑 쏟아내고는 밖으로 나와 담배를 한 대 피워물었다. 그래, 지금 우리집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나다. 나라도 기운내야하지 않겠나. 야밤에 담배 한 개비 훌쩍훌쩍 피워대고 있자니 눈물먹은 별도 별사탕같더라. 아부지의 등짝을 냅다 치면서 "에구, 울아부지 왜이렇게 약해요"했더니 또 울먹이시며 "지는?! 지도 강한 척 하면서..."라며 벌개진 두 눈으로 쏘아보셨다.

언제부터인가 울아빠, 울아부지, 우리 아버지의 어깨가 내려다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과 세상에서 제일 여린 사람의 괴리를 어느새 해소해버린 존재. 그 곁에서 나는 조금씩 자라고 있었나보다. 울아부지 소원대로 이제 딸자식 노릇 좀 해봐야겠다. 설령 내게 성정체성의 혼란이 올지언정... (아직도 울아부지는 "애교는 딸이 부려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신다...근데 왜 내게 그런 것을 바라시는고...)
2007/06/18 23:59 2007/06/18 23:59

아버지의 손

Posted 2007/01/23 22:23,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오늘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오신 아버지는 "너한테 할 말이 많다. 너도 이제 알건 알아야지..."라며 말문을 열었다. 거나하게 취하신 티가 역력했지만 아무리 많이 취하셔도 당신이 하신 말들을 또렷하게 기억하시는 분이란걸 알기에 나란히 쇼파에 앉아 귀를 기울였다. (우리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는 여기를 클릭해서 지난 글들을 한 번 보시라.)

친분이 있는 어른들과 내기당구를 해서 이겼다는 이야기를 약간의 흥분을 보태어 자랑하시던 아버지는 당신의 인생을 촘촘히 풀어놓으셨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숱한 사연들과 그를 둘러싼 다른 가족들과의 얽히고 설킨 이야기들, 아버지와 어머니의 신혼 시절, 외가 식구들과 아버지의 관계들, 나에 대한 출생의 비밀(!)까지..

대부분 이미 알고 있던 일들이지만 오늘 새롭게 알게 된 것들도 꽤 있었는데 들으면서 내내 '이건 진짜 영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는 어느새 가슴 졸이는 영화의 주연이 되어 내 옆에 앉아 계셨다.

50년대 생이신 아버지는 내가 알고 있는 우리 나라의 모든 현대사의 질곡들을 직접 겪으며 살아오신 분이다. 그 분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는데 어찌나 우여곡절이 많은지 웃으면서 울다가 가슴이 먹먹해져왔다.

요즘 우리집 상황이 이래저래 안좋다. 동생은 재수를 했지만 올해에도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게 되었고 남은 대학들의 합격자 발표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어머니는 원래 몸이 약하셨는데 폐경기를 겪고 계신데다 신장은 수술을 했고 심장도 많이 안좋으셔서 신경쓸 일이 생기면 온 식구들이 긴장해야 한다. 아버지는 다니시던 직장을 그만두시고 계획중인 사업 준비를 위해 몇 년째 쇳덩이들과 씨름하고 계신데 영문과 출신인 아버지가 용접을 해야하는 것부터 힘이 드신다. 게다가 몇 년 전에는 녹내장 판정을 받으셔서 내색은 않으셔도 실명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계신다.

결정적으로 내가 군대에 있는 동안 조금 무리를 해서 지금 살고 있는 건물을 지었는데 이게 팔리지 않아서 은행빚이 점점 무섭게 다가온다. 냉정하게 따지고보면 지금 우리집에서 고정적인 수입을 내는 사람은 나 하나. 그나마 건물에서 나오는 월세를 생활비로 쓰고 있지만 은행빚 갚기도 벅찬 상황이다. 어서 이 건물을 팔아야 하는데, 아버지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그놈의 노무현 때문에' 팔지도 못하고 이래저래 복잡해졌단다.

강남에 건물 한 채 갖고 있으면 부자인데 뭘 그러느냐고 하는 사람들도 많단다. 나도 제대하고 이 집을 처음 봤을 땐 이제 우리집도 꽤 먹고 살만해 졌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나중에 이야기를 듣고, 요즘 돌아가는 상황으로 봐선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조금 더 복잡하게 살고 있는 듯 싶다.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는 그 사연많은 인생을 용케도 잘 살아내신 것 같다. 욕심부리지도 않으셨고 남에게 해코지한 적도 없고 도박은 커녕 투기와도 거리가 멀다. 우리 아버지는 늘 식구들을 먹여살려야한다는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웠고 우리 어머니는 값비싼 외식보다 근사한 음식을 직접 만들어주셨다. 그렇게 몇 십년을 살아오시다가 자식들 다 크면 당신들끼리 자식 눈치 안보고 살 방도는 마련해야하지 않겠냐며 큰 맘 먹고 준비하신 게 이 집이었다.

어제 아침 두 분이 크게 다투신 모양이다. 법 없이도 사실 분들이라는 그 흔한 수식어조차 화려할 지경인 두 분이 부부싸움을 하는건 거의 대부분 돈 문제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돈 버는 일에 큰 관심이 없는 이유 중의 하나는 어려서부터 본 두 분의 부부싸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늘 즐겁고 행복한 우리 집안의 분위기가 싸늘해지는건 거의 대부분 돈 때문이었으니까 말이다. 다들 열심히 사는 것 같고, 행복하게 잘 지내는 것 같은데 돈 이야기만 나오면 늘 그렇게 마음이 아파왔으니까. 그래서 돈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걸 우리 가족들이 몸소 겪으며 서로를 지탱해내며 살아왔으니까. (오히려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생각하는게 일반적(?)이겠지만 아버지는 나를 그렇게 가르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때론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때론 격앙된 고함을 지르며 한참을 이야기하셨다. 어느 대목에선가 나는 문득 아버지의 손을 잡고 싶었다. 아버지의 손은 어느새 주름이 많이 져있었고, 손끝은 군데군데 기름때가 묻은 채 갈라져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손은 여전히 따뜻했고 묵직했다.

"이제 자라. 시간이 많이 늦었다."라며 말을 마치시곤 곧 잠이 드신 아버지. 나는 꽤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동틀 무렵 겨우 잠이 들었다. 조만간 어머니, 아버지께 나도 함께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책을 세워보자고 말씀드려야겠다. 동생과 내가 쓰는 생활비나 용돈만이라도 내 월급으로 해결하면 일단은 조금 도움이 될 터이다. 동생의 등록금이 문제인데 녀석도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고 있으니 거기에 내가 학자금 대출 같은 것들을 알아보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더 큰 문제들은 부모님과 상의해보고 내 이름으로 대출을 좀 받아도 되고... 그나저나 운전면허는 또 한 번 미루게 될 것 같다. 대학생 때는 놀고 먹느라 못땄는데. 후후. 사실 뭐 면허증이야 마음먹으면 금방 따니까 차가 필요할 때가 오면 그 전에 따두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부부 중 한 사람만 면허가 있어도 좋고. ^^;

다행이다. 이제야 비로소 나는 부모님께 "어른이 된 자식"으로서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고마운 일이다. 아버지의 긴 이야기와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 가족은 참 멋지다는 생각부터 든다.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다. 게다가 나는 또 한 명의 사람에게 분에 넘칠만큼 사랑을 받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나와 함께 웃고 울어줄 숱한 친구들도 있고.

훗날 내 아들(혹은 딸)도 내 손을 잡고서
묵직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07/01/23 22:23 2007/01/23 22:23

오늘 저녁, 어쩌다 황교수 얘기가 나왔다. 아부지는 예전의 그 열변을 토하셨고, 이번에는 나도 꽤 목소리를 높였다. 잠시 외출하고 다녀오신 아부지, 저녁식사 후 2차 토론을 시작하셨다.

그 와중에 피디수첩이 방송됐다. 아부지와 나는 "일단 저거 보고 얘기하자"라고 합의(?)하고 끝까지 지켜봤다. 보는 내내 아부지와 나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피디수첩 보도가 끝나고 다시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뉴스가 방송되더라. 노성일 아저씨가 "줄기세포 없었어요"라고 했다. 순간 벙쪘지만 아부지, 괘념치 않으시고 일관되게 강렬히 열변을 토했다.

옆에서 듣고 계시던 어무이 왈, "누가 들으면 싸우는줄 알겠네"

하지만 우리 부자는 진심으로 서로의 의견을 격하게 이야기했고, 아부지도 나도 이런 자리를 가졌다는 것에 흡족해 했다. (외출 후 돌아오신 아부지는 웃으시며 "자, 2라운드 시작해볼까?"라고 말씀하셨고, 소파에 누우신 어무이께 "당신도 뭐 얘기 좀 하려면 일단 저거부터 봐바. 뭘 알아야 얘길하지."라고 하셨으니까.)

뉴스가 끝나고 심야토론이 시작되기 전까지 아부지와 나는 평행선을 달렸다. 아부지는 때때로 심각하게 인상을 쓰시며 "그건 위험한 생각이다." 라는 논조로 소위 말하는 '빨갱이' 이야기까지 하셨다. 국익을 위해 조용히 처리해야할 일도 있다는 아부지께 나는 끝까지 그래도 잘못된 건 바로잡아야 하지 않느냐고 얼굴이 벌개지도록 외쳐댔다.

이야기는 당연히 결론이 나지 않았고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었지만) 능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조용히 마무리됐다. 그리곤 사학법 개정에 대한 100분 토론이 시작되더라. 아부지의 제안으로 그 시간(새벽 1시반이 넘은 시각;;)에 라면 하나를 끓여서 나눠먹었다. 내가 라면을 끓였고, 저녁 먹은 것과 라면 먹은 그릇은 아부지께서 설거지하셨다.

100분 토론을 끝까지 보고 3시가 가까워올 무렵, 아부지는 주무시러 들어가셨고, 나는 컴퓨터를 켰다.

남이 봤으면 어디 감히 아버지에게 얼굴 뻘개져서 언성을 높이냐며 막돼먹은 녀석이라고 욕을 먹었겠지만 울아부지, 잘 참으시고 하나하나 조목조목 이야기하셨다. 우리 아부지의 솟아오르는 핏대를 보면서 나는 한결같이 고루한 '어르신네'들의 이야기를 떠올리기보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나보다 세상을 훨씬 더 오래 사셨고, 몸소 체험하신 분의 다른 생각을 생생하게 듣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서로에 대한 배려... 이번 일을 보면서 느끼는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다.

어쨌든 엄청나게 큰 발언이 터졌고 황우석 교수의 다음 행보가 무척 궁금해지고 있다. 오늘 아부지와 대화하면서 넘지 못할 벽도 느꼈지만 그와 동시에 나와 아부지의 생각이 이렇게 다른데 온 나라 사람들의 생각이야 오죽할까 싶었다. 황우석 교수님이었든 MBC의 피디수첩이었든 반대쪽에 대한 배려는 어느 정도일까. 이젠 "설마 이것도 반전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알고보니 줄기세포 존재!" 이런 것...

세상 참 무섭다는 생각이 번뜩 든다. 그리고 이제 나는 "학생"이라는 가장 효과적인 방어막에서 벗어나 이 무서운 곳으로 내던져지게 된다. 내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얼마나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을지, 얼마나 인간다운 삶을 꾸려나갈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 아부지처럼 "다른 생각을 가졌지만 상대방의 이야기도 들어줄 줄 아는" 어른들이 더 많으리라 믿는다. 나 역시 나와 정반대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좀 더 진중하게 귀기울일 수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젊은 사람들이 너처럼 생각할 수 있다는건 분명 좋은 면도 있지.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은 양면성이 있는거야"라던 우리 아부지의 말씀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훗날 내 아들 녀석과 이런 자리가 생기게 되었을 때, 이런 "국가적으로 엄청나게 거대한" 문제로 서로의 목소리가 커지는 일은 사라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역사는 어찌되었든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어느 분의 말씀을 믿고 싶다.


+ 오늘 내 동생 녀석의 수능 성적표가 나온다. 가톨릭 사제가 되겠다는 녀석의 꿈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세상의 가치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고 말하는 녀석이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05/12/16 03:22 2005/12/16 03:22

아부지의 편지

Posted 2005/11/10 00:34,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OOO 바오로에게

+ 찬미 예수님
주님의 크신 사랑과 은총이 우리 가족에게 풍성히 내리시어, 금년 한 해를 무사히 마칠 수 있고, 각자 하고자 하는 일도 차질 없이 다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도한다.

바오로,
흡연이 흠이긴 하지만 대학생에 걸맞지 않게 늘 검소한 생활을 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바오로,
유독 너에게 혹독히 굴었던 지난 날의 나의 생활 방식을 돌이켜 본다. 그 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너에게 많이 미안하고, 나아가 가슴도 몹시 아프다. 그 시절 우리 관계는 마치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이나, 수 년 전 어느 밤에 너와 함께 대구 가던 날 꽉꽉 막혔던 고속도로처럼 숨이 막힐 것 같은 답답함으로 일관된 불편함 그 자체였던 것 같다.

바오로,
네가 공부를 게을리 하거나, 나의 맘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할 때는 그것을 너의 고의적인 반항으로 간주했고, 또 일부는 사실이기도 했었다. 설상가상으로 네가 반항적이 되어갈수록 나는 거기 상응하는 더 무거운 체벌을 생각했다는 것이다. 자식은 소유물은 아니지만, 부모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 도리이며, 나의 가치관이기도 했고, 사회규범이라 치부했다.

바오로,
드디어 어느 날, 나는 네 방에 감시용 비디오 카메라 설치를 제안하게 되었다. 아니 일방적 통보였지. 순간, 너는 고사하고 너의 엄마의 황당해 하는 모습에서 나는 오히려 화가 더욱 치밀어 올랐다. 자식 놈 하나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하는 여자가 내가 해보겠다 나서니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초를 치는 것 같아 몹시 불쾌했었다.

바오로,
이제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너에게 심하게 굴었던 것은 네 말처럼 나의 못 다한 꿈을 너를 통해 대신 이루려 하였던 것이 사실이었던 것 같다. 또 당시 나의 삶의 가치관의 최대 덕목 중 하나는 공부 잘 하는 것이었으니까. 내가 보기에 너는 나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편 내가 일러 준 방식대로 세상을 사는 것이 가장 지혜롭게 잘 사는 것이란 확신도 있었다. 더하여, 너를 비롯한 가족 구성원 모두 집안의 가장인 나를 존경하고 또 권위를 인정해 주어야 마땅함에도, 그렇지 않은데 대한 나의 강한 욕구 불만의 표출이었던 것 같다. 소위 사랑받고 싶은 욕구, 자율성의 욕구, 소속감의 욕구 등 기본 욕구가 충족되지 못한데 대한 보복이었다고나 하여두자.

바오로,
양지 성당에서부터 함께 했던 행군과 캠프파이어. 그 밤에 우리의 냉랭했던 부자지간에도 한 줄기 따스함을 잠시 맛보았다. 그것이 도화선이 되어 그 후의 ME 체험과 보다 깊고 넓은 신앙생활 등을 통해 서로의 다른 모습을 인정하게 되었고, 또 받아들이게 되었다. 다른 모습들은 삶의 다양성이며, 나아가 더 풍요로운 가족생활을 위한 주님의 배려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너를 너로 볼 수 있고, 인정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니 지난 날의 나의 아집과 교만으로 가득 찼던 생각과 행동과 말들이 너에게 큰 상처를 주었음을 절감하게 되었다. 하여 이제나마 나의 잘못에 대해 이렇게 충심으로 용서를 청한다. 너의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진심어린 용서를 바란다. 다시 말한다. "미안하다 바오로!!"

2005. 11.7.
아빠


아버지.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2005/11/10 00:34 2005/11/10 00:34

아부지는 얼리어답터

Posted 2005/09/30 22:36,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우리 아부지는 얼리어답터란 말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이전부터 "새로운 기계"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신 분이셨다. 유치원생이던 나에게 APPLE ][로 로드러너하는 법을 가르쳐 주신 분이셨고,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당시 TV에서 한창 잘 나가던 조립식 - 우리는 그걸 조립식이라고 불렀다. 정확한 명칭이 '프라모델'이었다는 것은 훨씬 자란 다음에야 알았다 - "에어울프"를 사주셨던 분이다.

내가 노트북이란걸 실물로 직접 보게 된 것도 우리 아부지가 장만하셨던 386급 노트북이었다. 286급이었는지도 모를 그 노트북으로 나는 처음 한글워드프로세서라는걸 사용해봤고, 도스 명령어 몇 개도 끄적여 봤다.

컴퓨터는 늘 아부지의 첫 번째 관심사였고, 내가 아직 어렸을 때부터 우리집 컴퓨터는 항상 최신 사양을 갖추고 있었으며 부정기적이지만 획기적인 업그레이드를 하곤 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컴퓨터 역시 내가 군대에 있는 동안 아부지께서 최고 사양으로 맞춰놓으셨던 컴퓨터다. 전역한 나는 낼롬 이 것을 받아쓰면서도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안성기가 기차 위에서 죽어라 "본부! 본부!"를 외치던 그 핸드폰을 덥썩 장만하시곤 "이거 음성인식도 된다, 임마! 죽이지?!"라던 아부지. 내가 대학 2학년이 되었을 즈음 처음 등장한 30만화소 카메라가 달린 핸드폰으로 바꾸셨다. "이거 사진도 찍혀, 임마! 죽이지?!"라고 하시던 아부지는 요즘 "DMB, 그거 뭐 볼거 있겠나?"라며 잠시 주춤하고 계신다.

내가 훈련소에 있을 때, 가장 많은 편지를 보내준 사람은 내 애인도 아니고, 내 친구도 아니고, 울엄마도 아니고, 울아부지였다. 아부지는 때로는 손으로 쓰신, 때로는 프린터로 출력한 편지를 보내셨고, 거의 매번 빠짐없이 A4에 사진을 인쇄해서 보내시곤 하셨다. "포토샵이니 뭐니 하는거 조금씩 해보는 중인데 생각보다 어렵구나야. 너 휴가나오면 좀 가르쳐주라" 등등의 내용도 있었다.

막상 내가 휴가를 나갔을 때, 아부지는 사진편집에, 동영상 편집까지 하시고, CD로 굽거나 DVD 타이틀을 만들어내실 정도였다. 그리곤 어느새 차 안에 달아놓으신 네비게이터로 그것들을 보여주시며 자랑하셨다. 내가 따라부르기엔 벅찬, 꽤나 오래된 노래들을 MP3 CD로 틀어주시겠다며 그 바쁜 운전 중에도 리모콘 조작을 하신다.

잉크젯 프린터와 레이저 프린터를 처음 구경한 것도 우리집 안방이었고, DDR이 한창 뜨고 있을 무렵, 느닷없이 내 방에 컴퓨터에 연결시킬수 있는 DDR 발판을 던져두고 가신 분도 아부지셨다.

덜컥 사버렸던 디지털8미리 캠코더를 컴퓨터랑 연결하신다고 IEEE 1394 카드를 사시더니, 1Gb짜리 마이크로 드라이브를 옵션으로 선택하시곤 200만 화소 디카를 주문하셨다. 아부지가 사신 그 디카는 온식구들이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는데 당시만 해도 200만 화소라고 하면 내 친구들이 "와~!"하던 때였다. 거기다 1기가바이트라고 하면 다들 감격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던 아부지가 오늘 저녁, 나를 한 번 더 놀래키셨다.
"느그 아부지, 오늘 또 뭐 샀나 봐라"라던 어무이의 귀뜸이 없었다면 나는 아부지가 "PMP"를 가지고 계시다는걸 까맣게 모를뻔했다.

"우와앗!~ 아부지, 이걸로 영화도 보고! 노래도 듣고! 오옷~!"
"야야, 이거는 이제 사양길로 접어드는 모델이래. 나야뭐 전자책 볼라고 산거야. 성서파일 txt로 된 거 좀 찾아봐라. 가톨릭용으로."

그래도 울아부지, 예의 그 자랑은 이번에도 빠지지 않으신다.
"야, 임마. - 꼭 자랑하실 때는 한 톤을 낮춘 목소리로 '임마'라고 부르심 - 이제 여기다 디카 바로 연결해서 사진도 바로 확인하고, 얼마든지 사진을 더 찍을 수 있다구. 이거 20기가니까 차고도 넘치지."

그랬다. 이번에도 아부지는 나보다 한 발 앞서나가셨다. 나는 언제나 늘 아버지보다 한걸음 뒤에서 아버지가 써보신 물건들을 감상하고, 평가하면서, 이런저런 재미를 맛보곤 했다.

하지만 매달 카드 통지서가 배달될 때마다 투덜거리시는 어무이께서 모르시는 사실이 한 가지 있다. 아부지는 그 모든 기계를 나 때문에 사신다는걸.

나는 이제껏 살면서 부모님께 뭐 사달라고 당당히 요구해본 적이 없다. "순하고 착한" 아이였기 때문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그런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먹고 싶은게 있어도 "괜찮아요", 갖고 싶은게 있어도 "괜찮아요"... 그러다보니 정작 내가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 내가 무언가 요구해야하는 상황일 때 그것을 요구하는데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지금은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어쨌든 그 땐 그랬다.

아부지는 나에게 "시대의 흐름"을 가르쳐 주려고 하셨고, 지금도 그렇다. 예전에는 "이런 게 요즘 있단다"라는 분위기였다면, 요즘은 우리 세대와 소통하는 방식을 직접 체험하시려는 분위기다.

나는 아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장난감 같은걸 사달라고 하지 않았다. 울아부지랑 로드러너하는게 더 재밌었고, 그렇게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은 채 한참 지나고나면 아부지가 다른 무언가를 들고 오셨다. 물론 나에게 주신 것도 있고, 아부지가 쓰시려고 산 것도 있지만 어쨌든 나 역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예전에 DDR 발판을 던지시던 아부지의 모습과 오늘 PMP 사용법을 익히시느라 땀흘리시는 아부지의 모습 사이에서 나는 잔잔한 세월의 흐름을 본다.

아들 녀석들과 '얘기가 통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시는 아부지를 보면서, 훌쩍 자라버린 나는 그 동안 아부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되돌아본다.

외출하신 아부지가 집에 들어오시면 펌웨어 업그레이드도 하고, TXT파일 찾은 것도 넣어드려야 겠다. 그리고 요즘 열심히 연습하시는 대금 연주도 들려달라고 해야겠다. "우와, 아부지, 진짜 많이 느셨어요. 소리 멋지다! 와!" 정도의 멘트는 진심으로 날려야지.

비가 오는데 춥지 않은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2005/09/30 22:36 2005/09/30 22:36

아버지와 소주 한 잔

Posted 2005/06/18 21:52, Filed under: 스치며 부대끼며

부자의 저녁식사. [Batang Ch:e], Graforce.com



아부지랑 소주를 나눠마셨다. 저녁 메뉴는 삼겹살이었고, 삼겹살이 나오는 날이면 우리 부자는 어김없이 소주를 마시곤 했다. 늘 아부지께 술을 따라드리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의 잔을 받아마시게 되면서부터 아버지는 조금씩 어깨가 좁아지셨던 것 같다.

어릴 때 나는 아부지가 죽도록 미웠던 적이 있었다. 차라리 내가 주워온 자식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훈련소의 차가운 매트리스 위에서 억지로 잠을 청하다가 문득 아버지가 생각났다. 미친듯이 눈물이 났었다.

언제부턴가 아버지께서 외롭다는 말을 하시곤 했다. 참 듣기 거북했다. 식구들이 아부지를 어떻게 생각하는데 외롭다고 하시는걸까. 서운하고 섭섭했다.

하지만 이렇게 소주 한 잔 나누는 날, 평소보다 말도 많이 하시고, 더 많이 웃으시는 아부지를 보면 외로웠던 날의 흔적을 얼핏 엿보게 된다. 죄송하고 또 죄송할 따름이다.

세상에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든든한 사람이 있다.
그가 내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 가득 힘이 나는 사람이 있다.
세상 모든 이들이 나를 욕하는 그 날에도 내 편에 서줄 당신이 있음에 나는 이렇게 잘 자랐다.

오늘은 어머니가 조금 서운해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아부지 편을 좀 들어야 할 것만 같다.

이러니까 아부지는 삼겹살만 나오면 나랑 소주 한 잔 하자고 하시는가보다...
2005/06/18 21:52 2005/06/18 21:52